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현실 (후기)

2009-07-07 19:11:38, Hit : 4464

작성자 : 박상훈
저자 후기






1

처음 이 책을 준비하면서는 누가 지역주의 문제에 관심이나 가질까를 걱정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정반대의 걱정을 하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이고 지역주의 극복 없이는 안 된다’는 일종의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론’이 다시 불러들여졌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그렇게 접근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의 의견과 충돌하는 이견을 말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반(反)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부활하면서 “지역주의 극복 없이는 남북 관계 개선도 노동 문제도 사회복지도 진보도 배부른 소리”라는 주장으로까지 치닫게 된 데에는, 답답한 현실을 초극해 보고자 하는 강한 대중적 열망이 내재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갖는 보통의 사람들이 개개인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적 상황을 단숨에 넘어서고자 하는 절박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많은 문제를 지역주의로 환원해 설명하는 일종의 이념화된 해석 틀이 쉽게 동원되고 확산되다가 어느 순간 소멸한 듯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1987년 6월 권위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민 항쟁의 결과로 개헌하고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게 되었는데, 결국은 권위주의 집권당의 노태우가 당선되는 것으로 투표가 끝났다. 이때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양김(김대중, 김영삼)의 분열 내지 지역주의에 그 원망을 쏟아 내야 했다. 강렬한 변화의 욕구가 실망으로 귀결된 그 정서적 상황에서, 기존의 권위주의 국가가 주관하는 선거 경쟁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거나 구체제의 수혜자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지역주의를 불러들이고자 했고 야권을 분열시키고자 했는지 하는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설명을 찾는 것은 한가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공산당 투표도 아니고 90% 김대중 지지하는 전라도 애들 뭐야”라는 원망 담긴 원색적 표현이나 “새끼라도 더 날걸” 하는 어느 전라도 촌부의 한숨 섞인 자조가 훨씬 더 공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국 정치는 긴 실망과 짧은 열망이 교차하는 주기적 사이클을 반복해 왔는데,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모든 게 지역주의 때문이라며 마녀사냥 하듯 몰아 부친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며 오히려 그런 열정을 다 분출하고 나면 냉소적인 정치관만 남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오래전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라고 하는 미국의 한 사회학자는 중남미 정치에서 사회운동이 가진 특징을 “국면에서는 강하나 전략적으로는 취약하다”라는 말로 정의했는데, 필자는 이 말이 한국 정치에도 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역시 변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특정 국면에서 모든 가능성을 다 실현할 수 있을 듯이 강렬하게 터져 나오지만,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오면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세력들의 영향력이 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국면을 지배하는 그러한 열정이 그간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제어해 온 결정적인 요인인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더 더욱 열정의 동원을 이상화하는 주장이 많지만 그래도 이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가 일상적인 시기에도 꾸준히 실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체제를 움직이는 힘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더 많이 필요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도 보다 더 수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열정의 휘발성을 보완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은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힘을 합치게 되고, 이상적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의미를 찾게 되는데, 바로 그럴 때 인간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나날이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마치 악의 근원처럼 다루는 태도는 인간의 꾸준한 노력과 양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뭔가 만인의 공적이 될 만한 것을 동원하려는 조바심의 결과이자, 사회를 근원적 악(망국적 지역주의)과 그에 맞서는 선(반지역주의)으로 양분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로운 전쟁’에 나서도록 흥분시키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가 대면해야 할 진짜 현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라는 해석 틀 안에서 한국 정치를 볼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한국 정치의 여러 특징들 속에서 객관화해서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과제다.


3

본문에서 거듭거듭 말했거니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호남의 지역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에 호남 차별의 지역주의가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냉전 반공주의라고 하는 지극히 배제적인 이데올로기적 환경과, 그 위에서 전개된 권위주의 산업화가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 긴장을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할 필요 때문에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된 것이다. 성장의 혜택을 분배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갖고 싶어 했던 비호남 출신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반호남 지역감정의 확산을 도왔다. 노사 관계든 정당체제든 기능적 대표의 체계가 발달했다면 그러한 비이성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작용을 제어할 수 있었겠지만, 오랜 권위주의 체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물론 공개적으로 호남의 지역주의를 공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애초부터 호남이 차별받아야 할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권위주의 산업화가 수반하는 갈등의 비용을 전가해야 했다는 사실과 함께, 호남 출신이 사회 하층의 가장 큰 인구 집단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겠다. 또한 호남 출신 정치인이 권위주의 산업화에 위력적인 도전자가 되었다는 사실, 호남 출신이 반독재 저항운동의 핵심 충원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사실 때문에 호남 차별이 당연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호남의 지역주의가 공적인 담론 공간에 나타날 때는 늘 지역주의 일반을 부정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이다.
냉전 반공주의 하에서의 권위주의 산업화가 반호남의 지역감정을 낳고 그것이 호남의 소외 의식을 가져왔다면, 그처럼 모든 지역주의를 동질화하고 무차별적인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호남의 지역주의가 DJ 주변 세력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문제 역시 이러한 기초 위에서 따져질 때 의미가 있다. 분리해서 보아야 할 것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는 늘 유해한 결과를 낳는다. 이런 생각들이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이 책에서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의 하나다.


4

이 책에서 필자는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지역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지역주의 선거를 극복하자며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것이 왜 공허한지, 나아가서는 그러한 주장을 망국적 지역주의론으로 이념화하고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왜 유해한 것이었는지를 분석했다.
지역이라는 차원으로만 보면 세계에서 가장 지역 간 차이가 적은 매우 동질적인 나라인 한국에서 왜 선거만 하면 지역 간 차이가 다른 차이를 압도하는지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가 갖는 구조와 특징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선거 경쟁만 민주화되었을 뿐, 권위주의 하에서 주형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권위 구조가 여전히 건재한 데 있다. 가치의 분배가 지나치게 국가 중심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도 개선되어야 한다. 그것의 공간적 특성이라 할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소수의 집단이 사회 여러 부분의 혜택을 독점하는 동심원적 엘리트 카르텔 구조도 다원화되어야 할 것이다.
좁은 이념적 범위 안에서 조직되고  계층적 차이에 의해 차별화되지 못한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며, 이런 구조와 조건에서 만들어진 하층 배제적 사회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추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지,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흥분하면서 정작 중요한 개혁 과제를 억압하는 데 있지 않다.


5

그간의 내 생각과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나의 선생님, 형들과 형수님들, 선후배님들과 친구들, 출판사 식구들, 엄기문, 박해민, 박수민은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고 또 전부이기도 하다. 이들만이라도 실망시키지 않고 살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 늘 미안하다.


2009년 7월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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