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추억] 희망의 길, 공동 번영의 땅, 개성공단

2013-04-29 11:18:38, Hit : 2775

작성자 : 끄로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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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 체류하던 남측 인원들이 철수하면서, 이곳을 삶의 터로 생각했던 중소기업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며, 남북 평화의 보루인 개성공단, 그곳으로의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해 볼까 합니다. <냉전의 추억>(김연철, 2009) 20번째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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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난 세월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4년 12월 15일, 그날 개성의 하늘에는 진눈깨비가 간간히 흩날렸다. 개성 공단에 진출한 첫 번째 공장의 준공식 날이었다. 그릇을 만드는 ‘리빙아트’라는 중소기업이었다. 필자는 통일부 장관 보좌관으로 그곳에 있었으며, 그날 사장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는 말했다. 남쪽에서는 더 이상 그릇을 만들 수 없다고. 고급 주방용품은 프랑스 등에서 수입하고, 라면 끓이는 냄비는 대부분 중국산이라고 했다.

그날 그곳에서 만들어진 ‘통일 냄비’ 1천 세트는 오후 2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6시 서울의 롯데백화점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테인리스 냄비 2종 세트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실향민들이 많았다. 백화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480세트가 팔렸다. 개성 공단은 그렇듯 한국 중소기업의 출구였다. 1990년대 이후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떠났지만, 결국 경쟁력에 밀려 유랑을 거듭하던 노동 집약 업종들이 찾아낸 희망의 땅이었다.

그날의 개성을 기억한다. 허허벌판에 공장 하나 덩그러니 들어선 황량한 풍경을. 길을 만들고 있었다. 구릉들을 밀고 공장 부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1년에 한두 번은 개성 공단을 방문했다. 상전벽해,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 개성으로 가는 길, 그곳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정주영 현대 명예 회장이다. 물론 처음부터 개성은 후보지가 아니었다. 군사분계선에서 8킬로미터 떨어진 군사 요충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탱크가 넘어오던 그 곳에 누가 공단을 만들 생각을 했겠는가? 1998년과 1999년 정주영 명예 회장의 역사적인 방북이 이루어지면서 공단 조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협의되었다. 현대 측은 처음에 해주를 원했지만, 북한은 신의주를 추천했다.

개성이 후보지로 부각된 것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문이었다. 정상회담 이후인 2000년 6월 29일 원산 동해 함대 해군기지에서 정주영 명예 회장은 정몽헌 회장과 함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그곳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을 공단 후보지로 제시했다. 그때 정주영 회장이 물었다. “공단에 약 35만 명의 노동자들이 필요한데, 개성시 인구는 어림잡아 20만 명 정도입니다. 나머지 인력을 어떻게 채울 것입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대답했다. “그때가 되면 군대를 옷 벗겨서 공장에 투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군인들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평화와 이를 위한 군축이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성이 공단 후보지로 확정되었다. 분단의 세월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통문이 열렸다. 지뢰가 걷히고 길이 났다. 공단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남북한의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이었고, 군사적인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이었다.

(사진은 저자 제공. 개성공단 건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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