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출판 동향(교수신문)

2009-01-06 10:58:42, Hit : 4311

작성자 : 펀짱
주요 학술출판사들이 올해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책의 면면을 보면, 갑갑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물색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의 출간예정 도서목록을 보면 무겁지만 역량이 기대되는 책들의 귀환이 점쳐지고 있다. 멀게는 이국의 저자에서부터 가깝게는 국내 신진 저자의 뚝심이 역력한 책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혁명적 에너지와 상상력의 귀환을 꿈꾼다’라는 모토의 세기의 혁명가들의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 프레시안북이 눈에 들어온다. 마오쩌둥, 로베스피에르,  호치민, 예수, 트로츠키, 카스트로, 제퍼슨, 볼리바르, 페인, 마르크스 등의 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살림출판사는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민음사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을, 도서출판 길은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와 그 적자들』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그리고 울리히 벡의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반대권력』을 내놓는다. 특히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작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좀처럼 역자들이 달겨들지 않은 저작이라, 국내 첫 번역이 자못 기대된다.

국내 필진 이론적 역량 과감히 선보여
국내 필진이 직접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책으로 펼쳐내는 경향도 엿보인다. 서울대학교출판부는 『한국사회 트렌드를 읽는다』(정진성 외), 『한국의 사회운동가 진보정당』(임현진) 등의 저서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도서출판 길은 『소수자의 정치학』(이정우)과 『스피노자-현대철학에의 함의』(진태원) 등의 책으로 사회를 근본에서 해독하는 국내 필진의 이론적인 높이를 과감히 선보일 예정이다. 이정우 박사는 들뢰즈·가타리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이고, 진태원 박사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철학에 기반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두 저자의 관점차를 비교하면서 프랑스 철학 내부의 이론적 긴장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매진은 『학출-80년대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과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미 전설이 되고 있는 뜨거웠던 시절을 돌아보고자 한다. 따듯한 방구석에서 ‘설’만 풀어내기에 바쁜 요즘 지식인들의 현주소를 반추하는 계기도 기대해본다. 단, 한 때 유행했던 ‘후일담’의 토로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공존한다.


한편 정치사상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세부적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저작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꾸준히 출판 트렌드의 상수로 자리 잡은 여성주의 관련 저작도 올해 역시 선을 보인다. 책세상은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이성숙)와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차이의 정치학, 탈식화와 재식민화이 경계』(권명아)등의 저작들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 옹호』와 올리브 슈라이너의 『여성과 노동』을 번역서로 준비 중이다. 무게 있는 철학서로 알려진 철학과현실사도 『여성 리더쉽의 공간과 철학』(윤혜린)과 『지구화 시대 여성주의 철학』(윤혜린)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성주의 관련 저작의 경우, 예전의 단순 개괄서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주제를 신선한 포맷으로 서점에 등장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올해 출간이 예고되는 몇몇 저작들이 동어반복적인 주장을 하지 않길 기대해본다.


환경 역시 오늘을 사유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도서출판 한울은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최병두)와 찰스 하퍼의 『환경과 사회』를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단순한 자연 보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환경정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론이 주목을 끈다. 다만 자칫하면 인간 중심주의로 환경을 사유하는 한계에 갇힐 수도 있는데, 저자들이 어떤 지혜를 발휘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민음사의 『저탄소 경제, 경제의 지도를 바꾼다』(김현진)는 정책적인 관점에서, 인간사랑의 『마르크스의 에콜로지 : 유물론과 자연』(존 벨라미)은 사상적 관점에서 환경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연구 성과를 선보이는 저작도 포진을 하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동아시아사』(제임스 팔레 외)를, 도서출판 한울은 『중국과 베트남 : 비대칭의 정치학』(브레틀리 워맥)을, 창비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동아시아 3국 근대이행기』(김동노 외)와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미야지마 히로시)를 예고하고 있다. 그린비가 출간 예정 중인 『80년대 중국과의 대화』(자젠잉 외)와 『거울 속에 있는 듯』(다이진화)은 현대 중국에 초점을 맞춘 저작들이다.

동아시아를 읽는 차분한 시선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 활약한 유명인들의 자서전 내지는 평전도 다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삼인출판사는 『히로히토 평전』(허버트 빅스)과 『문동환 자서전』(문동환)을 준비하고 있고, 시대의 창은 『안중근 평전』(김상웅)을 예고하고 있다. 돌베개도 『황종희 평전』(쉬딩바오)을 선보인다. 동아시아 지역 연구는 아무래도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할 수 없어 편향된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경향은 차분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기대가 된다.


예년에 비해 대안적 삶과 사회를 염두에 둔 저작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 철학 저작들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학술 연구의 무게가 더해져야 실천적 고민의 질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와 역자 그리고 출판사들이 모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인식 변화이겠지만 말이다. 학술 출판의 좌장격인 아카넷은 무게있는 학술서 다수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을 가다머 전공자인 김창래 교수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 교수가 준비하고 있으며, 꾸준히 하이데거 책을 번역해 온 신상희 박사가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의 해명』을 번역한다.

아카넷이 간혹 프랑스철학서를 번역해왔지만, 올 예정 책들은 독일철학에 편향된 것이 눈에 걸린다. 독일철학은 무거운 학술 고전의 대접을 받고, 프랑스철학은 유행에 영합하는 대중용 서적의 취급을 받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개운하진 않다. 고전의 번역 이전에 무엇이 고전인가, 고전을  선정하는 기준은 객관적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고 기발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최근 역사학 저서의 경향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소문사설-조선의 기술사』(부유섭 외)와 『조선의 문자생활사』(심경호), 『동다기-차의 문화사』(정민)를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출판사의 『인과성의 문화사』(스티븐 컨)도 기대를 모은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이런 책들의 기여 덕분이 아닐까.

고전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모티브북은 셸던 와츠의 『전염병의 역사: 질병, 제국주의의 힘』을 선보인다. 전염병과 역사는 이미 출판시장에서 여러 번 재미를 보았던 소재인데, 이번엔 다른 관점과 주장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시리즈를 예고한다. 『한국의 김치』(김숙희)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차, 전염병, 관습, 의상 등 별의별 사소한 것들의 역사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출판 시장의 트렌드에 비춰 눈길이 가는 소재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특히 우리의 일상사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이 큰 듯하다. 일조각은 『경기민요』(정동화)를 내놓을 예정이고, 소나무는 『한국의 아악은 없는가?』(한흥섭)와 『육담 박물관』(김선풍)을 준비하고 있다. 돌베개의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 외)도 빼놓을 수 없다.


건축 관련 저작들도 예년에 이어 꾸준히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노마드철학과 서양건축』(이진경)을 통해 서양건축에 대한 철학적 독해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녘은 『표면의 건축』(데이빗 레더 배로우 외), 『전통건축 해체도』(김왕직 외), 『영건의궤와 조선의 건축』(김동욱 외) 등 건축 관련 저작을 대거 내놓을 전망이다. 소나무 역시 『건축학과 함께 하는 백제 도읍지 기행』을 내놓을 예정인데, 전통 건축을 역사와 접목해 소개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책이다. 건축에 대한 관심은 종합적 문화에 대한 열망을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홍지웅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구입했었는데, 초기에 읽다보니, 우선 슈미트의 저서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 앞으로 슘페터나 필립슈미터, 보비오의 저서들도 복간되었으면 하네요..^^ 2009-01-07
09: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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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짱
홍지웅님. 예, 아마 최근 들어, 칼 슈미트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그의 글도 재번역이 되고 있는 듯하네요. 우리 영업팀 박경춘 대리가 말한 것처럼, 샹탈 무페의 책에도 칼 슈미트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무페는 칼 슈미트에 관한 논문을 편해서, 칼 슈미트의 도전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도 있지요.폴라니의 "거대한 변환" 역시 길 출판사에서 조만간 출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디스 벋 구디스가 음악에만 있는 건 아니지요.. ^^ 2009-01-06
17:49:51

수정  
박경춘
"'정치적인 것의 개념' ^^... 문득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 떠올랐다는 ㅋㅋ 2009-01-06
16:25:37

수정  
홍지웅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다시 나오는 군요- 제본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ㅎㅎ
칼폴라니의 "거대한 변환"도 어디서 나온다고 그랬던거 같은데..ㅎ
2009-01-06
11: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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