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부러진 화살> 다시 보기

2012-01-06 10:53:42, Hit : 6530

작성자 : 끄로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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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판사는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이라는 르뽀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복합적 단면을 응축해서 보여 줄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여성 작가 서형의 첫 작품이며, 르뽀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만한 책입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2년간 현장과 부딪혔던 작가의 기록>

출판사는 이 책을 어떻게 출판하게 되었을까요? 출판사에서 먼저 석궁 사건을 책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판단해서 작가를 찾아 나섰는데, 의외로 쉽게 찾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어에 “석궁 사건”을 입력했더니 석궁 사건의 재판에 대한 모든 기록이 그녀의 블로그(“서형 인터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관련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기록도 풍부했습니다(당시 서형 작가는 지금까지 인터뷰한 사람만 5천 명이라고 할 정도로 현장과 부딪히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김명호 교수와의 인터뷰는 기본이었고, 김 교수의 친구들, 변호사들, 가족들, 유사 사법 피해자들, 이 사건을 다룬 기자와 피디들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직 부장판사와 법원 직원과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지난 2년간 재판을 부지런히 추적했던 작가의 노력이 만든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블랙코미디>

이 책은 묘한 책입니다. 어떤 언론은 이 책이 단순히 법정상황과 사건을 기록한 보고서처럼 보도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사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현진건의 '빈처'나 '운수좋은 날', 모파상의 '목걸이'를 읽은 것처럼 몹시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비극적인 블랙 코미디의 여운이 진하게 남습니다. 책 속의 캐릭터들이 잘 살아 있으나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보고서라기보단 인상적이고 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혹은 르뽀 쪽에 가깝겠지요.

<이상한 재판>

이 책은 석궁 사건이라는 한 사건의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우선 그 재판 자체가 묘합니다. 저자는 이 재판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이었다. 먼저, 판사 앞에서 피고인이 얼마나 불량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직접 참관한 7차 공판 이전에 이미 김 교수는 두 번이나 감치를 받은 바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감치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을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가두는 것을 말하는데, 4차 공판에서는 ‘이런 개 같은 법정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다가, 두 번째는 6차 공판에서 ‘재판장님’ 대신에 ‘김용호 씨’라고 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 ‘저는 법 안 지키는 판사들을 판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김용호 ‘씨’라고 존칭을 했습니다. 뭐라고 불러 드렸으면 좋겠습니까?’…… 피고인의 태도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재판장의 태도도 흥미로웠다. …… 증인으로 나온 박홍우 판사도 말이 왔다 갔다 했다. …… 검사의 표정도 재밌었다. …… 방청객들은 또 어떤가. 재판 중인데도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가 정상적인 재판정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이상한 2시간짜리 재판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때부터 나는 이 재판에 매달렸고, 지난 2년의 시간 거의 대부분을 여기에 쏟았다.”

<법대로 하라는데 쩔쩔매는 법관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은 장난이 아닌 존재입니다. 잘못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신세 망치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명호 교수는 아주 특이한 사례입니다. 무모하게도 그는 “법대로 해달라”를 외치며 판사와 검사를 향해 달려 나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공판을 거치는 동안에도 그는 일관된 요구를 했습니다. 바로 “있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지요. 법을 집행하는 판사, 검사와 법의 보호를 요구하는 사람이 만난 셈인데, 형식논리로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연출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피의자가 준법을 바라는데 판사로서는 이보다 좋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그랬을까요?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피의자가 판사, 검사에게 법을 지키라고 호통을 치는 법정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법을 지키자는 피의자의 주장 앞에서, 판사든 검사든 법의 집행자들이 쩔쩔매는 행태를 보인다면,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법 정의가 법 집행자들에 의해 실천되지 못한다면 법원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대체 법원이란 무엇이고 재판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은 흥미로운 한 재판을 소재로 바로 이 질문들을 따져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김명호 교수와는 다른 시각에서 본 재판>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김 교수를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를 권력화된 사법부에 맞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불굴의 싸움을 벌인 ‘위인’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이 영화 <부러진 화살>과 크게 다른 점을 꼽는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겁니다. 작가는 김 교수를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 불편한 성격을 갖고 있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멍청이’, ‘쓰레기’, ‘개소리’, ‘개판’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성질 깐깐한 수학자”, 그래서 이 책의 작가 또한 그로부터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좋아지지가 않는” 사람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가 훨씬 생생하고 실감이 납니다.
중요한 사건은 결코 한 가지 시선으로 요약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 역시 그렇지요. 이 책의 6장은 이 사건을 보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살펴보고 있는데, 생각이 많이들 다릅니다. MBC 김보슬 피디도 있고 SBS 윤창현 기자도 있고 부산지법 문형배 판사도 있고 법원 공무원 김형국 씨와 사법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 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모아질 때 대한민국 사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와 나아가야 할 미래가 선명해질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법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이들의 시선을 눈여겨봐야 하겠지요.

<작가 서형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작가 서형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주인공 김명호 교수가 이 책이 출간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책을 내려고 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이 잊혀 지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최갑수 교수가 말했듯이 석궁 사건은 현대사의 기막힌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인데, 시간은 점점 지나고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잊어 가는 것 같아, 잊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사법부는 보통 사람들이 기대어야 할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정화조’라고 할까. 사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라는 공동체는 썩고 말 것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공론화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도서 시장에서 많이 팔리지도, 많이 알려지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형 작가가 이 책을 썼던 것과 같은 문제의식이,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다시금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소개해 봅니다. 그리고 시사회를 본 주변 분들이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고는 사건이 이해된다거나(이 사건이 꽤 복잡하거든요) '책이 참, 재미있다'라고들 하더군요. 영화도 많이 보시고, 책도 많이 보시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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