한국정치 문답

2008-11-03 18:46:31, Hit : 4522

작성자 : 박상훈
4부
한국정치 문답

(기존의 문답을 재구성하고 내용을 절반으로 압축했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을 추가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의견 주기 바람)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시기는 흡사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공연되는 무대와 같다. 이태리 정치학자 알레산드로 피조르노(Alessandro Pizzorno)는 현실의 민주정치를 시민 ‘관객’과 정치인 ‘배우’로 비유했다지만, 아마 한국의 사례만큼 극적인 사례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정치를 바랬던 것일까. 무엇에 열광했고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가. 여전히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출발할 수 있을까.****


편집부) 왜 ‘와이키키 브라더스 위하여’인가
저자) 와이키키 브라더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다. 고등학교 밴드부 출신들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장면 하나 하나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영화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다. 옆집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인생, 서민들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영화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잘 것 없고, 답답하고 한심한 인생들이 등장한다. 좌절해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아둥바둥 매달리는 사람,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학창시절의 꿈이 자꾸 멀어져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인생 행로를 계속하는게 이 영화의 주인공들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의 다수가 그럴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좌절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 제목을 빌려 왔다. 한국정치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이들을 위한 대안을 준비하기를 바라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불러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해방 이후 아직까지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가난한 자들이 온전한 자기의 정치적 대변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 사회의 시선을 한번 보라. 그들의 가난은 능력이 없어서,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게을러서 그런 것으로 취급된다. 아는 것도 없고 사리 판단도 부족하며 세상 물정도 모른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자기 계급 이익을 위해 선택할 줄도 모른다고 한다. 계급 배반의 투표를 한다고 선거 끝나고 나면 손가락질을 당하고 산다.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이익을 더 많이 침해할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고는 후회하고 다시 그런 선택을 반복한다.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가진 자에게 자기의 권력을 양도하는 이 자기 부정의 정치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게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진보정당이 있지만 아직은 기성 정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왜 한국에는 하나의 가치, 하나의 헤게모니, 하나의 질서가 지배하고 그 결과, 이 가치․헤게모니․질서를 대변하는 정치만 존재할까. 우리가 두 개의 가치가 서로 경쟁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지 못하는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의 완고성, 이것이 바로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이다.

가난한 자가 배제된 정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보는데.
맞다. 그게 우리의 절망이다.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정부 역시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이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 정치세력은 부분적으로 급진화하기도 하고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역할도 했지만, 권력을 갖고 기득권을 획득하면서 그런 거추장스러운 짐을 내려놓았다. 자기들이 지고 가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지지와 후원이 필요할 때는 야당할 때였지, 집권 후는 아니었다. 이 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의 일시적 국면에서 자기를 대표할 정당이 없는 가난한 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했던 역사적 인연이 있었을 뿐, 원래 가난한 자의 정치적 대표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 보수정치의 한 분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 사회의 흔들리는 보수 헤게모니를 공고화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첫째 이 두 정부는 가난한 자를 따돌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둘째 신자유주의가 가난한 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는 분명했지만, 두 정부의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에 의해 그 본질이 은폐되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는 한국사회의 좋은 대안인양 인식시키는데 기여를 했다. 이것이 두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한 것이다. 한때 일시적으로 가난 한 자를 대변했다는 이유로 이들이 가난 한 자를 소외시킨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가볍게 취급되고 있지만, 가난한 자를 배제하는 이 사회의 보수 헤게모니 강화에 가장 기여한 집권세력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는 보수파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민주파와 진보파가 패배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인가
맞다. 보수파는 보수적 비전과 가치를 내세워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전도, 가치도, 정책도 내놓은 적이 없다. 시민들이 보수를 선택할 명분도 근거도 없었다. 단지 노무현정부로 대표되는 넒은 의미의 민주화 운동 세력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로 그들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노무현대통령은 강력한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업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하자마자 스스로 그런 열정을 버렸고, 개혁을 추진할 준비도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는 곧 실망으로 나타났고 시민들은 지지를 철회했다. 그러나 돌아선 시민들 앞에 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파는 정당을 다시 정비했지만, 항상 그렇듯이 시민들의 실망을 급진적 개혁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보수 회귀를 했다. 개혁과 진보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기성 정당체제에서 선택을 봉쇄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진보정당 역시 실망을 안겨 준 것은 마찬가지였다.
많은 시민들은 결국,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쪽에 투표를 했다. 시민들에게 보수정당을 선택하든가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로 내몰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수파가 승리할 수 밖에 없었지만, 보수파의 승리는 스스로 일구어 낸 것이라기 보다 민주파와 진보파의 패배의 결과로 우연히 손에 쥔 그런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 결과를 보고 지식사회 내에서는 보수헤게모니가 안착되었다느니, 시민이 보수화되었다느니 하면서 보수정권 장기집권론을 강조했던 해석이 많았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제 확인이 되었지만, 보수정권 장기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보수가 성공적으로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은 노무현정부의 외곽 지식인들이 자기 기득권 유지를 위해 퍼뜨린 헛소문으로 판명되었다. 정권교체를 막고 민주파 집권 연장을 위한 공포의 동원에 불과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이명박정부는 출범한지 1년도 안돼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보수파들이 민주화 이후 국정을 떠맡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보수헤게모니가 이명박정부에 의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집권한 보수파의 무능과 혼선은 그동안 비교적 견고했던 보수헤게모니를 균열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정부는 자살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지식인들이 실권한 10년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보수파를 과대 평가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다.
대선이나 이명박 정부 이후 시민들이 특별히 더 보수화했다고 결론지을 근거는 여전히 없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중도층이 다소 많고 진보와 보수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진보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시민들의 성향 분포가 정치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압도적 지지에 의한 이명박후보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국회지배는 시민사회의 현실과는 다른 것이다. 이 불일치 현상은 독점적인 보수정당 체제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시민들이 보수화하지 않아도, 보수화된 기성 체제․정당체제는 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강제하고 진보적 여론을 억압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나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 진영이 승리한 것을 두고 시민의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 데.
시민의 보수화 논리가 타당하다면, 대선과 총선에서 시민들이 보수화되었다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진보성향으로 되돌아 가고, 다시 진보․보수 후보 간 대결을 펼쳤던 서울시 교육감 첫 직선 때 보수로 회귀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민들이 이렇게 짧은 시기 동안 진보와 보수를 오락가락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설명 보다는 시민들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다. 시민들의 앞에는 선택 가능한 대안들이 없었고, 따라서 시민들은 선택을 포기한 것이다. 보수정치의 부상은 단지 그 결과일 뿐이다. 대선에서도 투표하지 않은 시민은 54퍼센트나 된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것을 두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보수정치에 투표를 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은 낮은 상태에서 정체되어 있는데 이는 여전히 선택할 만한 정당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민들이 보수화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야당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처럼 선택의 봉쇄가 계속된다면, 야당이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보수파의 무능이나 보수헤게모니의 균열과 상관없이 보수파 재집권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역시 시민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회 구조의 제한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부패로 집권당인 민주당이 위기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지 못함으로써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내 다른 보수파로 권력이 승계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진보적 시민들조차 무능한 야당을 선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새롭게 등장한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나
뉴 라이트 운동은 한국 사회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 매우 좋은 계기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건강한 보수 우파는 한국사회가 절실히 갈망해온 것의 하나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보육된 한국의 전통적 보수는 사실 민주주의와는 공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독재, 부패, 반공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보수는 민주주의의 구성요소라기 보다 민주주의 밖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민주화 이후 보수는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수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보수의 혁신은 미진했다. 민주화 이후의 변화에 보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따라가야는 것에 머물렀다. 그 결과, 전통적인 보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런 보수로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재집권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보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진보 자체를 공존해야 할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보수는 진보가 자기들과 사고체계가 다르지만, 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인이라는 기본 전제를 마음으로 기꺼이 수용하지 않았다. 친북이나 빨갱이니 하며 체제의 적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보수는 성장 지체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  
이 때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주도한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이른 바 뉴 라이트(신우파) 운동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전향한 386 학생 운동권 출신이 자유주의 연대라는 시민단체를 결성하면서 확산되었다. 새로운 보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던 시점이어서 이 운동은 보수세력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늦기는 했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조응할 수 있는 보수의 혁신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를 자기의 이념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보수 사이에서 반공과 동일시되는 개념으로서만 이해되던 자유 혹은 자유주의를 반공주의와 분명하게 분리시킨 것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새로운 보수가 등장한다는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이명박 정부의 집권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명박정부 하에서 뉴라이트 세력이 보수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뉴라이트의 이념은 시장의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 시민권 권리의 보장이란 점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자유주의는 본래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뉴 라이트 운동은 그런 자유주의 기본 이념에 충실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 것은 무엇보다 뉴 라이트가 좌파라고 규정한 노무현정권과 그 지지세력과의 대결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는데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뉴 라이트는 인기없는 노무현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신 우파의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는 성공했다. 뉴 라이트는 낡은 좌파와 싸우는 새로운 보수라는 프레임의 설정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결에서 승리하는 순간 뉴 라이트는 운동으로서의 힘을 잃었다. 승리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으나, 대신 뉴 라이트 운동의 긴장감은 떨어졌다. 보수를 혁신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보수는 불행하게도 혁신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정권을 잡아야 했다. 보수는 다시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뉴 라이트는 구 우파(올드 라이트)와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 뉴 라이트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 보수세력을 뛰어 넘는 21세기의 흐름이라는 점을 부각해야 했지만, 그 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뉴 라이트의 갑작스런 성공의 결과이기도 하다. 전통 보수세력들이 뉴 라이트 운동의 인기에 편승, 스스로 뉴 라이트를 자처하며 그 깃발 아래 모여든 것이다. 그들이 관점에서 좌파세력인 노무현정권과의 대결을 우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보수 대연합이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올드 라이트와 뉴 라이트의 구분은 사라졌다. 한국은 갑자기 뉴 라이트들로만 가득한 사회로 변했다. 죽어가는 구 보수가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을 가진 뉴 라이트라는 구명보트로 옮겨탄 것이다. 뉴 라이트는 올드 라이트의 숙주, 올드 라이트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말하자면, 뉴 라이트는 올드 라이트의 시체위에서 구좌파와 싸운 것이 아니라 구좌파라는 망령과 싸우느라 올드 라이트를 부활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운동은 실패했다고 봐야 하는가
그렇다. 이명박 정권에서 뉴 라이트는 이명박정권의 관변단체로 전락하면서 자생력과 자율성을 훼손당했다. 권력을 등에 업은 뉴 라이트는 현대사 교과서 개정, 교육 경쟁 강화 운동에서 보여주듯이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하면서 보수의 기득권자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했든 아니든 올드 라이트로의 복귀, 권력과 재벌의 수호자로의 귀환이다.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도 뉴 라이트의 노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으나 뉴 라이트는 실용주의를  패배시키고, 좌우 이념대결을 주도함으로써 낡은 시대를 재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뉴 라이트는 자신들이 낡은 좌파라고 규정한 세력과 대결할 때만 자기의 존재 의의와 실력을 드러낼 뿐, 보수를 지속가능한 보수로 탈바꿈하는 과제에는 더 이상 흥미도 느끼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동체 자유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삼는다고 했지만, 한나라당정권에서 공동체는커녕 자유주의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이제 이명박정권과 동일체가 되었으며, 따라서 운명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보수의 혁신은 다음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슬픈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뉴 뉴 라이트 운동이 전개될 때가 오기를 기다려본다.

2004년 총선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노동당이었다. 진보도전의 실험에 대해 처음엔 기대를 갖지 않았나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 진출할 때는 진보정치의 싹이 건강하게 자랄 것으로 기대했다. 소수파로서 국회내 활동에 한계는 있겠지만, 진보정당이 기성 정당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민주노동당 의원 한 명 한 명이 군계일학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정당으로서도 기성 정당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낼 것이라 믿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성실성, 진실성, 책임성을 갖고, 의원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형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했다. 한명이 열명의 몫을 함으로써 한국 정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비록 소수당으로서 정치를 전면적으로 바꾸고 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힘이 모자라지만, 그들의 열성과 실력으로 미루어 만약 그들이 다수라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진보정당은 이렇게 보수정당과 다르다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줄 수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시민들 사이에 진보정당을 키워야겠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켜 다음 선거 때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생 문제에 집중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잘 해낼까라는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 실험이 결국 실패했다는 것은 선거결과로도 이미 평가가 내려진 것 같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뭐라 보나
조직, 노선, 정책, 정당 활동 전반에서 실패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분리로 당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파간 연합 구조로 인해 당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성도 드러냈다. 진보세력의 인적, 물적 자원이 총집결된 진보세력의 총본산이 되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서민들의 벗이라기 보다는 운동권 출신의 엘리트 정당이었으며, 민주노총의 기득권에 휘둘리는 민주노총당, 참신성 보다 고루함이 두드러지는 낡은 정당, 정책적 대안 마련 보다 시위에 능한 시민단체와 같은 정당이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주한미군철수, 북핵 문제와 같은 거대 이슈, 서민들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현안에 매달림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역량을 낭비하기도 했다. 거대 이슈 매달리기나 백화점식 산만한 활동 보다는 서민들이 절실하게 생각하는 핵심 의제에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사실 하나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것은 바로 민주노동당이 세상의 변화에 뒤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변화하지도 못했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게을러졌다는 뜻이다. 원내 진출로 얻은 기득권을 지키는데도 연연했다. 각 정파들은 당내 헤게모니를 지키는데 힘쓰고 자기의 논리를 서민들에게 강요하려 했다. 그 결과로 조직, 노선, 정책이 경직되고 화석화되어 갔다. 이렇게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익과 욕구에 충실하지 못하고, 반응할 줄 모르는 정당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주파의 문제에 대해서 늘 지적해왔는데
자주파의 시효는 끝났다. 20세기에는 진보, 좌파일 수 있어도 21세기에는 아니다. 자주파는 더 이상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민족주의와 분단에 갇혀 있는 외로운 늑대라고 할까.
자주파는 민족을 단위로 사고한다. 그러나 민족이 지금 외세의 억압을 받고 있나. 민족이 고난에 처해 있나. 지금 고통받고 있는 집단은 민족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88만원 세대, 북한 인민들, 탈북해 중국을 떠도는 북한 난민들이다. 민족은 오히려 이주노동자, 결혼 이민자를 억압하는 주체다. 물론 식민지 시대, 미국 후원하의 독재 시대에는 민족이 저항의 단위, 해방의 단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자주파는 현 체제의 반대자․ 비판자 라기 보다 옹호자다. 이들은 분단되었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미국이 제국으로 남아 있는 한 한국사회는 스스로 성숙해질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한국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고, 진보적이고, 완전하고 성숙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또 남한의 보수, 미국과 적대적 공존을 하며 자기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많은 모순들을 해결하며 진보적으로 발전할 경우 그들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며, 결국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일본과 싸우는 진보파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은 공감이 크게 간다. 왜 우리 사회 진보파는 독도문제 앞에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진보와 민족주의의 끈질긴 인연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경험과 나라를 반쪽 낸 분단은 한국사회에 강한 국가, 민족주의 파토스를 심어 놓았고, 진보세력도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고 본다. 민족주의가 진보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제3세계 민중의 해방과 저항의 이념이자 무기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분명히 진보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 대접을 받고,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지금은 아니다.
이런 민족 문제가 두드러지는 분야가 한일관계이다. 진보세력도 한일관계를 민족문제로 환원하는 접근하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한일관계에 관한 한 누가 더 반일적인지를 두고 진보파가 보수파와 경쟁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진보파는 민족이 아니라, 서민, 노동자, 비정규직과 같은 계급을 대표해야 한다. 진보파는 민족을 대표해서도 안되고, 다른 민족과 대결해서도 안된다. 한국의 진보에게는 국제주의 전혀 없다. 이런 것은 한국현대사, 한국적 문화의 산물이므로 진보가 이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진보라면,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거나 편승해서는 안된다. 민족주의는 그 속성상 다른 민족주의를 불러온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온다. 이런 비합리적 감정의 분출은 상대를 파괴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파멸시킨다.
그런데 진보파들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열정을 주도하는 느낌이 있다. 민족문제의 편협성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진보 지식인들 조차 독도문제에 관해서는 여지없이 민족 감정에 사로 잡히고 만다. 독도문제는 영토와 과거사가 결합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과거사 문제이기도 한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노력이 한국에는 없다. 과거사라는 인식은 한국의 영토였던 것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빼앗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독도가 식민지 이전 한국의 영토였음을 누가 인정하고 존중했는지 의심스럽다.
독도문제는 결코 진보적 의제가 아니다. 일본이 독도를 지배하고 있다면, 한국인이 빼앗긴 자로서 저항하고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독도라는 영토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기득권자이다. 진보파들이 나설 이유가 없다.

민주화이후의 한국정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역시 꺼지지 않는 주제는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을 꼽으라면
첫째, 노무현대통령의 배신이다. 노정권의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노무현정권을 탄생시킨 서민들의 열망을 배신한 것, 그의 실패는 이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더 이상 후보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었다. 이런 배신은 지지세력으로 부터의 고립을 불러왔고, 고립된 그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들고 자포자기했다.
둘째, 관료와 삼성에 대한 의탁이다. 국가를 어떻게 장악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노무현대통령은 자연스럽게 새 정권을 어떻게 길들일지 준비된 관료와 삼성에 점차 의존해 갔다. 노대통령은 관료와 삼성이 던지는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국가 정책으로 채택함으로써 지배엘리트의 대통령으로 자기 존재를 이전했다.
셋째, 분열의 정치를 했다. 대통령은 서민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의제를 통해 자기 주변에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전시민적 동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반대 세력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반대로 했다. 대통령은 서민들의 열망을 담은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지지세력이 이탈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의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지 기반을 침식당한 상태에서도 반대 세력에 대한 자극적인 공세를 그치지 않았다. 그 결과, 지지세력의 결집 대신 반대세력이 결집하고, 분열은 확대되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그를 위축시키기 보다 그의 도전 의지를 돋우면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분열과 분란의 주도자로 나섰다.
넷째, 자기 권위를 해체했다. 대통령의 권위는 국정의 성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그러나 그는 우선 순위에 혼란을 일으켜 권위의 해체를 우선시 했다. 권위의 해체도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대통령으로서 설득하는 힘도 약화되고,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시 노대통령에게 설득과 타협은 매력없는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되었고, 국가 지도자 노무현으로서 보다 정쟁을 주도하는 정치인 노무현이란 이미지를 강화시켜 결국,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다.
다섯째, 비현실적인 거대 구상에 빠졌다. 현실에서의 반복적인 실패로 인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미래 구상으로 빠졌들었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변명할 수 있는 거대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그러나 신뢰와 지지를 잃은 대통령의 비현실적 제안과 구상은 그의 실패의 크기를 키웠을 뿐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으로 시작해 ‘대연정 제안’과 ‘원 포인트 개헌 제안’ ‘한미 FTA’ 등은 역대 대통령에게서 보기 어려운 방식의 통치를 보였다. 통치자로서 노무현 스타일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노대통령의 돌출 발언과 잇단 충격적 제안은 분명 그를 과거 대통령과 구별할 수 있는 요소이다. 그는 함부로 발언하고 제안했다가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자기의 사적 감정과 의사를 이렇게 자유롭게 표출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지도자로서  어울리지 않게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으며, 그 것을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정부 5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가 바로 이 진정성이다. 그는 노무현정부 앞에 닥친 절실한 문제가 무엇이며 그 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라는 국정 수행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도가 순수했는가, 불순했는가의 도덕적 준거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그런 진정성에 대한 집착은 어던 정책이 우선 순위에 있는가 없는가,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 과정과 절차는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성과는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무시하는 경향을 띠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의 고충을 진심으로 털어 놓는 것은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직 포기 의사는 대연정 및 개헌 제안, 갑작스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라는 과도한 대통령 권력 행사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의 태도는 동전의 양면이다. 현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대통령은 순수한 의도라면 현실적 조건과 상관없이, 아니 현실적 한계를 뛰어  넘어 거리낌 없이 추진해도 된다는 진정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통령직을 차라리 버리는게 낫다고 인식한 점에서도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진정성은 대통령직을 버릴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자기 방어의 표현이자, 시민적 동의 없이도 비현실적인 구상이나 제안도 가능하고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밀어부칠 수 있다는 권력남용의 논리이자 위험한 자기 정당화의 언어이다. 노대통령의 대담한 구상과 비현실적인 제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강행하는 태도들은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탈피하려는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다. 좌절할수록,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일하는 여건이 악화될수록 더욱 도전 의욕을 불태우며 잇따른 충격 요법을 반복한 것을 그 것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노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정치적, 시민적 통제로부터 자율적인 대통령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노대통령은 대통령이란 막강한 권력은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또한 대통령의 개성에 크게 좌우되는 대통령제의 한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노무현 이후 야당에서 제대로 된 후보대안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야 하나
노무현 정권의 몰락은 생각 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단지 하나의 정권이 실패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노무현정권은 진보와 개혁의 수사를 즐겨 동원했고, 이로 인해 노무현정권은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는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노정권이 범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낳았고 이런 인식상의 오류로 인해 노정권의 실정은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대통령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낮은 지지에 머무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야당에서 야당을 구출할 생존자를 찾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노대통령의 통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노대통령은 열린 우리당을 정부로 흡수했다. 당의 주요 지도자를 내각의 장관으로 영입한 것이다. 정부에 참여한 이들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야당의 대안적 후보군이 보존될 수 없는 통치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조건의 결과이지만, 당내 비판 그룹의 존재를 노대통령이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제기능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당내에는 의미있는 비판그룹의 활동 기록이 없다. 만일, 비판그룹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허용했다면, 대안이 될 수 야당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여당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현실이다. 야당의 역할은 필요 없어진 것인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이 아무리 높아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 보다 훨씬 높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이명박정권의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자, 민주당의 역할에 대한 불신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 대한 부정이 곧 야당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야당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 정권이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그 정권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야당에 의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이다. 만일 야당이 실질적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야당이 별로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온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2008년의 정국은 그런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야당은 그저 장식처럼 어딘가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권위주의 체제에도 야당은 있다. 야당이 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야당은 집권 가능해야 하며, 그 가능성에 의해 집권세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세력이 견제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국정의 파탄, 권력남용과 부패, 비리의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없다. 이명박정부에서야 말로 야당의 역할이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중요한 때에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당이 없다. 이 것은 야당의 불행일 뿐 아니라 이명박정권의 불운이 될 것이다. 견제와 감시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체제에서 이명박정권은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모를 것이고, 결국은 벼랑끝까지 내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제동장치 풀린 채 내달린다면 시민도 불행에 빠뜨릴 게 분명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촛불집회도 하고, 이명박정부의 무리수에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들을 대변할 야당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바로 이 때 신뢰할 만한 야당이 없다는 사실, 이 것 보다 시민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야당이 없다는 것 이 것이 바로 야당의 문제이다. 소수당이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한나라당과 경쟁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미래 야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야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명박정권에 실망하고 있는 다수를 자기의 지지 세력으로 결집할 수만 있다면, 소수당이라 해도 다수당 못지 않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사회의 의제들이 모두 표결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토론과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며 이런 과정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정책이 있다면, 소수당이라는 사실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소수당이라서가 아니라 미래가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미래가 없는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가 있는 야당의 모습을 그려보자.
첫째. 민주당은 애매한 중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도가 무엇과 무엇 사이의 중간이라는 뜻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노무현정부를 좌파정부로 보고, 좌파개혁이 심판받았으니 그 보다 우경화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중간을 민주당의 안전 지대로 삼은 것 같다. 그러나 범 진보세력의 지지로 출범한 노무현정권이 실패한 것은 급진적 개혁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료들의 논리에 매몰돼 스스로 보수화하면서 국정 난맥을 초래하고 결국 개혁에도 실패함으로써 범 개혁 세력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대통령도 진보와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폭 넒은 지지를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직후 잇단 실정으로 지지자의 이탈이 급증하자 보수세력이라도 결집하기 위해 강경 우파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노무현․ 이명박 정권 모두 과격한 우경화로 진보와 중도의 지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나라당과 경쟁하는 야당이라면, 이렇게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 사이의 비좁은 틈 사이에서 중도를 자처하며 숨을 것이 아닐, 진보와 개혁이 있는 중원으로 당당히 옮겨 가야 한다. 시민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에 우경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논리로는 촛불집회를 설명할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야당이라면, 진보적 개혁주의 노선으로 전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되찾고 그에 합당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민주당은 이명박정권에 실망한 시민을 조직하지도, 대표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실망한 다수 시민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과 대결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도 민주당에게 반사이익이 없는 것이다. 시민들은 민주당을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서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각인되지 않는 한 이명박정권과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서민과 추락 위기에 처한 중산층의 불만을 조직하고 변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주체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는게 우선 순서이다.
셋째,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세력의 잔당이다. 민주당은 파탄난 지난 10년 정권의 잔존세력이 생존을 위해 재결집한 당이다. 무엇을 지향하기 위해 모인 미래 정당이 아닌 과거의 정당이다. 이런 정당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패배의식과 콤플렉스에 젖은 노무현 김대중 정권의 생존자 모임이 할 수 있는 것은 실망한 시민들을 한나라당 주위로 몰려가게 하는 것 뿐이다. 잔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매일 거리의 정치에 나선다 한들 거리의 시민들이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반도 허약해 집권당과 타협하고 양보할 처지도 못된다. 장외 투쟁에도 동력이 생기지 않고 장내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딜레마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과거의 실패를 변명하고,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허덕이는 정당이 아니라, 서민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들의 희망을 깨우는 새로운 야당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민주당의 전면적인 쇄신을 통해 거듭날 수 없다면, 당안팎에서 새로운 정당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에서 지식인에게 큰 기대가 부여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간 지식인에 대한 실망 역시 매우 심화되어 왔는데,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 보는지.
앎과 삶의 불일치다. 지식인들은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잘 판단할 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다르다. 보통 시민들과 달리 알 수 있는 능력과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는 바대로 하지 않는 것, 이 것이 한국지식인의 본질이다. 권력, 돈, 명예를 위해서는 자신의 비판정신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는 이들이 바로 지식인이다.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는 한국 지식인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일단 지식인은 권력과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비판적 이성이 어떻게 발휘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 결과, 너무 쉽게 권력의 요구를 가장 선도적으로 따르는 권력의 도구로 변한다. 권력에 약한 존재, 그 이름은 바로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본래 자기의 말과 글에 구속되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자기 언행의 포로다. 자기의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자기의 발언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과 명예라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구속의 대가이다. 그런데 자기의 말과 글로부터 자유롭다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데 입바른 소리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약간의 수혜라도 받을 기회를 얻는 순간, 정치권력과의 사적 인연이 맺어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깃털에 불과하다. 그리고 권력, 명예의 분배를 기대하면서 낮에 진보, 밤엔 보수하는 이중성이 생활의 지혜로 평가받는 것, 일관성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의 치기로 취급받는 것, 이 또한 지식인의 문제이다.

1장에 있는 권정생에 대한 헌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사회에서 권정생은 어떤 의미라 보는가
지배질서에 맞서는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에 넘쳐 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잠시 멋으로 그렇게 하는 이도 있고, 지식인은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러는 이도 있고, 자기의 능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그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권정생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멋 낼 이유가 없고, 지식인 행세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까닭도 없으며 사회적 대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의 삶, 그의 철학, 그의 일은 타협 불가능하다. 타협은 양보의 대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는 더 이상 내놓을게 없는 분이다. 그는 이 지배질서가 전복되는 것만을 원하고 있다. 그의 사상, 그의 생활, 그의 작업이 항상 일치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구도자다.  
자본주의, 미국 헤게모니, 전쟁, 상태파괴를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처럼 반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 맞서고 반미주의로 미국 헤게모니에 맞서고, 평화주의로 전쟁에 맞서고, 자립 생활로 상태파괴에 맞서는 분은 많지 않다. 게다가 동화를 통해 그런 가치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빨리 너무 기성 질서를 배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어린이에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의 유일한 분이 아닐까 한다.
물론 우리 모두 그와 같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치관의 우리 사회에 이런 분이 꼭 필요하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한국 정치의 중심 이슈 중의 하나는 역시 북한 문제다. 하지만 늘 이 이슈는 쉽게 이데올로기화되어 합리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주류 언론이나 보수적 학자들의 북한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보수 언론이나 보수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마치 자신이 미국이나 유럽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북한의 잘못에 대해 따끔하게 할 말을 하고 필요하면 행동도 할 수 있다. 그 것은 북한과 직접 맞닿아 있지 않아 북한과 직접 충돌하고 그로 인해 불안과 긴장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은 마치 북한과 등을 돌리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과 어떤 관계라도 상관없다고 무시하며 살 수 없다. 북한이 좋건 싫건 북한과 대결하고 분쟁을 일삼으며 불편하고 불안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보수세력은 대결하면서도 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배부른 소리이다. 그런 주장은 남북 화해와 협력이 축적되어 웬만한 갈등이 아니면 그 기조가 깨지지 않고 일정 수준 남북관계가 발전해 있는 현 상태에서나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이 대결의 시대라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최우선 과제는 많은 비용을 감내하면서 대결상태를 화해의 국면으로 전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보수세력은 북한정권이 나쁜 정권이므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직된 당위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북한이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는 남한이 불안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불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은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남의 일처럼 편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잘못하면 벌주고 잘하면 보상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아니라, 그 어떤 외국에 대해서도 대외관계를 이런 원칙에 따라 하는 나라는 없다. 단순하고도 순진한 발상이다. 그리고 북한에 항상 끌려 다닌다는 매우 오래된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의 최소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평화와 안정을 얻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익을 남기는 정책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남한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북한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남북대결에서 승리가 아니라, 남북간 화해와 평화, 그리고 공동발전이다.

대체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라고 봐야 할까
북한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자, 우리 자신이다. 대결상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조건에서 북한은 적이기도 하고, 화해의 대상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하나가 되어야 할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북한의 실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 모두가 북한이다.
우리가 북한문제를 논의할 때 잊지 말아야 한 것은 우리는 북한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우리를 위협한다고, 북한이 싫다고 우리는 태평양으로 이사갈 수도 없고, 미국으로 옮겨 살 수도 없다. 북한의 내부가 불안정한가 안정적인가, 북한이 대외적으로 호전적인가 협력적인가와 같이,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도울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내부의 사정이라 해도 냉정해질 수 없고, 남의 일일 수 없으며, 외면할 수 없다.
이런 북한이라는 존재의 복합성으로 인해 우리는 미국․일본 혹은 중국처럼 북한을 대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미국적 관점의 대북관이란 우리의 문제를 미국의 스펙트럼으로 보는 것은 식민화된 시각이며, 우리를 스스로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는 절름발이임을 드러내는 것 뿐이다.

북한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북한의 반응을 분석하는 나름의 해석틀이 있다면?
북한을 흔히 비합리적 행위자로 인식한다. 북한은 함부로, 불가예측하게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의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여유가 없다. 누구도 자기의 생명을 두고 도박하지 않는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매우 정교하고 합리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일견 외부인의 시각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것은 외부의 시선에 불과하다.   북한은 함부로 자기의 논리와 주장을 바꾸고 뒤집기 보다 비교적 일관된 원칙과 논리를 따랐다. 우리는 북한의 감춰진 합리성이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 칼럼을 쓰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자세가 있다면
차거 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이념, 가치, 정치적 견해가 같다고 편들기를 하거나 옹호하는 순간 신문과 정치를 모두 죽인다. 거리를 두고 냉정한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차가운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냉소주의, 비관주의로 빠진다.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야 하고 그 것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정치를 사랑하지 않고는 비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속에서 열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독자를 유혹할 수도 없고 감동을 줄 수도 없으며 설득할 수도 없다. 열정이 냉정을 녹여서도 안 되지만, 냉정이 열정을 꺼서 안 된다. 냉정과 열정 모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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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취재를 통해 만나면서 좋은 정치가로 여기는 기준이 있는지. 투표에 참여하는 선거권자에게 김용운- 좋은 정치가를 고르는 기준으로 해 줄 말. 젊은세대의 정치 무관심에 대한 생각, 대안.(혹시 무관심하지않다고 생각할가?)
이승우 - 68혁명과 촛불의 비교. 촛불의 가장 큰 결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그밖에 추가할 수 있는 질문이나 재구성 방법에 대한 의견은?
2008-11-03
18: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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