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현실] 목차와 서문

2009-04-22 20:27:41, Hit : 4685

작성자 : 박상훈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박상훈 지음




<서론> 이데올로기가 된 현실, 현실이 된 이데올로기
1장. 한국의 지역주의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2장. 민주화이전에도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였나
3장. 민주화 정초선거는 지역주의가 지배했나
4장. 한국의 민주화는 왜 지역정당체제로 이어졌나
5장. 한국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의해 투표하나
6장. 지역주의는 어떻게 지배담론이 되었나:
<결론>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서론>
이데올로기가 된 현실, 현실이 된 이데올로기


1.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 유권자는 지역주의(지역감정, 지역정서 등)에 이끌려 투표하고 대다수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하는 지역당(호남당, 영남당, 충청당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선거만 하면 지역분할구도가 나타난다. 둘째, 지역을 둘러싼 편견은 옛날 즉 근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부터 존재해 왔고, 근대 이후에도 계속 강화되었다. 지역주의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셋째, 지역주의의 중심 내용은 영남과 호남 사이의 지역갈등이다. 이 두 지역의 갈등이 충청과 강원 등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를 자극했고 결국 한국 사회 전체로 지역주의가 확산되게 만들었다. 넷째, 지역주의와 지역구도의 고착화 정도는 매우 심하고, 선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정치가들은 지역주의를 동원하고 유권자들이 이에 부응하는 악순환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발전이 안 되고 사회는 분열되고 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체제가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재편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역주의 극복 없이 정치발전 어렵다. 여섯째,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이라서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 내지 선거제도의 변화와 같이 게임 규칙을 바꾸거나, 아니면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같이 뭔가 강한 외재적 힘의 개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상과 같은 설명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여론시장을 주도하는 대중매체에서든, 공적 권력의 획득을 추구하는 정치가의 주장에서든, 정당들과 정부의 정책 담론에서든 쉽게 발견된다. 공익적 시민참여를 이끌고 있는 사회운동에서도 같은 설명과 주장을 볼 수 있고, 진보파든 보수파든 상관없이 좌우를 가로질러 소통되는 논리이기도 하다. 학술 연구의 영역은 다를까? 다르지 않다. 선거결과를 분석하는 대부분의 논문은 ‘여전히 지역주의’가 문제였다는 결론을 말한다. 문제를 어떻게 다루든, 한국 사회에서 지역주의는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이며 바로 그 지역주의 때문에 유권자의 투표 행태나 정치가의 전략적 행동이 지역분할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얼마나 지역주의적일까?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지역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주의적으로 판단하고 지역주의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일까?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스로를 지역주의자라고 보는가?

2.
문제를 좀 일상적인 관점에서도 생각해보자. 주위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지역주의하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 수 있는 통속적인 주제가 된 지 오래다. 전라도 사람이 어떻고 경상도 사람은 어떻다는 둥 뿌리 깊은 인성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옛날부터 면면히 흘러 내려온 지역 색이나 지역 정서 같은 게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다. 옛날 문헌에서 지역 색이나 지역 차별적 편견이 서술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지역 색의 역사적 장구함을 역설하는 이도 있고, 자신이 직접 겪어 봤다며 그 경험을 지역주의가 실재하는 매우 분명한 증거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많다.
상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이 같은 생각들을 학술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고 정당화하는 학자들도 아주 많다. 이들은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마다 분석과 계몽의 이름으로 지역주의 때문에 큰일이라 말하며 감정과 편견에 영향 받은 비합리적 유권자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시민 교육자로 나서곤 한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어떻게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하거나, 그 이전에 대체 지역주의가 뭐고 지역주의와 지역주의가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를 객관화하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선거 결과가 지역주의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데 뭘 더 말할 필요가 있냐는 투다.
언론도 똑같다. 그들은 정치인 내지 정치 일반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편승해,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에 휘둘리는 정치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들 역시 지역주의가 뭔지 합리적으로 따져 살펴보지 않는다. 지역주의는 그저 ‘나쁜 어떤 것’, 해당 지역 출신들이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불합리한 어떤 것’으로 상정될 뿐이고, 그러니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이고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 우리 사회 최고의 ‘사회적 합의’가 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별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지역주의가 극복되지 못했고 여전히 문제는 지역주의라는 진술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어떤 정치가든 지역주의 비슷한 발언만 해도 모두 나서서 규탄하고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에 휘둘리지 말자는 의식개혁운동,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그렇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이 ‘이상한 현실’에 대해 이상해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권자가 얼마나 지역주의적으로 투표했는가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투표결정의 주관적 동기를 탐색하는 의식조사 자료일 텐데, 이 자료를 인용하는 연구자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주의적 동기를 갖고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보의 출신 지역을 보고 투표했다거나 혹은 후보나 정당이 내세우는 지역과 관련된 정책을 보고 투표했다는 응답을 다 쳐도 5% 안팎일뿐이다. 대부분은 경제발전이나 정치안정, 분배 개선이나 민주발전,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진보나 보수 등 이념적 가치 등이 자신들의 투표결정 동기였다고 응답한다. 그런데도 늘 선거가 끝나면 지역주의가 또 압도했다는 주장을 하는 데 누구도 주저함이 없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겉으로는 지역주의 반대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지역주의에 따라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위선적 유권자’ 모델을 가정하는 셈이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투표장에 들어가면 돌변’한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한심한 일이지만, 정치학자가 쓴 학술논문에도 이런 표현이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정당 혹은 지역주의를 상징하는 지도자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다. 아무리 지역주의 극복이 사회적 합의처럼 이해된다 하더라도 결국 선거에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가나 정당을 맹목적으로 찍게 된다는, 일종의 ‘사악한 정치가에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유권자’ 모델을 가정하는 것이다. ‘김심(金心)’이나 ‘지팡이 한방에 끝장’났다는 등의 주장이 그에 해당한다.  
위선적인 시민, 어리석은 시민과 같은 행위모델을 가정해서라도 기존의 지배적인 설명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면 뭔가 잘못 이해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한국의 지역주의는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어디까지가 지역주의의 문제이고 어디서부터는 그렇지 않은 것일까?

3.
지금부터 이 책은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러한 해석은 사실 관계에 있어서도 틀렸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고 규범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문제를 그렇게 보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허구에 가깝지, 실제의 현실에 기초를 둔 합리적 설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가 왜 지역주의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지역주의라는 것이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빼고는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를 객관화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 그 자체보다 지역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은 왜 민주화를 기점으로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치적 갈등의 구조를 갖게 되었나”를 주제로 2000년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뒤에도 지역주의 문제와 관련해 계속 글을 썼다. 필자에게 지역주의 내지 지역정당체제는 일종의 전공 주제인 셈이다. 처음 지역주의 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맘먹었을 때는, 호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에 항의하려는 마음이 컸다.
1983년 대학에 입학한 내 주변엔 호남 출신 친구들이 많았고, ‘80년 광주’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던 그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나의 생각은 그런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내 정치적 판단의 근저랄까 심층의 세계는 그 뒤에도 잘 바뀌지 않았다. 학부 전공이었던 경영학 대신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동안 노동문제와 진보적인 이념을 다룬 책을 많이 보았고,  ‘보수 야당’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글도 쓰고, 80년대 말에는 ‘민중정당’ 추진 모임에도 참여했지만, 결국 결정적 순간이 되면 나의 정치적 선택은 호남과 같은 방향성을 갖곤 했다.
김대중이라는 한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호남의 투표 결정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둘러싸고 격한 논쟁이 있었고, 진보파들 사이에서도 이를 전근대적이고 퇴영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호남의 소외의식과 진보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다투고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이끌렸다. ‘계급문제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현실의 여러 차별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직된 태도는 잘못이라고도 생각했지만, 내 무의식 속에 있는 어떤 심리적인 요인도 컸던 것 같다. 호남과 DJ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내가 호남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히 다행이라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아마도 보상심리 같은 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역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따져 보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주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거나 들여다보기를 망설였다고 할 수 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편해 했다. 언젠가 나의 지도교수인 최장집 교수가 쓴 [지역감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에서 진보적 사회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도 특히 비호남 출신의 경우 지역주의 문제를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심층심리의 구조를 객관화시킬 때 느끼게 될 미묘한 감정상의 거북함을 회피해 보려는 심리”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이후 점차 지역주의 문제를 다룬 기존 연구를 찾아 읽게 되었고, 지역주의 문제를 다룬 연구가 너무 적고 빈약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좀 더 조사를 해보면 호남을 둘러싼 지역 차별과 소외의 구조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작업은 해방이후부터 나온 일간신문들을 읽는 일로 시작되었다. ‘한국정치연구회’라고 하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가까이 지냈던 후배들 4명에게 부탁해 이들과 함께 국회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신문철을 나눠 뒤졌다. 옛날 신문들을 보면 지역차별과 지역소외의 수많은 양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역주의와 관련된 기사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루 종일 뒤져도 거의 찾은 게 없을 정도였다. 본론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기존 연구는 1971년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 과정에서 엄청난 지역주의 동원이 있었던 듯 서술하면서 당시 정황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들을 인용하곤 했는데, 찾아보니 거의 그게 다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의 잡지와 학회지들도 찾아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 광주사태를 전후한 신문보도를 살펴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지역감정으로 보는 계엄사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 몇 개와, ‘양 김’이라고 하는 야당 지도자들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지역감정이 커진다는 사설이나 칼럼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하다못해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신문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3장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아무튼 한국의 지역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관련 사실을 모아서 그 기원이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첫 작업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러나 중요한 발견이랄까 성과는 있었다. 이제 조사 연구의 초점은 지역주의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문제가 만들어지게 된 한국정치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그 후 내가 지역주의 문제를 보는 기본 시각으로 자리 잡았고 조사를 거듭함에 따라 더욱 확고해졌다.

4.
문제를 다르게 접근하게 되니 흥미로운 질문이 많아졌다. 여러 사람들이 호남에 대한 편견이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옛날 문헌들에서 호남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을 인용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기록으로 따지면 안 그런 지역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호남에 대한 나쁜 평으로 이중환의 [택리지]가 자주 인용되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내 눈에는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부해 이익을 쫓는다는 충청도에 대한 평이나 미련하다는 강원도에 대한 평이 더 나빠 보였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영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을 담은 역사 기록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론 세력이 위세를 떨칠 때는 남인 세력의 지역 기반인 경상 지역은 여지없이 차별받았고 반란이 가장 자주 일어난 지역도 경상 지역이었다.
반대로 호남을 좋게 평한 옛 문헌을 찾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었다. 윤선도나 정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전라도의 ‘전’을 뜻하는 전주는 조선 왕실의 고향이라 해서 어향으로 칭송되었고 무엇보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은 우국과 충절의 지역으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제기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해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지금의 지역주의적  해석 틀로 변형될 수 있었는지, 왜 호남에 대한 좋은 평가는 선택적으로 배제되고 오로지 나쁜 것만 부각되고 왜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았는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호남에 대한 나쁜 기록을 있는 대로 모아 반호남 지역주의의 오랜 역사성을 입증했다는 말하는 것은 지역주의적 해석의 틀로 뒤틀린 역사를 우리 앞에 내놓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사람들에게 지역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물어보는 것도 재밌었다. 누구든 처음에는 오래 전부터 지역주의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언제의 기억인지를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실제로는 그리 멀리까지 가지 못했다. 일제 때 태어난 노인들의 경우 처음에는 해방 직후부터 호남에 대한 지역감정 심각했다고 말했다가도 그게 몇 살 때인가 나이를 환산해 물어보면 대개 청년 이후가 되고 시기는 금방 60년대에서 70년대로 올라오게 된다. 해방 직후엔 오히려 함경도 등 이북 출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더 심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한참 생각하다가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서울 토박이들의 인색함에 대해 이주민들이 느끼는 감정도 있지 않았냐고 하면 이를 긍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왜 이주민들끼리 서로 지역감정을 다투게 되었을까를 물으면, 서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존해야 할 사람들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경쟁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지역과 관련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지역적 차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권력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경험은 너무 많았다. 호남을 백제와 동일시하며 삼국시대부터 지역감정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백제의 지리적 중심이 실제로는 한강 이남의 경기와 충청이었다거나 후백제 견훤이 경상도 상주 출신이라고 말해주면 다소 당혹해 하기도 했다. 같이 정치학을 공부했던 내 친구는 1987년에 실시된 한 조사결과를 보여주며 호남 사람들 가운데 출신지역을 밝히기를 꺼렸던 경험이 다른 지역민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난 사실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조사를 나도 잘 안다며 정작 출신 지역 밝히기를 꺼렸던 경험이 전혀 없다는 호남 출신 응답자가 얼마나 되냐고 되물으면, 83%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라워했다. 더 나아가 1970년대 말 조사된 결과를 보여주며, 그때까지는 호남 사람이 심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느낀 지역민이 영남이었다는 사실, 반대로 호남에 대해 거리감을 크게 가진 곳은 충청과 서울 경기 출신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면 그것 역시 당혹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누구든 특정의 해석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직접 한 과거의 경험과 주관적 느낌조차 그러한 해석의 틀에 맞게 기억된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호남에 대한 편견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그런 편견으로 인한 호남의 소외감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받아들여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의 정치적 이용(political use of the past)’, ‘편견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 ‘민족보다 앞선 민족주의(nationalism before nation)’ 등과 같이 역사학이나 정치학  연구에서 자주 쓰는 개념들을 소개해주면 ,한국의 지역주의 역시 보편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은 금방 이해했다. 그런데 지역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그 망국성을 강조하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힘들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지역성이란 게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거나, 안 그러면 어떻게 한 지역에서 9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올 수 있냐면서,  어떤 경우든 그런 맹목성은 지역주의 때문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보면 될 이 간단한 문제를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면서 도리어 필자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도 많았다.
2000년 지방선거를 앞둔 어느 날, 중앙일보에서 정치 평론가들을 초청해 선거 보도를 남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열 명 남짓 참석한 그 자리에 유시민씨도 있었는데, 그는 한국의 선거라는 게 DJ 지팡이 하나면 끝나는 데 뭘 더 말할 게 있냐는 식의 주장을 계속 했다. 필자는 이견을 말했지만 대화는 서로 평행선을 그으며 끝났다. 그때 필자는, 지역주의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이해방법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 세계에는 호남과 DJ에 대한 부정적 심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도 유시민씨는 이를 지지한 몇 안 되는 정치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지역주의 구체제의 자식’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연정을 통해서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비판하는 진보파들을 엄연히 존재하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문제를 회피한다면서 ‘자기만족의 지적 오만’, ‘논리적 도착’, ‘분열증’ 등의 용어를 동원해 비판했다. 지역주의가 있는 한 진보는 가당치도 않다는 게 그 요지였다. 이때부터 그의 ‘지역주의 망국론’에는 호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진보에 대해서도 심리적 거부감이 자주 드러나고는 했다.
당시 필자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제안으로 청와대 대변인과 번갈아 지상 논쟁을 하기로 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먼저 지역주의 망국론을 말하면서 대통령의 제안이 갖는 진정성을 옹호하는 글을 썼고, 필자가 뒤이어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를 제목으로 지역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왜 잘못인가를 썼다. 하지만 그것으로 논쟁은 끝났는데, 더 이상 청와대측에서 반론을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역주의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식 차이는 그 전에 서로 확인한 것이기도 했다. 2004년 여름 필자는 청와대에서 노무현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심각성을 강변했고 뭔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필자는 지역주의 문제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설명하고자 했고 노대통령은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끄면서 “지역주의, 그냥 심하다 합시다.”라는 말로 더 이상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때 필자가 깨닫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는 전제 위에서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는데, 문제는 사태를 그렇게 정의해 놓고 나면 그 다음은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정치를 꿈꾸게 될 뿐이라는 데 있었다. 확실히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정치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낳게 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망국적 지역주의를 해결한 영웅이 되고 싶어 했는데,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라는 것이 상당부분 전도된 이데올로기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주의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 자체가 허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최초로 집권당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역대 어느 정권도 갖지 못한 좋은 정치적 조건을 향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허비했고 나중에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자 자꾸 뭔가 획기적인 방안을 찾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한 해는 대연정 논란으로 보냈고 다음 해는 원 포인트 개헌론으로, 그 다음해는 예기치 않았던 한미 FTA를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 밀어붙이는 등 끊임없이 대전환을 추구하다 임기를 마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5.
여기쯤에서 지역주의 망국론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는 게 좋겠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사회 일반에 워낙 익숙한 주장이라서, 지금까지 필자가 계속해 온 이야기에 대해 여전히 수긍하지 않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하고, 지역주의 극복 없이 정치 발전 없다는 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선거 직후였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박정희와 김대중이 경쟁했던 이 선거는 지역주의 선거가 아니었다. 전체 선거 과정을 주도한 것은 민주화 요구였고 그 초점은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호남과 서울 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에서도 지지를 많이 받았다. 집권당은 엄청난 액수의 선거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근간을 공격하고 나선 김대중의 위세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눈물로 호소해야 했고 무효표가 무더기로 나올 정도로 개표부정을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호남을 빼고 계산하면 김대중 후보 지지표가 박정희보다 많았을 정도로 이 선거에서 사실상의 승자는 김대중이었다.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해석은 선거가 끝나고 동원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은 선거에서 나타난 시민의 의사를 반권위주의 내지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지 않게 하려는 전략적 의도의 산물이었다. 박정희에게 1971년 선거는 거의 악몽과 같은 경험이었고 잘 알다시피 그 귀결은 이듬해 유신체제로 나타났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80년 민주화의 봄 시기였다. 지역주의 망국론을 동원한 것은 신군부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관제 언론들이었다. 이들은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당시의 정치상황을, 김영삼과 김대중, 김종필로 대표되는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켜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면서 지역감정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특단의 조치란 5.18 군부쿠데타로 나타났다.
그 다음은 1987년 민주화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였고, 지역감정 때문에 큰 문제라는 논리가 동원되는 메커니즘은 앞서와 동일했다. 이른바 ‘3김’이 전국을 지역감정으로 봉건화하면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담론은 다시 등장했고, 그 생산자는 노태우를 비롯해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권위주의 집권당의 지지 세력들이었다. 야당 후보들이 분열하고 선거에서 패배하자 지역주의 망국론의 설득력은 더욱 커졌고 대중 연론 일반으로 확대되었다.
그 다음은 1990년 1월 3당합당에서였다.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김영삼과 김종필 세력이 집권당에 합류하면서 내건 정치적 알리바이 역시 망국적 지역감정 때문에 라는 것이었다. 지역감정이 가져온 폐해는 너무 크고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데 3당합당이야말로 이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논리가 별 설득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주목할 것은 이때 이후 호남출신 지식인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패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강렬하게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모든 지역감정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지역주의 망국론’에 맞서 ‘패권적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불릴만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지역주의의 내용을 둘러싼 패권적이냐 저항적이냐 하는 갈등은 있었지만 지역주의 때문에 큰 문제라는 인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다시 대규모로 동원된 것은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199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재편 과정에서였다. 역시 사태전개의 초점은 김대중의 복귀였다. DJ가 없는 야당 진영의 주도권을 두고 경합했던 세력들은 대부분 그의 정치복귀를 비판하고 나섰는데,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는 야당 진영 뿐 아니라 정치에 나선 사회운동 진영 전체를 호남과 비호남으로 분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오, 이우재, 김문수 등 민중정당을 지향했던 세력은 거의 모두 한나라당으로 옮겨갔다. 지역을 넘어서 민주대연합 후보를 내세우고자 했던 세력들도 이회창, 이수성, 조순지지 세력으로 결집해 대부분 한나라당으로 옮겨갔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한나라당에 합류하면서 내건 담론 역시 지역주의 망국론이었다. 지역주의 문제의 전개과정 혹은 시기별 변화과정에서 이때의 경험은 결정적이었다. 이제 지역주의 망국론의 담론 생산자는 더 이상 보수적 정치세력과 주류언론에 한정되지 않게 되었고 진보세력과 시민운동, 지식인의 상당부분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명실상부한 지배담론이 된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다시 불러 들어진 가장 최근의 사례는 앞서도 잠깐 살펴본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였다. 지역주의 망국론에도 불구하고 1997년 DJ가 집권에 성공하고 뒤 이어 2002년 노무현의 집권이 호남의 선택으로 실현됨에 따라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운 특단의 조치를 정당화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2005년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며 노무현대통령이 대연정을 내세운 것은 의외였다. 상대인 야당의 반대는 물론이거니와 집권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컸고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었음으로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지만, 누구든 국면 전환 내지 인위적 정계개편의 욕구를 강하게 가질수록 지역주의 망국론을 동원하고자 하는 정치적 유혹은 앞으로도 강하게 작용할지 모른다.

6.
필자가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짧고 인상적인 표현을 모으고 암기하는 것인데, 안토니오 그람시가 한 말 가운데는 ‘인간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실을 인식한다.’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 사실이란 인간의 인식 세계와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사실 이전에 사실을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싼 투쟁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풀어 말할 수 있겠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왜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을 지지하는지, 나아가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다수의 힘을 조직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이 정치학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과 대면하고자 했다.
일상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같은 사실을 놓고도 이해하는 방법이 달라 다투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규모가 큰 갈등을 동반하는 정치적 사안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가 되고 직접적인 강제나 물리적 억압의 사용이 크게 제한되면서 이데올로기의 기능과 역할은 아주 커졌다. 미디어 공론장과 정치 교육의 역할이 사태를 이끄는 중심적인 힘이 되었고, ‘사실’만큼이나 ‘사실을 이해하는 방법’도 중요해졌다. 그 결과 이데올로기의 세계를 관통하지 않는 한, 도대체 사실이 무엇인지에 도달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치학에서 이데올로기는 쉽게 생각하면 지극히 단순한 의미가 되고 어렵게 생각하면 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한없이 난해한 개념이 된다.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말하면, 사실을 인식하는 관념적 체계 내지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의 경우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잘못된 ‘허위의식’이나 사실과는 다른데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도된 인식’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권력 작용’을 분석하는 개념적 도구로도 자주 사용된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 이슈 가운데 이데올로기성이 가장 심한 주제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지역주의라고 하고 말하고 싶다. 지역주의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논의들에서,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게서 지역주의는, 사실을 말하는 맥락에서 논의되기보다 주로 규범적 평가를 말하는 부분에서 - 대개는 도덕주의적 훈계 하는 방식으로 - 다뤄진다. 사실보다 해석에 의해 압도된 문제 인식, 지역주의를 둘러싼 논의가 갖는 이데올로기성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그들의 논의에서 객관적 사실만 따로 분리해 본다면, 아마 그 내용의 빈약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호남을 연구하고 영남을 연구하고 그 지역적 특성을 밝혀내고 각각의 역사와 문화나 남긴 유산과 영향을 따져 본다면 이데올로기성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 영남과 호남의 지난 수천 년 역사를 다 불러들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근대적 산업화 과정의 지역 차별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다. 1971년 대통령 선거가 어떻게 치러졌고 당시 유권자가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봐도 그렇고 민주화 이후 선거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주의적으로 사실을 해석하는 ‘안경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사실 그 자체로서 지역주의의 문제를 객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성의 근거가 매우 약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에 대한 특정의 해석이 지배하는 현실, 지역주의 때문에 문제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아무도 지역주의가 뭐고 왜 나쁜지 아무도 잘 따져 묻지 않는 현실, 그러는 사이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의 모든 문제를 배태하고 있는 알파이자 오메가로 되어 버린 것,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역주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해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동원되고 이용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지역주의 망국론을 반복하는 것은 사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의를 그렇게 보는 것이 진짜 문제가 되는 지역주의적 인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지역주의 때문에 큰일이고 지역주의 극복 없인 아무 것도 안 된다며  끊임없이 두려움을 동원하고 부정한 현실을 방관할 것이냐며 이데올로기적 결단을 강요하는 환원론적 논리구조를 양산하는 데 기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격조 있게 지역주의를 개탄하고 나라 걱정을 말한다 해도, 그것 역시 이데올로기의 한 편린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그러한 일은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연구 이상일 수 없다.
요컨대 지역주의 문제를 인과적으로 설명 가능하고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하며 규범적으로 타당한 방식으로 다루는 일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7.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에서 필자가 하려고 하는 작업은 일종의 ‘문제를 달리 생각해보자’는 제안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지역주의는 경험적 사실의 차원보다는 해석과 인식의 차원을 더 많이 갖는 심리적 문제 혹은 상부구조적 문제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 전체를 통해서도 지역주의와 관련된 모든 주-객관적 사실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지역주의에 관한 기존의 이데올로기화된 인식을 벗어나 문제를 보면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들 혹은 그간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새롭게 보이게 될 것이고,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지 못하게 했던 여러 힘들의 구조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본다.
과학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했던 토마스 쿤이 강조했듯이, 사람이 무엇을 보게 되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시각 내지 개념적 틀을 교육받았는지에 달려있는 바가 크다. 태양과 지구의 움직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지만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해석으로부터 그 반대로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도 하는 이 해석의 전환으로 인해 물체의 움직임에 대한 그간의 모든 진술은 달라져야 했고 ,사회의 제도들과 인간의 행위에 대한 의미 부여도 과거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인 해석 틀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사태를 개선하기보다는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기여한  바 크고, 그렇게 잘못 보도록 만드는 작위적인 힘의 작용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의 개념대로라면, 그것은 사실을 변형되어 보이게 하는 ‘렌즈의 문제’이자 동시에 그렇게 봐야 한다고 가르치는 ‘권위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역주의 문제를 잘못 보게 만드는 렌즈는 바뀌어야 하고 권위적 힘의 실체는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우선 지역주의 문제를 그 기원으로부터 따져보기 위해 우선 오늘날처럼 영남이나 호남이니 하는 지역을 둘러싼 갈등의 구조가 언제 만들어졌고 그때의 지역주의는 대체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지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자. 이 문제는 1장에서 다룬다.
지역주의는 언제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민주화 이전에 이미 지역주의는 유권자의 투표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점차 강화되었다는 기존의 설명은 얼마나 사실일까? 이에 대해서는 2장에서 다룬다.
3장에서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유권자와 정당들이 마주하였던 전략상황을 살펴본다. 당시를 지배했던 사회갈등은 무엇이었나? 정말로 지역주의가 유권자와 정당들의 전략적 선택을 압도하는 상황이었을까? 3장에서 우리는 ‘지역주의 단일 이슈가 지배하는 전략상황’이었다는 기존의 해석이 사실과 다른 허구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987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민의 참여에 의해 실현된 민주화와, 그해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적으로 매우 분절화된 결과 사이의 커다란 단절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역주의가 정말 민주주의냐 독재냐의 갈등보다 더 강력하게 유권자의 투표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기존의 단순한 설명은 당시의 사태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4장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출신 지역에 따른 투표성향의 차이는 변화가 어려운 것일까? 5장은 김대중 정부가 집권한 이후 치러진 2000년 총선 결과를 사례를 통해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가 갖는 특성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특히 경쟁하는 후보 사이에 이념, 세대, 경력 등의 차이가 큰 지역구에서는 출신 지역이라는 요인이 투표 결정과 별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은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 때문에 한국 정치 망한다는 잘못된 설명은 그간 어떻게 지배적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전후해 한국정치의 문제를 지역주의 때문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과 여기에 편승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세력이 있었고 또 그들이 강했다는 말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6장은 이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본론을 통해 발전시키고자 했던 대안적 설명을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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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우선 논문 형식이 아니어서 좋습니다
잘 읽히고 동의가 됩니다(옆에서 늘 들어서 그런가?)
건필!!!
2009-04-23
17: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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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형
1. 잘 읽었습니다. 매우 재밌네요. 모든 일을 중단하시고 집필에 전념하시어 아주 빠른 시간내에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려우신가요?*^^*)
2.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내용도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교는 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나라 지역정당의 경우가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같이 정당지지가 지역적 집중성을 띠는 경우가 좋은 비교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 발표하신 논문중에 영국 사례를 소개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2009-04-23
14: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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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목록  |  편집일기 (145)  |  신간이야기 (139)  |  제작일지 (51)  |  한 줄 인용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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