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거짓말

2013-07-18 14:15:04, Hit : 3138

작성자 : 펀짱
마키아벨리가 사자와 여우의 사례를 든 이래로, 현대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게 다 마키아벨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도 합니다. 좀 더 따지자면, ‘정치학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자의 선한/고귀한 거짓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치에서 거짓말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는 듯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에서 거짓말은 좀 더 ‘숭고한 대의’, ‘주권자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 덕에 거짓말은 국가 통치술의 하나로 버젓이 활용되고 있는 듯도 합니다.

근데, 거짓말이라는 게 묘해서, 간혹 헷갈리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능숙한 거짓말쟁이라면, 자기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말 그대로 거짓말쟁이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꾸며 말하는 사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기에,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은 적어도 구별을 할 줄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능숙하지 못한 거짓말쟁입니다. 능숙하지 못한 거짓말쟁이는 그만 그 한도를 넘어가, 자신의 거짓말에 자기 스스로가 속는 것이죠. 그러면, 그 사람은 더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오늘 저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어느 한 정치인이 거짓말쟁이인지,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사람인지 도통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설마 ‘그랬을 리가’ 하면서도, 설마 ‘몰랐을까’ 하는 생각 역시 드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화를 내야 할지, 연민과 위로라도 해줘야 할지 '도통' 헷갈리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4대강 사업 관련 신문기사들을 보다 문든 득 생각이었습니다.

참고로, 아래에 인용된 거짓말에 대한 셸던 월린의 언급은 정치에서 거짓말이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 그런데, 민주주의 아래에서 거짓말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흥미로운 구절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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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민주주의가 자기-통치 과정에의 참여에 관한 것이라면, 민주주의의 첫 번째 요건은 [참여를] 격려하는 문화일 것이다. 평등, 협동, 자유를 증진시키는 신념, 가치, 실천의 종합물로서 [참여를] 격려하는 문화 말이다. 잘 논의되지 않는, 자기-통치 사회의 한 가지 핵심적 요건은 사회 구성원들이, 그리고 공직에 임명된 이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거짓말이 모든 형태의 정부에서 나타나긴 했지만, 그것은 기만의 대상이 ‘주권자인 인민’이 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특별한 면모를 지닌다. 원칙상 인민이 정치적으로 배제되는 비민주적인 형태의 정부[예컨대, 군주정이나 과두정 등]에서, 으레 거짓말을 하는 주체는 주권자 혹은 그 대리인이고, 이는 보통 주권자의 적이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다. 현대 독재 체제에서, 대중에게 거짓말 하기란 체계적인 정책이었고, 이는 프로파간다를 담당하는 특별부서의 소관이었다. 지독히 악한 농담으로서의 국가 운영 기술이라 할까…….
자기-통치는 거짓말로 말미암아 왜곡된다. 자기-통치는 공직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또는 그렇게 함이 이로울 경우, 언제든 시민을 호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가 대의 정부의 형태로 환원된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그런 정부는 그 본질상 시민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또 시민을 대변하는 대의 정치 대신, 그 반대의 정치가 나타난다. 즉, 엘리트 정치가 시민에게 재-현된다. [대의] 민주주의가 그 ‘본거지’에서 덜 개화하고 덜 활기찰수록, 대의 민주주의는 더욱 덜 민주적이 되고, 직접성 없는 정치, 진실이 없는 정치, ‘재-현된’ 정치가 더욱더 만연된다. 정치 홍보 전문가들, 여론 홍보 전문가, 여론 조사 전문가들의 시대에는 특히나 그러하다.
평범한 시민의 정치 참여가 쇠락하는 사태에 직면해, 민주주의는 위험할 정도로 공허해진다. 또한 민주주의는 애국주의, 공포, 대중 선동에 대한 반정치적 호소를 잘 수용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 허위 진술, 기만이 일상적인 관행이 되고 마는 정치 문화를 편히 받아들인다.

- [이것도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13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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