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소개, <법과 싸우는 사람들>

2011-08-10 19:57:54, Hit : 3698

작성자 : 끄로마뇽
서형 지음,
<법과 싸우는 사람들: 보통 사람에게 법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주인공은 4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인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줄곧 소송을 하고 있는 임정자 씨다. 40대 중반 이후는 소송과 함께, 소송을 중심으로 살아온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 남편과의 이혼과 재산을 둘러싼 소송을 시작으로 관련 소송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몇 년 뒤 임 씨의 재산을 둘러싸고 부동산 업자들과 또 다른 소송에 얽혀 들어갔다. 주변에 소송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의 소송이 얼마나 많은 고소・고발・소송으로 이어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녀의 소송 인생은 자신의 억울함을 법에 호소해 법대로 해결하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재판에서 항상 혼자였고 상대방은 다수였으며, 재판부는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1993년에는 오히려 사기와 무고죄로 긴급 구속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임정자 씨는 법에 ‘호소’하지 않고 법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변호사도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신이 터득한 소송 기술을 비롯해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혼자 ‘전투’에 임한다. 산더미 같은 증거 자료를 크기별로 제본해 달달 외우는 것은 기본이다. 핵심 증거를 감추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기, 자유심증주의 무력화시키기, 재판에서 주도권 잡기, 재판장의 신뢰 얻기, 재판장에게 깊은 인상 주기, 상대편 위증 판결 받아 내기, 재판 끌기, 재판장 기피하기, 계모임과 연대하기…….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 끝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재심 청구가 드디어 받아들여졌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

우리는 임정자 씨와 같은 사람들을 ‘사법 피해자’라고 부른다. 사실 ‘사법 피해자’들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는 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동네 슈퍼 아줌마, 세탁소 주인, 복덕방 아저씨 같은 서민들이라고 봐도 좋다.

이들 사이의 소송 사건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 이슈가 되기 어렵다. 그들 입장에선 “죽어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억울한” 사건이고 자신들의 “삶을 통째로 앗아간” 비극적 싸움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문에 한 줄 나기도 힘든 개인들 간의 다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이런 일들이란 우리 사회의 최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보통의 서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송사(訟事)에 휘말려 집안 망한 이야기, 그 때문에 평생 집안끼리 혹은 집안 안에서 원수가 되고 칼부림 나는 이야기를 우리는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의 사적 갈등이 법원으로 가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법이 갈등 해결의 좋은 중재자로 기능했더라면 아마 이런 책을 써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법 앞에서 이들이 평등한 시민이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법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이 책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도대체 법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하는 하나의 증언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독자들은, 풍차를 향해 뛰어드는, 그래서 여기저기 멍들고 부딪치고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채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백발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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