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터뷰_박찬표(『한국의 48년 체제』)

2010-10-25 15:15:31, Hit : 4144

작성자 : 관리자

1.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적 현대 해석을 강조하고 있는데, 왜 민주주의적인 역사 해석을 개척하게 되었나?

무엇보다 민주주의 문제,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민주주의의 심화 문제가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결국 현재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 모습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하나의 이미지는 ‘출구가 막혀 있는 길’의 이미지다. 해방 이후 60여년이 넘게, 1987년 이후부터만 따져도 20년이 넘게 또한 두 번의 ‘민주 개혁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보니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목표 지점이 결국은 냉전 반공 체제가 남긴 역사적・구조적 조건에 의해 한계 지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1987년 이후 진보 세력의 독자 세력화 또는 ‘보수-진보’로의 정치 대표 체제 개편이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로 제기되어 왔지만, 진보 세력의 현 위상이 보여 주듯이 그 목표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진보’를 내세운 것도, 보수 헤게모니하의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세력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는 48년 체제의 한계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테제이고, 표지에서 보이는 시계 사진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 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가?

한국 민주주의가 처해 있는 이러한 한계는 물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주체적 역량의 문제나 노동 세력이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데 실패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적 가능성의 공간은 그 사회의 계급 구조나 이념적 헤게모니 구조에 의해 제약되기 마련이고, 특히 우리 경우에는 시민사회에 대해 압도적 규정력을 가진 국가권력이 부과하는 억압 구조에 의해 제약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것은 어떤 진공상태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물려받는 사회적・역사적 조건이 부과하는 제약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초기 조건을 부과한 해방3년사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한국 현대사를 민주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뉴라이트적 현대사 해석을 어떻게 보는가?

민주주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해석하면서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보수적 역사 해석, 특히 뉴라이트의 현대사 해석이었다. 이들은 보수 패권의 한국 민주주의를 성공의 역사로 전면 긍정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현재 자신들이 처해 있는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수 패권의 한국 민주주의를 마치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된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를 성공의 역사로 평가하면서 그 기준을 북한과의 대비에서 찾고 있는데, 이런 역사 인식은 ‘반공이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냉전식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냉전적 역사 해석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해방 이후 극단적인 좌우 적대의 역사와 남한 반공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극단적인 갈등과 폭력의 역사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적 이견이나 적대적 세력 간의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하느냐라는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분단과 냉전이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상황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해방3년의 갈등을 거쳐 1948년 성립된 남한 체제를 승리자의 관점에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48년 체제가 특수한 비정상적 상황의 산물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관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 전망을 확보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제3세계 민주화 국가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는 비교정치학적 평가를 인용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를 서구를 기준으로 한 과도한 평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 2008년 건국 60주년 관련 학술회의에 갔을 때, 한 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된 신생국가 중에서 우리만큼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없음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폄하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도 보았다. 일면 수긍이 되는 면도 있지만, 다른 나라와의 비교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임을 강조하는 그런 주장은 결국 현실의 한국 사회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4. 이 책에서는 현대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는데, 그 이유나 근거는 무엇인가?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은 그동안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된 시각이었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적대해 온 한국 현대사는 일차적으로 강한 민족주의적 정조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고, 이것이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처했던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었을지, 특히 현 단계에서도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다.
예컨대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의하면 우리는 해방3년기에 외세의 개입에 맞서 민족 단결을 이루지 못했기에 분단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논리는 ‘민족이 단결하지 못했기에 단일 국가 형성에 실패했다’는 동어 반복적 논리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양면성이다. 민족주의처럼 민족 내부의 단결을 강조하는 논리는 외부 집단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낳기 쉬운데,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민족 내부의 적대적 집단을 외세와 연계시켜 제거하는 논리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민족 내부의 경쟁 세력을 외세의 괴뢰로 몰아 공격하는, 민족주의의 ‘자기 분열적 공격성’을 보여 준 전형적 예는 찬탁 세력을 친소=매국 세력으로 몰아 공격한 탁치 파동이다. 나아가 분단 이후 남북에 각각 수립된 두 개의 정부가 상대편을 비난할 때 그 근거가 된 것도 민족주의였다. 남북은 각각 상대방을 ‘소련의 괴뢰’, ‘미제 앞잡이’로 몰아 공격했던 것이다. 결국 분단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민족 내부의 갈등을 공존 불가능한 것으로 심화시키는 매개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만일 해방3년기의 역사를 단일 국가 형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실패의 역사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민족주의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정한 것이 지난 2008년 불거진 건국절 논쟁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박 정부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려 했을 때, 민족주의 사학계는 그것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었다. 그 결과 건국절 논쟁은 한국 현대사를 ‘이승만 대 김구’의 대결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 현대사 연구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은 민중적・변혁적 내용을 갖는, 말하자면 민중적 민족주의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민중적 변혁적 내용은 거의 탈색되어 버렸고, 그 결과 해방 이후의 민족주의 노선은 김구의 노선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1980년대에 전개되었던 현대사 연구가 좌파・중도좌파까지를 포함하는 지평 위에서 전개되었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김구 대 이승만의 대결로 좁혀진 건국절 논쟁이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야나 지평을 얼마나 협애화시켰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건국절 논쟁은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이 보수 우파의 냉전 반공적 역사 인식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된다.


5. 이 책의 앞부분을 보면 종래의 중간파 중심의 현대사 해석 같기도 한데 그런가?

이 책에서 중간파를 높게 평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평가의 기준은 종래의 연구와 상이하다. 기존의 연구에서 중간파에 주목한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그들이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민족협동노선을 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 간의 대립을 지양하는 제3의 노선을 추구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중간파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관점에 기초해서다. 그들이 민족주의적이었다거나 그들이 추구한 제3의 노선이 정당한 노선이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좌우 공존의 정치 질서를 추구했는데 이러한 태도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당시 좌우파는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이나 가치에서 극과 극의 대립을 펼쳤지만, 자신의 이념이 한 사회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체제를 꿈꾸면서 상대방과의 공존을 부정하고 상대방의 절멸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이러한 좌우파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데에는 ‘실체로서의 민주주의’와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전자는 어떤 가치나 이상을 추구하는가라는 점에 주목하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어떤 가치나 이상을 지향하더라도 방법 및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필수 요건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이는 곧 한 정치 공동체 내에서 상이한 이해와 가치를 갖는 여러 집단들 간의 갈등을 전제로 하여 이러한 갈등을 관리하는 수단적 틀로서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개념에 따르면, 한 사회에는 집단・계층・계급・인종・지역 등에 기초한 갈등이 불가피하며, 민주주의란 결국 이들 갈등적 집단 간의 공존을 전제로 하여 일정한 제도와 틀 속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갈등이 전개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해방 당시의 여러 정치 세력 중에서 민주주의적 태도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데 가장 근접했던 세력이 중간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중간파의 노선 보다는 정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나 방식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6. 이 책은 48년 수립된 남한 체제를 ‘정치적 대안이 봉쇄된 보수 패권의 정치 대표 체제’로 규정하면서, 정치적 대표 체제의 민주적 확장이나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 대해서는, 좌우 또는 자본 대 노동의 균열 구조에 기초한 정치 대표 체제를 갖추고 있는 유럽 모델을 보편적 모델로 상정한,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서구 중심적 관점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즉 노동 부재 또는 좌파 부재의 한국 민주주의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유권자들이 보수정당을 선거에서 선택한 결과가 아닌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한국에 부재하는 요소를 자꾸 끌어들여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서구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나아가 서구 민주주의 모델을 보편적으로 것으로 설정하는 ‘서구 중심주의’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대답하고자 한다. 먼저 좌파 또는 노동 부재의 정치 대표 체제는 유권자 선택의 결과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권자는 한국 사회 밖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유권자의 선택은 반공 이념이나 성장 제일주의 등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적 이념이 가하는 영향력, 반공 체제나 권위주의 독재 체제 또는 노동 억압의 경찰국가로부터 당한 집단적 피압박의 경험, 정치 대표 체제를 독과점하고 있는 보수 지배(또는 보수 리버럴 세력 지배)의 정당 체제, 전략적 투표를 강요하는 선거제도 등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도 인용하고 있지만 해방 정국에서 전평 활동을 했던 한 여성은 40년이 넘게 남편에게도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이념적 계급적 균열의 표출은 억압당해 왔다. 지금은 그러한 억압 구조가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수십 년 간에 걸친 억압과 배제의 역사는 집단적 연대에 대한 회의를, 노동에 대한 천대를, 노동이나 좌파 등 계급적 언술에 대한 기피를 내면화시켰다고 생각된다. 선거 결과를 단지 합리적 유권자 선택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그 결과 유권자를 한국 사회의 구체적 역사나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개체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 문제 즉, 노동 부재의 정치 대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서구 체제를 모델로 하는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과거와 단절시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가장 순진하게 드는 의문은, 해방 정국에서 좌파나 중도파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정부 수립 후 좌파 정치 세력이 불법화된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좌파 정당 없는 보수 독점의 정당 체제’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당하거나, 아니면 1987년 당시의 ‘비판적 지지자’들처럼 차선의 선택을 강요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좌파 배제의 정치 대표 체제는 냉전 반공 체제가 결과한 기형적 대표 체체인 것이다.
문제를 현재에 국한시켜 보더라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 대 노동의 균열이 존재하는 것은 서구적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 균열이,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균열의 하나인 자본-노동 균열이 정치적으로 표출되고 대표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이 문제에는 단지 객관적 분석의 차원만이 아니라, 가치의 차원도 개입된다고 생각된다. 통계적으로 우리 사회의 2/3 정도를 점하는 임금 근로자들, 일하는 보통 사람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에서나 열세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마치 자연과학적 관찰의 대상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객관적 현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상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비판되어야 하고 어떻게든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7. 이 책의 뒷부분을 보면, 보수 양당 체제하에서는 노동의 의제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던 반면 진보 정당이 원내로 들어온 이후에는 의제가 크게 확장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진보 정당의 관점에서 민주화 이후 정당 체제를 분석한 것인가?

이 책이 특정의 정당이나 정치 이념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보다 민주적인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표’(representation)의 폭과 깊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갈등적인 이해관계나 가치, 이념 등이 정치체제에 어느 정도 폭 넓고 또 충실히 반영되어 대표되는냐가 민주주의의 정도를 따지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범주의 하나인 노동의 이해가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체제로서 큰 흠결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확인한 것은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자임한 민노당이 제17대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원내에서 대표되는 이해나 이념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 이익, 민주주의 심화, 보호주의, 반공 헤게모니 거부 등 기존의 정당이 대표하지 못한 이익이나 가치를 제기했고, 이를 둘러싼 새로운 균열을 정치 대표 체제 내에 투입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보 정당의 현재 원내 세력 규모를 고려할 때, 이러한 발견은 긍정적 전망보다는 어떤 막막함을 안겨 준다. 과연 진보 정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보수 양당 또는 보수 리버럴 양당에 맞서는 대안적 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 그 전망은 어두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가져온 변화상에 대한 확인은, 보수 지배의 기존 정치 대표 체제에서 어떤 가치와 이슈들이 배제되고 억압되고 있는가를 보여 준 지표로서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와 제약을 확인하고, 결국 그것이 어디에서 근본적으로 기원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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