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 편집을 하면서, 제일 모호했던 측면이 보호 민주주의와 계발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였습니다. 아마, 헬드의 글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가장 예리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데요,
9장, "숙의 민주주의와 공공 영역의 옹호" 첫 구절에서 헬드는 이 구별의 '궁극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민/대중에 기반을 둔 체체이면서도, 끊임없이 인민/대중에 대한 공포에 기반을 둔 체제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얄궂은 운명에 대한 빼어난 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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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령이 출몰해 현대 민주정치를 괴롭히고 있다. 피치자에 대한 통치자의 책임성이 확립되고 또한 인민의 활동 영역이 공적 생활의 모든 면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정치는 계몽되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대중들에 의한 통치라는 최소공분모로 추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플라톤이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해 절망했던 핵심적 이유이기도 했다(플라톤은 이를 선장의 우화 및 크고 힘센 동물의 사육에 관한 우화를 통해 설명했다). 다수에 의한 통치란 한편으로는 대중에 의한 무제한의 욕망과 이익의 추구를,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하고 근시안적인 견해의 추구를 의미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민주주의는 위험하고 잘못된 야망으로 간주되거나 아니면 입헌 구조나 입헌 메커니즘, 민주적 조치에 대한 한계 설정 등을 통해 가능한 한 제한되고 견제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플라톤이 전자의 대표적 사상가라면, 매디슨과 슘페터는 후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이야기에는, 자의적 통치나 가부장적 정치를 종식시킨 데 대한 축하와 더불어 민주주의가 폭도들에 의한 통치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모두 들어 있다.
물론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둘러싼 힘든 투쟁을 보여 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본 민주주의의 여러 모델은, 이 문제가 시대나 시기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해결되거나 일정 방향으로 기울어 왔는지를 보여 준다. 민주주의 사상사를 보면, 한편에서 정치 참여를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하고 또한 정치 참여를 근본적인 자기실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자들과, 다른 한편에서 좀 더 수단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민주정치를 자의적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자신의 선호를 표출하는(선호 취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수단으로 이해하는 자들 간에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고전적 민주주의와 계발 공화주의에서부터 계발 자유주의나 참여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관여는 정치적 효능감을 촉진하고 집합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낳으며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식견 있는 시민을 양성한다는 이유에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란 시민적 덕성을 펼치는 것이며, 민주 정체는 자기실현의 수단이 된다. 민주주의 사상가들 가운데 명백히 다수를 점하는 반대편 해석에 의하면, 민주주의란 시민을 통치자나 상대편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 또한 기본적인 공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능하고 책임 있는 엘리트를 창출할 수 있는 올바른 정치 구조가 제 역할을 하도록 보증하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즉,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목적과 목표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공재(법의 지배, 선거 정치, 사회 안전망, 안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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