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준비>
이대근 지음,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중, 저자와 편집자의 문답
편집자) 이 책이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중심 주제들을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먼저 책 제목에 쓰인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대근)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다. 고등학교 밴드부 출신들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는데 장면 하나 하나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영화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다. 옆집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인생을, 서민들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영화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잘 것 없고, 답답하고 한심한 인생들이 등장한다. 좌절해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아둥바둥 매달리는 사람,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학창시절의 꿈이 자꾸 멀어져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인생 행로를 계속하는게 이 영화의 주인공들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의 다수가 그럴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좌절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 제목을 빌려 왔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이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정치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이들을 위한 대안을 준비하기를 바라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불러냈다.
- 질문이 다소 추상적일 수 있겠는데,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해방 이후 아직까지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가난한 자들이 온전한 자기의 정치적 대변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고립된 결과, 이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되지 못했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 사회의 시선을 한번 보자. 그들의 가난은 능력이 없어서,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게을러서 그런 것으로 취급된다. 아는 것도 없고 사리 판단도 부족하며 세상 물정도 모른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자기 계급 이익을 위해 선택할 줄도 모른다고 한다. 계급 배반의 투표를 한다고 선거 끝나고 나면 손가락질을 당하고 산다.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이익을 더 많이 침해할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고는 후회하고 다시 그런 선택을 반복한다.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진보정당이 있지만 아직은 기성 정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가진 자에게 자기의 권력을 양도하는 이 자기 부정의 정치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게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왜 한국에는 하나의 가치, 하나의 헤게모니, 하나의 질서가 지배하고 그 결과, 이 가치․헤게모니․질서를 대변하는 정치만 존재할까. 우리가 두 개의 가치가 서로 경쟁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 다른 정치적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이 정치 체제의 완고성, 이 것이 바로 한국정치의 문제이다.
- 가난한 자가 배제된 정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보는데.
맞다. 그게 우리의 절망이다.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정부 역시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는 것이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 정치세력은 부분적으로 급진화하기도 하고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역할도 했지만, 권력을 갖고 기득권을 획득하면서 그런 거추장스러운 짐을 내려놓았다. 자기들이 지고 가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지지와 후원이 필요할 때는 야당할 때이지, 집권할 때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 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의 일시적 국면에서 자기를 대표할 정당이 없는 진보세력, 가난한 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했던 역사적 인연이 있었을 뿐, 원래 가난한 자의 정치적 대표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 보수정치의 한 분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 사회의 흔들리는 보수 헤게모니를 공고화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첫째 이 두 정부는 가난한 자를 따돌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둘째 신자유주의가 가난한 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는 분명했지만, 두 정부의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에 의해 그 본질이 은폐되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는 한국사회의 좋은 대안인양 인식시키는데 기여를 했다. 이 것이 두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한 것이다. 한때 일시적으로 가난 한 자를 대변했다는 이유로 이들이 가난 한 자를 소외시킨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가볍게 취급되고 있지만, 가난한 자를 배제하는 이 사회의 보수 헤게모니 강화에 가장 기여한 집권세력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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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에서 지식인에게 큰 기대가 부여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간 지식인에 대한 실망 역시 매우 심화되어 왔는데,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 보는지.
앎과 삶의 불일치다. 지식인들은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잘 판단할 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다르다. 보통 시민들과 달리 알 수 있는 능력과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는 바대로 하지 않는 것, 이 것이 한국지식인의 본질이다. 권력, 돈, 명예를 위해서는 자신의 비판정신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는 이들이 바로 지식인이다.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는 한국 지식인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일단 지식인은 권력과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비판적 이성이 어떻게 발휘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 결과, 너무 쉽게 권력의 요구를 가장 선도적으로 따르는 권력의 도구로 변한다. 권력에 약한 존재, 그 이름은 바로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본래 자기의 말과 글에 구속되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자기 언행의 포로다. 자기의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자기의 발언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과 명예라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구속의 대가이다. 그런데 자기의 말과 글로부터 자유롭다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데 입바른 소리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약간의 수혜라도 받을 기회를 얻는 순간, 정치권력과의 사적 인연이 맺어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깃털에 불과하다. 그리고 권력, 명예의 분배를 기대하면서 낮에 진보, 밤엔 보수하는 이중성이 생활의 지혜로 평가받는 것, 일관성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의 치기로 취급받는 것, 이 또한 지식인의 문제이다.
- 1장에 있는 권정생에 대한 헌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사회에서 권정생은 어떤 의미라 보는가
지배질서에 맞서는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에 넘쳐 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잠시 멋으로 그렇게 하는 이도 있고, 지식인은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러는 이도 있고, 자기의 능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그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권정생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멋 낼 이유가 없고, 지식인 행세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까닭도 없으며 사회적 대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의 삶, 그의 철학, 그의 일은 타협 불가능하다. 타협은 양보의 대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는 더 이상 내놓을게 없는 분이다. 그는 이 지배질서가 전복되는 것만을 원하고 있다. 그의 사상, 그의 생활, 그의 작업이 항상 일치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구도자다.
자본주의, 미국 헤게모니, 전쟁, 상태파괴를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처럼 반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 맞서고 반미주의로 미국 헤게모니에 맞서고, 평화주의로 전쟁에 맞서고, 자립 생활로 상태파괴에 맞서는 분은 많지 않다. 게다가 동화를 통해 그런 가치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빨리 너무 기성 질서를 배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어린이에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의 유일한 분이 아닐까 한다.
물론 우리 모두 그와 같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치관의 우리 사회에 이런 분이 꼭 필요하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 이제 본격적으로 요즘의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 등장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했나
17대 대통령 선거 과정은 너무 문제가 많았다. 누가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인가에 대해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선택으로 내몰렸다. 검증은 크게 인물검증과 정책 검증으로 대별할 수 있고, 인물검증은 다시 자질 및 도덕성 검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느 부분도 검증하지 못했다.
대선 당시 경향신문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외부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검증팀을 구성, 각 정당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를 포함해 검증해 참여한 사람을 놀라게 한 사실이 있다. 이명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굳히고 있는 유력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후보에 비해 정책상의 준비는 매우 부실했다. 후보별 ABCD 등급을 매겼는데 이후보가 A등급을 받는 경우는 예외적이었으며, 대체로 다른 후보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당내 경선 과정 뿐 아니라, 본선 경쟁과정에서도 이런 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정책만으로 평가할 때 그는 다른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우선 시민들이 정책의 타당성이나 완성도에 관심이 없었고 이명박 후보와 후보참모들도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정책을 가다듬어야 할 절실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이미 준비 안 된 대통령의 탄생을 우려했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혼선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물론 그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예컨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이다. 취임 때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결여한 비전과 구상, 분야별 정책을 가다듬는 작업을 해야 했다. 선거 공약 가운데 검증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것, 시민들의 반대가 확인된 것은 버리고 새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할 만한 것이라도 보완하거나 발전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 정부의 구상과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인수위가 단기적인 아이디어 발표 경쟁을 하는가 하면 매우 구체적이고 작은 제도개선책을 제시하는 등 인수위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역할을 했다.
인수위의 이런 비정상적인 기능은 신정부 출범 직후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는 정치적 사정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총선을 앞둔 인수위가 인수위 활동을 총선 공약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가졌던 것이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대선 공약의 거품이 빠지기는커녕 더 부풀려지는 결과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이명박정부가 총선이 끝난 이후 정책 구상을 재검토하고 가다듬은 것도 아니다. 총선 압승의 분위기가 긴장된 자세로 정책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계기를 놓친 것 같다. 그 결과 신 정부 출범 초기 국정 혼선과 난맥이 바로 표출되었고, 내각 및 청와 대 수석 인사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났다.
대통령 선거 과정의 잘못이 새 정부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선거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만큼 통치자로서나 정부로서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 집권 초 허니문 기간도 갖지 못한 유일한 정부가 아닌가 한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이명박의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보수파 일반의 문제인가
이명박과 보수파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정말 구분하기 힘든 문제인 것 같다. 우선 보수파 일반의 문제를 살펴보자. 보수파는 민주파 집권 10년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담론이 그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보수파 스스로 자기 토대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담론이다. 물론 보수세력 입장에서 지난 10년을 평가할 때 버려야 할 것이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보수파, 민주파를 떠나서 지난 10년간 의 변화를 특정 정권의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변화들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시민들이 보수파에게 집권의 기회를 준 것은 이런 10년 변화를 모두 부정하라는 뜻도 아니다. 보수파는 지난 시기의 변화들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했다.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파는 이 변화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10년의 변화를 감당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를 보수파가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관한 준비도 못했던 것 같다. 국가권력만 장악하면 그 권력으로 이 사회를 쉽게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명박정부의 권위와 신뢰 추락은 이렇게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기보다 이 현실을 거부하고, 세상을 자신들에게 맞추려는, 성공할 수 없는 목표에 매달린 보수파들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명박대통령은 이명박대통령 대로의 문제가 있다. 의회 활동이 일천한 이명박대통령은 CEO 출신으로 70년대 개발 독재시대 성공신화를 자신의 권위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CEO 형 지도자의 특징인 독단, 관료․재벌 동맹이 성장을 주도하던 경제 방식에 익숙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양한 가치와 우선 순위를 둘러싼 갈등과 타협, 조정의 경험도, 그런 능력을 배양할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것이 이명박정부의 실책을 낳은 배경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의 퍼스널리티가 이명박정부의 신뢰하락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2008년이라는 시점에 그의 독단적인 70년대식 국정 운영이 가능한 것은 신화에 물든 환상과 비현실성, 독단을 차단하고 견제하며 교정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한국적 대통령제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대통령이란 제왕적 권력을 장악한 이대통령은 자신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의 부재가 초래하는, 권력집중을 통해 국가를 통제하고 있다. 이 권력집중은 여론을 무시하는 용기를 주고, 그 용기는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논쟁적인 정책을 강행하게 되며, 결국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가 추락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이대통령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를 찾아 낼 수 있다. 이대통령 뿐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역대 대통령을 평가해 보면 왜 이들이 번번히 실패했는지 생각할 여지를 준다. 즉, 한국 대통령제는 실패가 내장된, 결함있는 제도는 아닌가 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이명박정부의 문제가 보수파 일반의 한계, 이명박 개인의 문제, 한국적 대통령제의 결함이라는 복합성을 띤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이명박정부의 국정난맥에 가장 책임있는 요인 하나를 굳이 고른다면, 이명박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2008년 현재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인기에 비해 턱 없이 낮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사받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지 않아도 시대 적응력이 떨어지는 보수파의 인기를 끌어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 만큼 한국정치에서 대통령, 즉 지도자의 역할이 막중하다.
- 이명박 정부는 단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하는데, 이른바 이 ‘소통부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명박의 소통 부재론은 오도된 담론이다. 집권세력이 말하는 소통 부재론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 국정과제가 시민들 사이에서 널리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 것을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의 뜻이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의 뜻을 수석과 내각이 제대로 실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집권세력 내 더 넓게는 보수파 내부에서 상호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소통이란 대통령이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욕구와 관심, 이익을 대통령이 수용하고, 대통령과 시민 의사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통해 좁히는 행위, 그 것이 바로 소통의 올바른 방식이다.
- 우리사회 보수파는 민주화 20년을 거치면서도 실제 마음속으로는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사실 보수파가 민주주의 심화가 초래할 불이익을 환영하기는 쉽지 않다. 민주화 과정은 한국의 보수들에게는 기득권의 박탈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것이 보수파들이 과연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는지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는 배경이다. 이명박정권은 시장과 시민사회를 국가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서슴없이 권력을 동원한다. 민주화 20년의 성과인 집중된 권력의 분산, 국정원의 정치개입 금지, 검찰 경찰의 정치적 중립, 사상과 양심의 자유, 다양한 역사 인식, 방송의 공공성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도전하고 있다. 보수파가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만 하다.
그러나 보수세력이 민주화에 정면으로 맞섰다면, 오늘 날과 같이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상 보수파는 민주주의와의 대립 보다는 타협의 길을 갔다. 보수파는 기득권을 부분적으로 양보하는 대가로 권위주의 체제의 협력자라는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역사적 보상을 받았다. 민주화는 보수파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으므로, 보수파는 민주주의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오히려 민주화는 보수파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민주화가 보수의 혁신을 자극함으로써 보수파의 민주화라는 민주주의 발전의 2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보수파는 과거의 반공 국시론을 탈피하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유주의 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자유주의 사상을 실현하자는 운동을 전개하는등 자유주의 이름으로 보수파의 부활을 꽤하고 있다. 자유주의 연대 주도의 뉴라이트(신우파)운동의 경우 보수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일부 바꾸는데도 기여했다. 이는 보수세력이 민주화 이후 존재양식을 고민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보수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것에 머물러 있다. 보수 스스로 변화한 것도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느리고, 변화의 방향도 분명하지 않다. 이명박정부가 국가권력을 동원해 시민사회에 개입, 자유주의적 기초를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보수파의 민주화가 과연 달성되었는가 하는 의심은 보수파들의 사상의 이 자기의 사상과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때부터 사용해왔던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자유 민주주의는 민주화의 산물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유산이다. 이는 그들의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라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들의 자유민주주는 한마디로 반공주의, 친미주의, 시장주의, 국가주의의 기묘한 혼합물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이 네 가지 요소로 바꿔치기 할 수 있는 대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공주의, 친미주의, 국가주의는 권위주의 유산이며, 시장주의가 보수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역시 기존의 국가주의와는 충돌한다는 점에서 보수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보수파가 가능한 한 민주화, 민주주의 개념을 피하고자 한다는 혐의는 선진화 담론에서도 확인된다. 선진화 담론은 민주화를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민주화 다음 단계로 제시된 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가 문제가 아니라는 이 주장을 들으면,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 세력의 민주화는 언제 이뤄질지 까마득한 느낌이다.
보수파는 보수파의 기득권을 야금 야금 갉아먹고 있는 민주주의를 자기의 정치제도로 온전히 수용했는지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파가 민주주의가 채 뿌리내리기도 전에 선진화라는 낡은 발전국가론을 퍼뜨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대선과 총선 결과를 보고 지식사회 내에서는 보수헤게모니가 안착되었다느니, 시민이 보수화되었다느니 하면서 보수정권 장기집권론을 강조했던 해석이 많았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제 확인이 되었지만, 보수정권 장기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보수가 성공적으로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은 노무현정부의 외곽 지식인들이 자기 기득권 유지를 위해 퍼뜨린 헛소문으로 판명되었다. 정권교체를 막고 민주파 집권 연장을 위한 공포의 동원에 불과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이명박정부는 출범한지 1년도 안돼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보수파들이 민주화 이후 국정을 떠맡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보수헤게모니가 이명박정부에 의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집권한 보수파의 무능과 혼선은 그동안 비교적 견고했던 보수헤게모니를 균열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정부는 자살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지식인들이 실권한 10년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보수파를 과대 평가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다.
대선이나 이명박 정부 이후 시민들이 특별히 더 보수화했다고 결론지을 근거는 여전히 없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중도층이 다소 많고 진보와 보수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진보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시민들의 성향 분포가 정치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압도적 지지에 의한 이명박후보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국회지배는 시민사회의 현실과는 다른 것이다. 이 불일치 현상은 독점적인 보수정당 체제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시민들이 보수화하지 않아도, 보수화된 기성 체제․정당체제는 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강제하고 진보적 여론을 억압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의 보수화 논리가 타당하다면, 대선과 총선에서 시민들이 보수화되었다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진보성향으로 되돌아 가고, 다시 진보․보수 후보 간 대결을 펼쳤던 서울시 교육감 첫 직선 때 보수로 회귀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민들이 이렇게 짧은 시기 동안 진보와 보수를 오락가락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설명 보다는 시민들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다. 시민들의 앞에는 선택 가능한 대안들이 없었고, 따라서 시민들은 선택을 포기한 것이다. 보수정치의 부상은 단지 그 결과일 뿐이다. 대선에서도 투표하지 않은 시민은 54%나 된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16%에 불과하다. 이 것을 두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보수정치에 투표를 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율은 낮은 상태에서 정체되어 있는데 이는 여전히 선택할 만한 정당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민들이 보수화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런 선택의 봉쇄가 계속된다면, 야당이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보수파의 무능이나 보수헤게모니의 균열과 상관없이 보수파 재집권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역시 시민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회 구조의 제한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부패로 집권당인 민주당이 위기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지 못함으로써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내 다른 보수파로 권력이 승계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진보적 시민들조차 무능한 야당을 선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결국 지난 선거는 이명박이나 보수파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민주파와 진보파가 패배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인가
맞다. 보수파는 보수적 비전과 가치를 내세워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전도, 가치도, 정책도 내놓은 적이 없다. 시민들이 보수를 선택할 명분도 근거도 없었다. 단지 노무현정부로 대표되는 넒은 의미의 민주화 운동 세력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로 그들이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노무현대통령은 강력한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업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하자마자 스스로 그런 열정을 버렸고, 개혁을 추진할 준비도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는 곧 실망으로 나타났고 시민들은 지지를 철회했다. 그러나 돌아선 시민들 앞에 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파는 정당을 다시 정비했지만, 항상 그렇듯이 시민들의 실망을 급진적 개혁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보수 회귀를 했다. 개혁과 진보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기성 정당체제에서 선택을 봉쇄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진보정당 역시 실망을 안겨 준 것은 마찬가지였다.
많은 시민들은 결국,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쪽에 투표를 했다. 시민들에게 보수정당을 선택하든가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로 내몰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수파가 승리할 수 밖에 없었지만, 보수파의 승리는 스스로 일구어 낸 것이라기 보다 민주파와 진보파의 패배의 결과로 우연히 손에 쥔 그런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2004년 총선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노동당이었다. 진보도전의 실험에 대해 처음엔 기대를 갖지 않았나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 진출할 때는 진보정치의 싹이 건강하게 자랄 것으로 기대했다. 소수파로서 국회내 활동에 한계는 있겠지만, 진보정당이 기성 정당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민주노동당 의원 한 명 한 명이 군계일학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정당으로서도 기성 정당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낼 것이라 믿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성실성, 진실성, 책임성을 갖고, 의원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형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했다. 한명이 열명의 몫을 함으로써 한국 정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비록 소수당으로서 정치를 전면적으로 바꾸고 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힘이 모자라지만, 그들의 열성과 실력으로 미루어 만약 그들이 다수라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진보정당은 이렇게 보수정당과 다르다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줄 수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시민들 사이에 진보정당을 키워야겠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켜 다음 선거 때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생 문제에 집중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잘 해낼까라는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 민주노동당 실험이 결국 실패했다는 것은 선거결과로도 이미 평가가 내려진 것 같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뭐라 보나
조직, 노선, 정책, 정당 활동 전반에서 실패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분리로 당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파간 연합 구조로 인해 당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성도 드러냈다. 진보세력의 인적, 물적 자원이 총집결된 진보세력의 총본산이 되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서민들의 벗이라기 보다는 운동권 출신의 엘리트 정당이었으며, 민주노총의 기득권에 휘둘리는 민주노총당, 참신성 보다 고루함이 두드러지는 낡은 정당, 정책적 대안 마련 보다 시위에 능한 시민단체와 같은 정당이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주한미군철수, 북핵 문제와 같은 거대 이슈, 서민들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현안에 매달림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역량을 낭비하기도 했다. 거대 이슈 매달리기나 백화점식 산만한 활동 보다는 서민들이 절실하게 생각하는 핵심 의제에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사실 하나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것은 바로 민주노동당이 세상의 변화에 뒤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변화하지도 못했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게을러졌다는 뜻이다. 원내 진출로 얻은 기득권을 지키는데도 연연했다. 각 정파들은 당내 헤게모니를 지키는데 힘쓰고 자기의 논리를 서민들에게 강요하려 했다. 그 결과로 조직, 노선, 정책이 경직되고 화석화되어 갔다. 이렇게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익과 욕구에 충실하지 못하고, 반응할 줄 모르는 정당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 자주파의 문제에 대해서 늘 지적해왔는데
자주파의 시효는 끝났다. 20세기에는 진보, 좌파일 수 있어도 21세기에는 아니다. 자주파는 더 이상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민족주의와 분단에 갇혀 있는 외로운 늑대라고 할까.
자주파는 민족을 단위로 사고한다. 그러나 민족이 지금 외세의 억압을 받고 있나. 민족이 고난에 처해 있나. 지금 고통받고 있는 집단은 민족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88만원 세대, 북한 인민들, 탈북해 중국을 떠도는 북한 난민들이다. 민족은 오히려 이주노동자, 결혼 이민자를 억압하는 주체다. 물론 식민지 시대, 미국 후원하의 독재 시대에는 민족이 저항의 단위, 해방의 단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자주파는 현 체제의 반대자․ 비판자 라기 보다 옹호자다. 이들은 분단되었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미국이 제국으로 남아 있는 한 한국사회는 스스로 성숙해질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한국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고, 진보적이고, 완전하고 성숙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또 남한의 보수, 미국과 적대적 공존을 하며 자기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많은 모순들을 해결하며 진보적으로 발전할 경우 그들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며, 결국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일본과 싸우는 진보파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은 공감이 크게 간다. 왜 우리 사회 진보파는 독도문제 앞에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진보와 민족주의의 끈질긴 인연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경험과 나라를 반쪽 낸 분단은 한국사회에 강한 국가, 민족주의 파토스를 심어 놓았고, 진보세력도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고 본다. 민족주의가 진보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제3세계 민중의 해방과 저항의 이념이자 무기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분명히 진보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 대접을 받고,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지금은 아니다.
이런 민족 문제가 두드러지는 분야가 한일관계이다. 진보세력도 한일관계를 민족문제로 환원하는 접근하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한일관계에 관한 한 누가 더 반일적인지를 두고 진보파가 보수파와 경쟁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진보파는 민족이 아니라, 서민, 노동자, 비정규직과 같은 계급을 대표해야 한다. 진보파는 민족을 대표해서도 안되고, 다른 민족과 대결해서도 안된다. 한국의 진보에게는 국제주의 전혀 없다. 이런 것은 한국현대사, 한국적 문화의 산물이므로 진보가 이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진보라면,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거나 편승해서는 안된다. 민족주의는 그 속성상 다른 민족주의를 불러온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온다. 이런 비합리적 감정의 분출은 상대를 파괴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파멸시킨다.
그런데 진보파들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열정을 주도하는 느낌이 있다. 민족문제의 편협성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진보 지식인들 조차 독도문제에 관해서는 여지없이 민족 감정에 사로 잡히고 만다. 독도문제는 영토와 과거사가 결합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과거사 문제이기도 한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노력이 한국에는 없다. 과거사라는 인식은 한국의 영토였던 것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빼앗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독도가 식민지 이전 한국의 영토였음을 누가 인정하고 존중했는지 의심스럽다.
독도문제는 결코 진보적 의제가 아니다. 일본이 독도를 지배하고 있다면, 한국인이 빼앗긴 자로서 저항하고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독도라는 영토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기득권자이다. 진보파들이 나설 이유가 없다.
- 우리사회 진보파는 자신들이 정말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지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가치나 이념만 진보적일 뿐 가끔 생각이 드는 건 현실의 진보정당들은 운동권 출신 엘리트들의 자기만족적 단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진보정당의 문제는 진보정당의 주요 지지자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산층, 대졸, 지식인들이다. 한국 사회 엘리트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엘리트들이 사회 불만을 표출하고 그런 불만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포럼이나 시민단체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진보정당이 서민들 사이에서 뿌리 내리지 못한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의 삶과 이해와는 괴리된 활동을 해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런 진보정당이라면, 서민들이 무엇으로 고통을 겪고 슬픔과 행복을 느끼는지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서민들의 삶의 위기를 구출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큰 관심을 둘 리도 없고 그런 정당을 서민들이 자기들의 정당이라고도 받아들일 리도 없다. 진보정당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 재벌과 민주주의의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한 주제다. 민주화 이후 삼성의 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민주화 이전 삼성은 재벌의 하나였다. 그 것도 매우 허약한 토대위에 놓인 재벌이었다. 관료에 의해 인큐베이터에서 성장한 재벌, 부정과 부패, 특혜, 정경유착을 통해 몸집을 키운 부실한 거인이었다. 그런 재벌이 존경받을 수는 없다. 삼성은 존경받기는커녕 가장 경멸하는 기업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민주화 이후 급성장했다. 삼성은 단순히 재벌이 아니라 삼성공화국으로 불린다. 삼성은 이제 청와대, 국회, 재계, 학계, 법조계, 문화계의 배후이자 후원자이자 실력자, 이 시대의 진정한 주권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가하고 삼성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명사가 됨으로써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겸비하기 까지 했다.
이 삼성공화국이 민주화 이후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시장 만능주의를 의미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입되면서 시장의 자유를 명분으로 시장의 통제도 받지 않는 삼성이 결국 시장을 지배하고 그 지배력으로 정치권력을 조종하며, 이 사회의 지배자로 등극했던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다.
민주화 운동세력의 집권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공정경쟁의 시장을 육성한 것이 아니라 삼성이란 독점체제를 낳았고, 삼성은 그 권력을 활용해 민주화 운동세력의 후원자가 되어 민주화 운동세력의 집권 구상과 정책을 제공하며 협력자가 됨으로써 민주화 이후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화 이후 발전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과두세력이 민주화 이후 실질적 주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은 바로 이런 민주화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상징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의 지배라는 사실을.
- 이회창이 다시 정치를 하게 되었고 그것도 15%를 넘는 득표를 했다는 것만큼 한국정치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고 본다. 이회창의 부활은 어떻게 가능했던 일일까
죽은 이회창을 불러낸 것은 한국 정치다. 한국 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수많은 이회창들이 부활할 수 밖에 없이다. 한국에는 정치적 패배를 인정하는 정치 문화가 없다. 정당 구조도 안정되어 있지 않다.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 마음만 먹으면 과거를 불문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곳도 한국이다.
이회창의 부활은 이런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 그가 부활할 수는 없다. 몇가지 상황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민주파 집권의 실정과 실패에 대한 실망, 그리고 그에 따른 진보세력의 동반 하락이다. 민주파와 진보파가 무능한 세력으로 낙인찍히면서 보수파에게 기회를 열어준 것, 이 것이 이회창에게는 부활의 토양이 됐다. 노무현정부 혹은 진보세력이 신뢰를 잃지 않았다면, 이회창은 당을 만들고,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보수파의 자신감이다. 민주파와 누가 맞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보수 후보가 복수로 출마하는 것에 대한 관용의 분위기가 있었다. 만일 쉽게 이길 수 없는 어려운 선거였다고 하면, 출마를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고 출마했다 해도 단일화 압력으로 인해 완주하기 어려웠을 거다. 셋째, 이명박 후보의 결함이다. 보수세력은 이명박 후보를 건강한 보수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의 문제가 다른 보수후보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 노무현, 이명박이 각가 갖고 있는 결점들의 결정체가 바로 이회창이다. 그런 점에서 이회창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상징한다.
뉴라이트 운동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뉴 라이트 운동은 한국 사회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 매우 좋은 계기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건강한 보수 우파는 한국사회가 절실히 갈망해온 것의 하나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보육된 한국의 전통적 보수는 사실 민주주의와는 공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독재, 부패, 반공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보수는 민주주의의 구성요소라기 보다 민주주의 밖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민주화 이후 보수는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수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보수의 혁신은 미진했다. 민주화 이후의 변화에 보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따라가야는 것에 머물렀다. 그 결과, 전통적인 보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런 보수로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재집권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보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진보 자체를 공존해야 할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보수는 진보가 자기들과 사고체계가 다르지만, 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인이라는 기본 전제를 마음으로 기꺼이 수용하지 않았다. 친북이나 빨갱이니 하며 체제의 적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보수는 성장 지체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
이 때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주도한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이른 바 뉴 라이트(신우파) 운동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전향한 386 학생 운동권 출신이 자유주의 연대라는 시민단체를 결성하면서 확산되었다. 새로운 보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던 시점이어서 이 운동은 보수세력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늦기는 했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조응할 수 있는 보수의 혁신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를 자기의 이념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보수 사이에서 반공과 동일시되는 개념으로서만 이해되던 자유 혹은 자유주의를 반공주의와 분명하게 분리시킨 것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새로운 보수가 등장한다는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이명박 정부의 집권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뉴라이트의 이념은 시장의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 시민권 권리의 보장이란 점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자유주의는 본래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뉴 라이트 운동은 그런 자유주의 기본 이념에 충실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 것은 무엇보다 뉴 라이트가 좌파라고 규정한 노무현정권과 그 지지세력과의 대결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는데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뉴 라이트는 인기없는 노무현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신 우파의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는 성공했다. 뉴 라이트는 낡은 좌파와 싸우는 새로운 보수라는 프레임의 설정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결에서 승리하는 순간 뉴 라이트는 운동으로서의 힘을 잃었다. 승리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으나, 대신 뉴 라이트 운동의 긴장감은 떨어졌다. 보수를 혁신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보수는 불행하게도 혁신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정권을 잡아야 했다. 보수는 다시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뉴 라이트는 구 우파(올드 라이트)와의 차별화에도 실패했다. 뉴 라이트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 보수세력을 뛰어 넘는 21세기의 흐름이라는 점을 부각해야 했지만, 그 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뉴 라이트의 갑작스런 성공의 결과이기도 하다. 전통 보수세력들도 뉴 라이트 운동의 인기에 편승, 스스로 뉴 라이트를 자처하며 그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그들이 관점에서 좌파세력인 노무현정권과의 대결을 우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보수 대연합이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올드 라이트와 뉴 라이트의 구분은 사라졌다. 한국은 갑자기 뉴 라이트들로만 가득한 사회로 변했다. 죽어가는 구 보수가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을 가진 뉴 라이트라는 구명보트로 옮겨탄 것이다. 뉴 라이트는 올드 라이트의 숙주, 올드 라이트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말하자면, 뉴 라이트는 올드 라이트의 시체위에서 구좌파와 싸운 것이 아니라 구좌파라는 망령과 싸우느라 올드 라이트를 부활시킨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에서 뉴 라이트는 이명박정권의 관변단체로 전락하면서 자생력과 자율성을 훼손당했다. 권력을 등에 없는 뉴 라이트는 현대사 교과서 개정, 교육 경쟁 강화 운동에서 보여주듯이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하면서 보수의 기득권자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했든 아니든 올드 라이트로의 복귀, 권력과 재벌의 수호자로의 귀환이다.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도 뉴 라이트의 노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으나 뉴 라이트는 실용주의를 패배시키고, 좌우 이념대결을 주도함으로써 낡은 시대를 재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뉴 라이트는 자신들이 낡은 좌파라고 규정한 세력과 대결할 때만 자기의 존재 의의와 실력을 드러낼 뿐, 보수를 지속가능한 보수로 탈바꿈하는 과제에는 더 이상 흥미도 느끼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동체 자유주의를 자기 이념으로 삼는다고 했지만, 한나라당정권에서 공동체는커녕 자유주의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뉴 라이트 운동은 이제 이명박정권과 동일체가 되었으며, 따라서 운명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보수의 혁신은 다음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슬픈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뉴 뉴 라이트 운동이 전개될 때가 오기를 기다려본다.
- 민주화이후의 한국정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역시 꺼지지 않는 주제는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5년전 노무현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과연 한국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올 것인가. 이 것이 그의 당선이 확인되었을 때 떠오른 상념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 정치에서 강력한 변화 열망이 정치적으로 수용되는 매우 드문 사건이었다. 비주류 정치인이 선거 경쟁을 통해 극적으로 부상하는 정치 드라마, 타협하지 않고 기득권 세력과 대결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의 등장은 그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노대통령이 강한 개혁적 레토릭을 구사한데 따른 착시현상이었지만, 강한 개혁 드라이브는 그의 운명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는 중산층사이에 참여의 열정을 불러냈다. 노무현대통령의 변화에 원칙과 소신, 참여의 폭발이 결합하면 많은 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무현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한국 정치를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화시킬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노대통령 당선의 그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지 않았을까 한다.
한국 사회의 오랜 보수 헤게모니가 그의 시대에 와서야 진정으로 붕괴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희망도 품을 만했다. 87년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드디어 열매를 맺는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낙관도 할 수 있었다. 김대중정부에서 온존되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던 과두 지배적 질서와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전환의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정부 차원에서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저변으로도 변화의 깊이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초와 집권 말의 상황은 "열망과 절망"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로서 노정권이 실패한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나
노대통령은 강력한 변화의 열망을 쉽고 빠르게 포기했다. 그러나 서민과 중산층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을 선택함으로서 다수의 시민은 강력한 개혁에 대한 희망을 표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깊은 것이었는가는 분명했다. 노무현정부 출범 첫해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2004년 탄핵정국에서 노무현정부를 강력히 지지했고, 17대 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집권당인 열린 우리당에게 과반의석을 줌으로써 노무현정부을 다시 추켜세운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정권이 출범 1년만에 당초의 약속을 파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정부 장악만으로는 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집권세력의 호소에 국회도 이끌어갈 수 있게 다수로 만들어 준 것이다. 다수의 서민과 중산층은 이렇게 노대통령을 견인해 그가 이 사회의 낡은 구조를 깨고 서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것을 바랐다. 그 만큼 서민들은 그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강력한 개혁과 변화의 길잡이가 되기를 열망했던 것이다. 다수는 그렇게 그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정부, 국회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민심을 파악하는데 게을렀고, 서민들을 위한 변화와 개혁을 실천할 의지도 능력도 준비도 부족했다. 그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 것이 그의 실패의 근본 원인이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 시민들이 그에게 바랐던 것들을 잊고 그 마음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국가를 운영했다. 그의 정권이 서민들의 열망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을 공짜로 얻은 것 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이렇게 한번 고삐 풀린 노무현정권은 그의 변덕스런 마음의 행로를 따라 오락가락했다. 그는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 이 것이 그의 실패의 본질이다.
- 대통령 내지 최고 통치자로서 노무현의 실패 원인을 꼽으라면
첫째, 노무현대통령의 배신이다. 노정권의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노무현정권을 탄생시킨 서민들의 열망을 배신한 것, 그의 실패는 이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더 이상 후보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었다. 이런 배신은 지지세력으로 부터의 고립을 불러왔고, 고립된 그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들고 자포자기했다.
둘째, 관료와 삼성에 대한 의탁이다. 국가를 어떻게 장악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노무현대통령은 자연스럽게 새 정권을 어떻게 길들일지 준비된 관료와 삼성에 점차 의존해 갔다. 노대통령은 관료와 삼성이 던지는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국가 정책으로 채택함으로써 지배엘리트의 대통령으로 자기 존재를 이전했다.
셋째, 분열의 정치를 했다. 대통령은 서민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의제를 통해 자기 주변에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전시민적 동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반대 세력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반대로 했다. 대통령은 서민들의 열망을 담은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지지세력이 이탈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의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지 기반을 침식당한 상태에서도 반대 세력에 대한 자극적인 공세를 그치지 않았다. 그 결과, 지지세력의 결집 대신 반대세력이 결집하고, 분열은 확대되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그를 위축시키기 보다 그의 도전 의지를 돋우면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분열과 분란의 주도자로 나섰다.
넷째, 자기 권위를 해체했다. 대통령의 권위는 국정의 성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그러나 그는 우선 순위에 혼란을 일으켜 권위의 해체를 우선시 했다. 권위의 해체도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대통령으로서 설득하는 힘도 약화되고,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다시 노대통령에게 설득과 타협은 매력없는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되었고, 국가 지도자 노무현으로서 보다 정쟁을 주도하는 정치인 노무현이란 이미지를 강화시켜 결국,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다.
다섯째, 비현실적인 거대 구상에 빠졌다. 현실에서의 반복적인 실패로 인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미래 구상으로 빠졌들었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변명할 수 있는 거대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그러나 신뢰와 지지를 잃은 대통령의 비현실적 제안과 구상은 그의 실패의 크기를 키웠을 뿐이다.
-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으로 시작해 ‘대연정 제안’과 ‘원 포인트 개헌 제안’ ‘한미 FTA’ 등은 역대 대통령에게서 보기 어려운 방식의 통치를 보였다. 통치자로서 노무현 스타일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노대통령의 돌출 발언과 잇단 충격적 제안은 분명 그를 과거 대통령과 구별할 수 있는 요소이다. 그는 함부로 발언하고 제안했다가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자기의 사적 감정과 의사를 이렇게 자유롭게 표출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지도자로서 어울리지 않게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으며, 그 것을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정부 5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가 바로 이 진정성이다. 그는 노무현정부 앞에 닥친 절실한 문제가 무엇이며 그 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라는 국정 수행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도가 순수했는가, 불순했는가의 도덕적 준거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그런 진정성에 대한 집착은 어던 정책이 우선 순위에 있는가 없는가,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 과정과 절차는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성과는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무시하는 경향을 띠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의 고충을 진심으로 털어 놓는 것은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직 포기 의사는 대연정 및 개헌 제안, 갑작스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라는 과도한 대통령 권력 행사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의 태도는 동전의 양면이다. 현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대통령은 순수한 의도라면 현실적 조건과 상관없이, 아니 현실적 한계를 뛰어 넘어 거리낌 없이 추진해도 된다는 진정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통령직을 차라리 버리는게 낫다고 인식한 점에서도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진정성은 대통령직을 버릴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자기 방어의 표현이자, 시민적 동의 없이도 비현실적인 구상이나 제안도 가능하고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밀어부칠 수 있다는 권력남용의 논리이자 위험한 자기 정당화의 언어이다. 노대통령의 대담한 구상과 비현실적인 제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강행하는 태도들은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탈피하려는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다. 좌절할수록,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일하는 여건이 악화될수록 더욱 도전 의욕을 불태우며 잇따른 충격 요법을 반복한 것을 그 것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노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정치적, 시민적 통제로부터 자율적인 대통령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노대통령은 대통령이란 막강한 권력은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또한 대통령의 개성에 크게 좌우되는 대통령제의 한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 노무현 정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게 ‘노사모 현상’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노사모는 새로운 정치 현상이었다. 기성 정치 제도에서는 없었던, 원칙과 자기 신념에 따라 정치를 하는, 매우 예외적인 정치인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기능을 했다.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벗어나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한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정치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그 결과, 대통령을 만들어 냄으로서 정치인에게 시류를 좇지 않고도 자기 철학을 견지하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팬 클럽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사모는 극적인 정치적 굴곡을 겪은 노무현 개인을 좋아해서 형성된 집단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개인적 성취를 노사모 회원 각자의 성취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그 성취의 극점을 이루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노무현의 관계는 개별 정치인과 팬의 관계이지, 대통령과 시민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 개인적 유대감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하는가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노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게 가능했다. 노대통령의 개혁실패와 실정이 되풀이 되면서 지지자가 떠나가는 상황에서도 그 규모가 줄기는 했어도 노사모는 노대통령에 대한 종교적 존경심을 버리지 않고 그를 무조건 지지하고 추종했다. 나아가 그들은 노대통령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당초 노대통령의 노선과 달리 이라크 파병을 해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기해도, 대연정 제안을 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도 그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기 보다 노무현대통령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지지함으로써 노사모는 정치적 의미를 상실했다.
새로운 정치 바람을 몰고 왔던 노사모이지만, 노대통령의 집권기에 참여정부의 후원자가 아닌 노무현 개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면서 정치적 성숙의 계기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노사모 활동은 정당의 틀에서 지지를 조직하지 못한 채 정당 밖에서 정당체제를 부정하면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정당정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표이자, 정당정치를 일정 부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노무현 정부에서의 386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노무현정권의 386세대 문제는 운동과 정치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한 주제이다. 우선 386세대는 운동이 정치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운동이라는 비일상적 동원의 정치적 전환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라는 실험은 실패했다고 선언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들이 정치적 공간으로 이동했을 경우에는 전혀 다른 존재로 자기를 위치짓는다. 따라서 운동권으로서 형성된 진보세력으로서 정체성은 운동이라는 공간에 국한되는 것이다.
이 운동권들은 애초부터 진보정당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진보정당에 관심도 없었다. 이들의 정치적 선택은 보수정당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성향을 띤 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복합한 설명을 요한다. 보수독점 정당체제의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운동권의 정치적 진출의 왜곡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운동권 출신 각자의 개인적 문제로 환원해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운동은 정치와는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운동권 출신이 관료 출신과 다른 점을 충분히 구별해 낼 수 있지만, 386 운동권 출신이 운동할 때의 신념과 가치를 그대로 정치에 투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신으로서의 386의 의미는 감소된다.
기존 재야 인사의 정치 참여와 달리 386들의 정치참여가 남다른 관심을 끈 것은 집권세력의 일부로서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386문제란 곧 이들이 운동의 열정으로 기성정치를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운동의 경력외에 특별한 사회적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던 이들은 민주파 집권의 진보성을 실현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누구 보다 가장 빠르고 능숙하게 현실에 적응하면서 운동의 열정이 왜 정치의 에너지로 변환되지 않는지 설명하는데 더 유용한 증거로 활용되었다.
- 열린우리당의 실패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는 별개의 현상인가 아니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결과인가
기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고리는 노무현정권의 출범 이후 노무현 계열의 세력이 민주당으로부터 분당, 열린 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만들어졌다. 노무현정권이 자기의 정당을 만들어 자기 정권의 친위부대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노대통령의 실패는 열린 우리당의 실패로 전이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관계와는 다르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후 이명박 계열의 인물 중심으로 한나라당의 내구 구성이 변하기는 했지만, 한나라당은 이명박대통령이 만든 당은 아니다. 이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배출한 대통령후보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 때문에 한나라당내에는 이대통령 비판세력이 존립할 근거지가 형성될 수 있었고, 이들의 존재로 인해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의 지침을 무조건 따르던 열린 우리당과는 다른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이대통령의 지지율 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디 높은 이유도 그런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열린 우리당은 노무현정권 맟춤형 당이었다. 노무현정권을 위한 당이었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노무현정권과 운명을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운명적 한계 때문에 우리당이 노대통령을 전혀 견제하지 못한 채 실정을 방조하고 그 결과, 노무현정권과 함께 붕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노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의 실패는 분리하기 어렵다.
당정분리 체제였기 때문에 책임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정분리는 당과 정부 모두를 실패로 모는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다. 우선 당정분리는 정당정치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었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분리했다는 점에서 당과 정부의 실패가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리라는 어법에도 불구하고 당정은 실질적으로 분리된 적이 없었다. 집권당은 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간여하지 못하고, 대통령은 여러 가지 수단으로 당을 자기 통제하에 두는 것이 당정분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열린 우리당이 중심을 잃은 채 표류하다 스스로 보수화하고, 심각한 리더십의 결여를 보인 점은 노무현대통령의 실패와 상관없이 열린 우리당이 책임져야 할 몫이 따로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권 말기 열린 우리당 지지율이 노대통령 보다 낮았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 노무현 이후 야당에서 제대로 된 후보대안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야 하나
노무현 정권의 몰락은 생각 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단지 하나의 정권이 실패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노무현정권은 진보와 개혁의 수사를 즐겨 동원했고, 이로 인해 노무현정권은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는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노정권이 범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낳았고 이런 인식상의 오류로 인해 노정권의 실정은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대통령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낮은 지지에 머무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야당에서 야당을 구출할 생존자를 찾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노대통령의 통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노대통령은 열린 우리당을 정부로 흡수했다. 당의 주요 지도자를 내각의 장관으로 영입한 것이다. 정부에 참여한 이들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야당의 대안적 후보군이 보존될 수 없는 통치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조건의 결과이지만, 당내 비판 그룹의 존재를 노대통령이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제기능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당내에는 의미있는 비판그룹의 활동 기록이 없다. 만일, 비판그룹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허용했다면, 대안이 될 수 야당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민주당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여당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현실이다. 야당의 역할은 필요 없어진 것인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이 아무리 높아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 보다 훨씬 높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이명박정권의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자, 민주당의 역할에 대한 불신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 대한 부정이 곧 야당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야당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 정권이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그 정권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야당에 의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이다. 만일 야당이 실질적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야당이 별로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온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2008년의 정국은 그런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야당은 그저 장식처럼 어딘가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권위주의 체제에도 야당은 있다. 야당이 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야당은 집권 가능해야 하며, 그 가능성에 의해 집권세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세력이 견제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국정의 파탄, 권력남용과 부패, 비리의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없다. 이명박정부에서야 말로 야당의 역할이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중요한 때에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당이 없다. 이 것은 야당의 불행일 뿐 아니라 이명박정권의 불운이 될 것이다. 견제와 감시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체제에서 이명박정권은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모를 것이고, 결국은 벼랑끝까지 내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제동장치 풀린 채 내달린다면 시민도 불행에 빠뜨릴 게 분명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촛불집회도 하고, 이명박정부의 무리수에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들을 대변할 야당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바로 이 때 신뢰할 만한 야당이 없다는 사실, 이 것 보다 시민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야당이 없다는 것 이 것이 바로 야당의 문제이다. 소수당이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한나라당과 경쟁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미래 야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야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명박정권에 실망하고 있는 다수를 자기의 지지 세력으로 결집할 수만 있다면, 소수당이라 해도 다수당 못지 않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사회의 의제들이 모두 표결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토론과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며 이런 과정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정책이 있다면, 소수당이라는 사실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소수당이라서가 아니라 미래가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미래가 없는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가 있는 야당의 모습을 그려보자.
첫째. 민주당은 애매한 중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도가 무엇과 무엇 사이의 중간이라는 뜻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노무현정부를 좌파정부로 보고, 좌파개혁이 심판받았으니 그 보다 우경화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중간을 민주당의 안전 지대로 삼은 것 같다. 그러나 범 진보세력의 지지로 출범한 노무현정권이 실패한 것은 급진적 개혁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료들의 논리에 매몰돼 스스로 보수화하면서 국정 난맥을 초래하고 결국 개혁에도 실패함으로써 범 개혁 세력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대통령도 진보와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폭 넒은 지지를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직후 잇단 실정으로 지지자의 이탈이 급증하자 보수세력이라도 결집하기 위해 강경 우파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노무현․ 이명박 정권 모두 과격한 우경화로 진보와 중도의 지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나라당과 경쟁하는 야당이라면, 이렇게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 사이의 비좁은 틈 사이에서 중도를 자처하며 숨을 것이 아닐, 진보와 개혁이 있는 중원으로 당당히 옮겨 가야 한다. 시민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에 우경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논리로는 촛불집회를 설명할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야당이라면, 진보적 개혁주의 노선으로 전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되찾고 그에 합당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민주당은 이명박정권에 실망한 시민을 조직하지도, 대표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실망한 다수 시민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과 대결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도 민주당에게 반사이익이 없는 것이다. 시민들은 민주당을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서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각인되지 않는 한 이명박정권과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서민과 추락 위기에 처한 중산층의 불만을 조직하고 변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주체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는게 우선 순서이다.
셋째,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세력의 잔당이다. 민주당은 파탄난 지난 10년 정권의 잔존세력이 생존을 위해 재결집한 당이다. 무엇을 지향하기 위해 모인 미래 정당이 아닌 과거의 정당이다. 이런 정당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패배의식과 콤플렉스에 젖은 노무현 김대중 정권의 생존자 모임이 할 수 있는 것은 실망한 시민들을 한나라당 주위로 몰려가게 하는 것 뿐이다. 잔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매일 거리의 정치에 나선다 한들 거리의 시민들이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반도 허약해 집권당과 타협하고 양보할 처지도 못된다. 장외 투쟁에도 동력이 생기지 않고 장내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딜레마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과거의 실패를 변명하고,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허덕이는 정당이 아니라, 서민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들의 희망을 깨우는 새로운 야당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민주당의 전면적인 쇄신을 통해 거듭날 수 없다면, 당안팎에서 새로운 정당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정치와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뭔가
무엇보다 보수 헤게모니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보수 헤게모니는 크게 위협받은 적이 없다. 민주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의 생존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도 있다. 탈권위주의 과정에서 보수가 한 때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보수적 사회질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는 시민이 보수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수정치각 시민들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치란 다른 가치와 대안들 간의 경쟁이다. 그런데 선택할 대안이 없다면 정치의 발전, 정당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보수 양당 체제로 유지되어 왔다. 이 체제에는 강력한 도전자가 없다.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들의 정치적 대표가 없다. 이들을 배제한 보수 양당체제이니 매우 안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배제의 정치에서는 정당이 시민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경쟁하는 그런 긴장감도 없다. 노선과 정책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보수정당들 사이를 분별하는 것은 계보학 뿐이다. 누가 누구의 계보이며 누구를 모시고 있는가가 이들 사이를 구별짓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런 조건에서 노선이니 정체성이니 정당간 차별화니 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새로운 정당은 끊임없이 차별화를 위해 창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차이는 점차 사라지고 다시 동질화해갔다. 보수 양당체제는 누구를 대표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당들이 모두 같은 기반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지만,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런 모호성은 보수 정당이 기득권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은폐할 뿐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을 낳기도 한다.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일상적인 긴장이 없는 한 한국 정치, 정당정치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외에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이 매우 짧다는 점도 있다. 정치 지도자를 키우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그 성과를 차분히 기다리는 인내심이 부족한 것도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정치 혹은 정당이 시민사회와 괴리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정치는 고립된 영역이 아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사회의 각 부분의 활동의 발전된 형태가 바로 정당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당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의 하나가 아니라, 최고 수준의 조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즉, 반정치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 정당 발전은 어려운 것인가
원칙적으로 대통령은 정당의 일부이다. 그러나 한국의 강력한 대통령제에서는 정당이 대통령의 일부이다. 대통령은 정당을 사유화할 수도 있고, 그 것이 여유치 않으면 자기의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
대통령과 정당의 관계를 편의상 다 유형으로 구분해 보자.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는 유형이다. 한나라당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스스로 자기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열린 우리당의 경우이다.
먼저 한나라당은 여러번의 대통령 후보를 냈고, 이명박대통령은 그 중 한 명일 뿐이다. 대통령도 당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대통령에 종속되는 정도는 대통령이 스스로 정당을 만든 경우와는 다르다. 대통령이 당을 지배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다. 당내 경선의 과정을 통해 당내 반대 세력이 뚜렷이 형성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당을 장악한다 해도 경쟁세력은 소멸되지 않으며, 그 결과 당내에서 어느 정도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스스로 당을 만든 경우 당내 반대세력은 제거되거나 크게 위축된다. 이렇게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성된 당은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기 쉬우며 정당의 성패 역시 대통령의 성공 여부에 의존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통령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이 생존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열린 우리당은 대통령 실패가 곧 당의 실패로 직결되므로 당의 독자적 생존에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 두가지 유형 가운데 한나라당 유형은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도 정당의 발전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대통령이 사후에 만든 정당이든 아니든 강력한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정당을 쉽게 대통령 맞춤형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대통령 맞춤형 정당은 당안팎의 다양한 이해와 관심을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타협과 설득의 정치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당발전을 제약한다. 한국과 같이 강력한 대통령제의 전통, 약한 정당의 조건에서 정당발전은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하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헌 반대만 말할 게 아니라 내각제 개헌 등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개헌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 중임제 지지자는 대통령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통령의 실패를 임기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5년 임기가 대통령의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중임제가 더 좋다는 생각은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노무현․ 이명박 두 대통령의 경우 임기 초반에 급격한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국정운영의 잘못이 임기가 짧고 길고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레임덕 방지를 위해 중임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지만, 중임제는 임기말 레임덕을 다음 임기로 연장할 뿐이지 레임덕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한다.
중임제는 단임제 보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안정적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보장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국가 운영에서 최우선 순위가 안정적인 대통령 권력의 보장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제에는 대통령 권력의 부족이 아니라 권력의 과잉에 문제가 있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가 말해주듯이 5년 단임이라 해도 다수의 반대에 맞서 논란이 많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 부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4년 중임제가 도입되면 미국에서 보듯이 사실상 8년제 대통령이 된다. 그렇다면, 8년제 대통령이 권력을 얼마나 집중시킬 것인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견제 없는 강력한 대통령 권력이 집권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이견과 반대를 흡수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적 덕목을 무시하는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통령이 집권당을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8년제 대통령은 집권당을 통치의 도구로 변질시키고 사당화함으로써 정당정치를 왜곡시킬 수 있다. 또 대통령 권력을 어떻게 제한하는 가의 문제를 대통령 권력의 안정적 보장 보다 덜 중요한 과제인 듯 인식하는 것도 문제이다. 대통령 권력의 보장이 아니라 제한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임제가 아니라 내각제 개헌론이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내각제 논의는 왜 배제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다시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라는 제도적 장단점을 논하는 오래된 논쟁에 빠져들고 되고 한국정치의 결함을 제도의 문제로 풀려고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단임제 조항 하나를 바꾸기 위해 개헌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개헌 논의는 필연적으로 권력구조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의 폭발을 불러오고 이념대결을 부추길 수 있으며, 사회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중임제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헌논의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헌이 국정 과제의 우선 순위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 비정규직, 부동산, 교육, 서민들의 삶의 질 하락 등 더 시급한 과제가 많다. 개헌논의는 앞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시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헌법 보다 현실정치이다. 헌법은 현실을 개선시키는데 효과가 크지 않다. 헌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바뀐 헌법이 삶의 개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헌법개정에 사회적 자원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시민들도 개헌을 전제로 했을 때는 다양한 헌법개정 의견을 피력하지만, 지금 개헌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개헌은 여전히 정치 엘리트의 관심사 일 뿐이다. 정치엘리트들의 개헌론은 헌법이 문제여서 정치를 잘 할 수 없다는 정치적 변명 거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개헌론은 정치엘리트들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의심받고 있다.
- 민주화이후 언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최대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언론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신뢰의 상실이다. 언론의 보도는 더 이상 믿을 만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왜곡하거나 과장하거나 축소 또는 누락했다는 의심없이 편안하게 기사를 읽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고, 나아가 의견이 사실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는 언론이 자신을 특정 정파와 동일시한 결과이다. 언론은 특정 정파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 기사를 확대 과장하고 불리하면 기사를 축소 왜곡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언론은 또한 스스로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인식한다. 특정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자신의 임무라고 여기고 사실을 받들기 보다 이데올로기의 확산 도구로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 이 것이 바로 한국언론이 공정성과 객관성에 소홀한 이유이다. 그러나 언론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면서 얻는 이익 보다 하나의 정당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추구하며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이런 행태는 단기간에 사라지기 어렵다.
이런 언론의 문제점은 언론의 지배형태를 통해 잘 나타난다. 소수의 독립언론을 제외하면 한국언론의 주류는 족벌신문, 재벌신문, 종교재벌 신문이다. 소유주의 기득권과 취향이 언론의 보도 방향을 규정짓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주류 언론은 사회의 공기와는 거리가 멀다. 독립언론은 이런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사실보다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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