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시죠? 해도 짧고 쌀쌀한 12월입니다. 올해에 잘 살았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년 계획은 어떤지... 올해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즐겁게 해보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12월 30일 오후 7시, 장소는 물색 중입니다. 정해지는 대로 곧 알려드리기로 하고 2009년 마지막 <후마니타스 통신>을 시작합니다.
조현연(이하 조): 91년 5월을 겪으면서, 그리고 그 이후 이러저러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거리에서의 운동은 내가 생각하는 대안이 아닌 것 같다는,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바꾸는 데 있어 이제 거리에서의 움직임으로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6~97년도에 박사논문을 쓰기로 결심하고 함께 살아왔던 80년대를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진보적 정당을 만드는 문제에 좀 더 주목하게 되었다. 96, 97년 총파업 직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서 대해 훨씬 적극적인 태도가 나왔고, 학계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민승리21 대선공약 개발단에 결합해 간사 역할을 하면서 정당 활동을 하게 됐다.
박: 운동의 경험과 정당의 경험을 통해 정치학자로서도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면?
조: 사실 정치학을 하는 연구자로서 그때까지만 해도 정당에 그렇게까지 주목하지는 못했다. 운동을 통해서 본 정당? 그 정도였다. 연구자로서의 관심보다는 실천적인 문제의식이 더 많았다. 91년 5월도 그랬고, 96, 97 총파업 때도 그랬다. 운동의 에너지는 간헐적이라도 터지는데, 뭔가 끝맺음이 안 되는 지점들이랄까. 그때 합법 공간을 좀 더 주목하게 되었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좋은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운동의 에너지가 사회의 요구들을 모아 민주 정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박: 이 책에서는 진보정당의 역사적 기원을 어디로 보는가?
조: 1980년대 5월 광주 이후, 즉 민주화 운동을 직접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의 기원은 해방 직후에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도 그때부터 따져야 한다. 진보정당사도 한국 정치의 한 부분인 한 해방 직후부터 맞이했던 도전이나 좌절의 흐름과 과정을 알아야 한다. 젊은 당원들도 전사에 대해 알아야 하며, 역사성을 보지 못하고 취향으로만 진보정치에 대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박: 이 책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 내 개인의 경험을 떠나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지적 자극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빚 의식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에 남아서 시간을 반분하니, 당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친구들에게 부채 의식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책에 녹여 내고 싶었다. 결론 쓸 때쯤 특히 많이 힘들었다. 정파 문제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정파의 문제를 다 알았으면서 리더십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고, 이렇게까지 분당이라는 고통과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 서로간의 상처와 아픔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책에서는 정파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드러내고자 했다.
박: 그렇다면 이 책은 특정 정파에 비판적이며, 일정한 정파적 자기 입장을 갖고 분석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까?
조: 특정 정파라 하더라도 자주파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즉 자주파 내부의 헤게모니 그룹에 비판적인 것이다. 그리고 정파 자체가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정파 간의 긴장과 갈등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원리에 의해 정파가 상승 작용을 하고 순기능을 할 수 있느냐다. 그러나 실제 있었던 일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바꾸기보다 내부의 작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그와 같은 정파적 구조에서 에너지가 계속 소모되고 있었고, 그렇게 가다가는 진보 정치의 동력이 바닥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모적 정파 경쟁 구도랄까. 이게 민주노동당 초기에 당의 발전을 질곡하는 중대한 원인이었고, 그것이 도저히 그 안에서 해소될 수 없었을 때 분당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좋은 측면도 있고 좋지 않은 측면도 있다. 좋은 측면은 과도한 정파 경쟁의 폐해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진보신당 안에서도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파란 어느 조직에서든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원이 있는데 그것이 약해져 재생산의 기초도 약해지고 전체적으로 진보 정치의 활력이 떨어졌다.
박: 탈당한 2만 여 명 중에서 7천 명 정도가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3분의 2가 이탈한 것이다. 그렇다면 분당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조: 진보신당을 창당할 때 10년을 내다보고 다시 시작하자고 했는데 이제 2년이 조금 안됐다. 물론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런 결과 가져오려고 탈당했는가라고 공세를 가한다. 그 지적에 일정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있고, 대중적 에너지가 유실된 부분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축으로 본다면 분당과 탈당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탈당 이후 6개월간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분당되고 나서 양쪽 다 힘들어졌다. 개척자 정신으로 하고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의 공간은 있다고 본다.
박: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과 관련해 소회가 있다면?
조: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정리하는 부분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물론 책에서는 내가 판단하는, 진보 정치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썼다. 하지만 그것이 당원들이든 진보 정치의 발전을 바라는 다수의 독자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또는 편협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으나 책은 책대로 그 의미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내 판단을 가감 없이 말했다. 그러나 오늘의 진보 정치에 대한 정치적 책임감은 이 책과 무관하게 크게 느끼고 있다.
2. [미리보는 책] Passion and Craft
필립 C. 슈미터는 왜 브라질로 갔고, 왜 코포라티즘이라는 혐오스런 개념을 선택했을까.
잘 알다시피 그는 이익 집단 내지 이익 정치 연구 분야에서 코포라티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학자다. 브라질 이익 정치에 대한 연구를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이 새로운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개념화하고 싶었고, 자기만의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오 데 자네이로의 헌책방을 뒤지다 1930년대 파시즘 이론가였던 미하일 마노일레스코(Mihail Manoilesco)의 『코포라티즘의 세기』(Le Siecle du Corporatisme, 1934) 복사본을 우연히 발견하고,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코포라티즘으로 이름 붙이게 되었다.
브라질과의 첫 만남
"스위스 대학에서 기말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친구를 만나러 베니스에 갔다. 그녀는 운하 한 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도 내가 방문했을 때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데, 브라질이 그해 주빈국이었다. 그때 난 브라질 예술에 빠지고 말았다. 브라질은 정말로 매혹적인 곳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브라질 정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온갖 종류의 다양한 문화들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었고, 또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언젠가 브라질에서 살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
박사 논문과 브라질
"논문 주제를 결정했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립셋의 정치사회학 강의였는데, 어떤 이유인지 립셋의 논문을 비판할 발표자로 내가 지목되었다. 그 논문에는 당시 정치학자들의 99%가 동의했을 문장이 있었는데, 정당이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이해를 대표하는 메커니즘이고, 그것만이 사실상 유일하게 시민과 통치자 사이의 연계를 제공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립셋의 논문에 대한 비판에서, 사실상 이런 식으로 말했다. “정당들이 꼭 사회적 대표의 주된 경로는 아니란 점에서 당신이 틀린 것 같습니다.” 난 정당들만이 사회적 이해들을 대표하는 독점적인, 심지어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정 사례에는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선험적 결론으로서는 타당하지 않는, 하나의 가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당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이익 집단이나 사회운동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말하고 대표의 메커니즘으로서 정당의 역할이 미래에는 감소될 것이라는, 어쩌면 터무니없었을 주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어쩌다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이날까지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경험적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주변적으로나마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내 주장은 순전히 소망적 사고였을 수 있다. 아니면 이익집단들이 매우 잘 조직되어 있고 국가 기구 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수업에서 약간의 토론을 벌였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알았다. 학위 논문 주제를 잡았다는 것을. 그 전에 스위스에서 토크빌을 읽었는데,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하고 다원적인 이익집단 구조들을 가지게 된다는 그의 유명한 가설을 그때 알았다. 난 이것이 브라질에서 연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브라질은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경제들 가운데 하나였고, 급격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브라질은 또한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무척이나 다양한 인구를 가진 나라였다. 누군가가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서 다원주의적 이익 집단 체계가 출현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그 나라는 바로 브라질일 것이었다. 그래서 조직화된 이익의 출현을 연구하기 위해 브라질로 가야겠다고 맘먹었다."
실제 연구에서는 다원주의적인 이익 대표 양식을 브라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 관점을 바꾸게 되었는가?
"내 주된 예상들이 빗나갔음을 금방 깨달았다. 브라질에는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 독점적이면서도 위계적인 이익 대표 체계가 적어도 1943년부터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의문스러웠던 점은 1946년부터 1964년까지의 민주주의적 정치 기간 동안 이런 체계를 없애기 위한 시도가 전무했다는 데 있었다. 이 기간에 강렬한 긴장이나 압력이 출현했으리라는 것 정도는 적어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1964년 군부가 권력을 잡고 난 후에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이익 대표 체계를 바꾸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약하면, 그 체계는 1943년경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렸고 “잠깐, 이건 다원주의와 맞지 않잖아”라고 말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리오 데 자네이로의 헌책방을 훑어보던 중 미하일 마노일레스코 책의 복사본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 뒤 코포라티즘과 관련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읽기 시작했다."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었나
"언젠가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를 만난 적이 있다. 이탈리아 정치사상의 대부이자 놀라운 사람이다. 당시 그는 여든 다섯이었는데, 내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당신이 슈미터군요. 당신의 작업은 무척 흥미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것을 코포라티즘으로 불러야만 했나요?” 보비오는 무솔리니 시기의 초기 코포라티즘 형태를 경험했고, 또 그것과 싸워 온 사람이다.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를 오늘날의 민주적 정체에 적용한 것이 그에게는 개념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까지 확장하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그는 핵심을 짚었다. 학자는 자신의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규범적으로 의미가 담겨 있는 기존의 용어를 빌려오는 대신 새로운 명칭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좀 더 풍부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는 대단한 판촉 도구(merchandising tool)였다. 이 용어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코포라티즘에 관해 말하는 문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용어가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진 유럽 국가들에 적용할 경우, 이는 도발적인 용어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용어 선택의 효과는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덕분에 단순히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익 집단 체계의 한 측면에 사람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이야기
1. 후마니타스 컷!컷!컷!
♣ 후마니타스 회의때마다 이용되는 화이트보드입니다. 오늘은 누가 밥 당번일까요?
♣ [돌발영상] 2009년 12월 3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정치에너지』(정세균_민주당 대표)
2. 후마니타스 강독ㆍ강연 소식
<정치학 강독 모임>
후마니타스에서 준비 중인 책을 중심으로 하는 강독 모임입니다. 2010년 1월 9일 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 6시에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진행이 됩니다. 강독 예정인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데이비드 헬드(박찬표 옮김) [민주주의의 10가지 모델 (가제) - Models of Democracy 3판] 2. 만프레드 슈미트 (최재한/이선희 옮김) [독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기능하는가(가제) 3. 로버트 달 (김순영 옮김)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가제)] 4. 뭉크, 슈나이더 (독자 번역자팀 옮김)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 비교정치학자 15명의 열정과 직업의식(가제)]
단순히 밖에서 바라본 정치가 아닌 정치의 세계 내부로부터 정치를 생각해보기위한 강의입니다. 2010년 1월 5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 10시까지 총 5회에 걸쳐서 강의가 진행됩니다.
[강의의 문제의식] 민주주의는 그 가치의 관점에서 "보통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 낭만적인 정의의 이면에는 "통치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따라서 '통치의 정치학'을 발전시키는 것 없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끈 세력들 사이에 이와 관련한 문제의식은 매우 약했다. 그 결과는 뒤늦게 정치의 세계에 참여해서는 때이르게 쇠퇴의 위기를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정치를 통해 보통사람의 힘을 조직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해 정치학은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 이 강의는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준비한 일종의 정치학 개론이다.
박상훈(이하 박): 연구자로서 왜 진보 정당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졌는가? 
박: 이 책에서는 진보정당의 역사적 기원을 어디로 보는가? 
박: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과 관련해 소회가 있다면?
필립 C. 슈미터는 왜 브라질로 갔고, 왜 코포라티즘이라는 혐오스런 개념을 선택했을까. 
박사 논문과 브라질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