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후마니타스 통신은 후마니타스의 정치 관련 서적, 특히 그중에서도 후마니와 함께 읽는 정치철학으로 시작합니다.

벌써 2012년 11월입니다. 올해는 총선으로 시작해, 대선으로 한 해가 마무리되는 만큼, 정치에 대한 많은 관심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모든 논의를 지배했던 것은 경제였습니다. 아마 그 절정은 ‘CEO 대통령의 탄생’이 아닐까 합니다. 그 덕분(?)일까요, 올해 최대의 화두는 ‘정치’로 보입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귀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1원 1표를 원칙으로 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주먹’을, 1인 1표의 정치를 통해, 그것을 보이게 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먼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제 막 완간을 앞두고 있는, 셸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1, 2)(강정인 외 옮김)을 그 출발점으로 삼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은 일종의 서양 정치사상서라 할 수 있는데요, 일반적인 개론서들과는 달리, ‘정치적인 것’을 화두로, 고대 정치철학으로부터, 현대 자유주의까지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덤 스미스 이래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사회적인 것, 또는 경제가 대체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2권이 그 백미라 할 수 있을텐데요, 2권 9장과 10장은 꼭 일독을 권합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가 함께 저술한 문제작,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승원 옮김)이 있습니다. 흔히,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선언문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책이지만, 저자들 스스로 이 책의 특징을 ‘헤게모니 분석을 기반으로 정치적 접합의 계기를 특권화하는 작업’이라 부르듯, 현대 정치철학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의 의미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아, 이 책과 함께 짝을 이뤄 읽어볼 만한 책으로,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김유진 옮김)가 있습니다. 특히,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1장, 2장과 함께 짝을 지어 서로 비교해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주로 정치철학, 정치사상 관련 책들에 자신이 없으시다면, 말랑말랑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인터뷰집을 하나 추천해 드립니다. 최근에 완간된,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1, 2, 3권입니다. 정치학이라는 분과 학문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사회학과 경제학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나아가는 현대 정치 이론의 흐름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정치학자들의 열정과 관심을 보여 줍니다.

아, 정치학 책들만 너무 읽다 보니, 편식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역시 신자유주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에릭 헬라이너의 『누가 금융세계화를 만들었나』(정재환 옮김)를 읽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금융 세계화의 역사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서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작품인데요, 신자유주의를 세계화의 과정을 거스를 수 없는 자본의 힘에 의한 발전의 결과로 보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국가를 주요 변수로 삼아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과 국내의 금융 엘리트 집단, 산업가, 관료 집단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지식인들과 국제기구 레짐이 어떤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금융 규제를 철폐하고 지금의 금융 세계화를 만들어 냈는지 상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 내친김에 정치학자가 생각하는 경제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배관표 옮김)가 그 책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급진적이 되어 가는 달의 관점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저서로 알려져 있듯이, 달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정당화하는 법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적 통치 방식이 어디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경제 민주주의가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 더 나아가, 노동자의 자주 관리, 자기 통치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합니다.

 

새로나온책

광주, 여성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372쪽 / 2012년 10월 22일 17,000원 책 정보 상세보기 >>

 

책이야기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1. 『주간경향』 [특집| 대선책꽂이]경제민주화 관건은 능력있는 정당과 정부 (2012-11-13)

『스웨덴을 가다』 1. <오마이뉴스> 알레르기 있다고 수당? 이런 나라도 있네 (2012-10-30)

『광주, 여성』 1. 『부산일보』 [잠깐읽기] 광주, 여성-그녀들의 가슴에 묻어둔 5·18 이야기 / 이정우 (2012-10-27) 2. 『광주일보』 5·18증언집 ‘광주, 여성’ 개정 출간 (2012-10-26) 3. 『노컷뉴스』 '총과 수류탄' 대신 '밥과 수의'를 들었던 사람들 (2012-10-25) 4. <연합뉴스>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는 1980년 5월18일 광주 (2012-10-25) 5. 『한겨레』 “80년 5월…새끼들이 죽응께 환장하겄어” (2012-10-23) 6. <프레시안> 복지 선배 스웨덴, '방콕' 여행하기 (2012-10-19)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1. <오마이뉴스> 국회·청와대가 신뢰도 꼴찌... '불평'을 넘어서라 (2012-11-12) 2. <기호일보>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외 (2012-11-08) 3. <프레시안> 최장집이 갔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러! (2012-11-02) 4. <오마이뉴스> 최장집 교수 책이 '말랑말랑'해진 까닭은? (2012-11-01) 5. 『천지일보』 [신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2012-10-24) 6. <미디어오늘> 칠순 맞은 노(老)학자의 노동현장답사기 (2012-10-23) 7. <머니투데이> 토플러 "복지하지 마라"..대신 해야 할 것은? (2012-10-20) 8. 『영남일보』 민주화 25년, 노동자는 더 고통스럽다 (2012-10-20) 9. 『부산일보』 [잠깐읽기]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2012-10-20) 10. 『동아일보』 [300자 다이제스트]발로 뛴 최장집 교수가 캐낸 노동의 존엄성 (2012-10-20) 11. 『경향신문』 [책과 삶]칠순의 최장집 교수가 발로 쓴 ‘노동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다’(2012-10-19) 12. 『중앙일보』 경제민주화 공약, 서민의 고통 알고 하는 얘기인가 (2012-10-17) 13. <연합뉴스> 최장집 "안철수현상 한국 정치발전에 기여" (2012-10-16) 14. <국제신문> [톡톡 투데이] "대선 화두 경제민주화, 좋게만 생각할 수 없다" (2012-10-16)

 

결산보고(표)

 

결산보고

 

5ㆍ18을 경험한 여성들 19인의 낮은 목소리,『광주, 여성』

기억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다. 그 과정은 몸을 재구성(re-member)하는 가혹하고 낯선 탄생의 연속이다. 이 책의 참여자들은 ‘그날’ 이후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들의 갱신의 역사가 인간의 조건임을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 정희진(여성학자ㆍ『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5ㆍ18을 직접 체험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기 삶을 구술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간호사, 시장 상인, 여공 등 당시 5ㆍ18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러 계층의 여성들의 구술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무엇보다 그간 5ㆍ18담론에서 주변화되어 왔던 주체들, 즉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건네주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역할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화하면서, ‘저항’의 의미와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방송차를 타고 광주 시민들에게 현장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썼지만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던 전옥주 씨, 부상자와 사망자로 가득한 병원에서 5ㆍ18의 참상을 눈앞에서 체험하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시체를 수습해야 했던 간호사들, 그리고 노동운동을 하던 여공들을 비롯해 남편 대신 생계를 이어가며 고된 삶을 살아 온 평범한 시장 상인들과 주부들이 국가가 자행한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어머니로서, 간호사로서, 노동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지켜냈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또 술집에서 서럽게 번 돈으로 도청에 가서 향을 사다 피우고 무명옷을 사다가 시체에 입혔던 술집 아가씨들의 이야기, “우리는 총 맞아 죽어도 된다”며 자신을 숨겨 주었던 넝마주이들의 이야기는 이 책이 보여 주는 또 다른 5ㆍ18의 비가시화된 주체들이기도 합니다.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김막님_____딸이 넷이어서 이름을 막님이라 했어라
화순에서 태어나 열일곱에 결혼해 주남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주남마을은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 작전에 투입될 때까지 주둔하던 곳으로, 이들은 이곳에서 광주로 통하는 외곽 도로를 차단ㆍ봉쇄하고 인근을 지나는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일용직 근로자로 생활하다가 1980년을 맞았다. 1980년 5월 21일, 공수부대원들이 주남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녀는 마을 앞 하천둑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일용 근로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무조건 총으로 쏴죽이던 그날 밤의 계엄군을 잊지 못하지만, 여전히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여백이 상당히 많다.

박수복_____우리가 다 그렇게 빨갱이로 보여요?
나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공부를 곧잘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기집애가 공부해 봤자 시집가서 친정에다 편지나 쓴다”며 반대했다. 그래도 꾸준히 공민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이웃집 아줌마의 애 봐주는 일을 하다가 공부와 연이 끊겼다. 이후 “없이 사니까 공장 생활이라도 해야” 했던 그녀는 베 짜는 공장에 다니다 친구의 오빠를 만나 결혼했고, 이후에도 도시 공장으로 옮겨 일을 계속했다. 당시 그녀는 잠이 쏟아지는데도 일을 하다 베틀에 눈을 다쳐 실명한 동료를 지켜보아야 했고, 임금인상을 위한 데모도 해보았다. 그녀 역시 시집생활은 순탄치 않았는데, 시어머니가 혼수 문제를 들먹이고 딸을 낳았다고 구박하는 등의 이유로 속을 썩어야 했다. 게다가 남편은 정신병에 걸렸는데, 생계를 위해 옷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양동시장에서 5ㆍ18을 맞았다. 당시 그녀는 상인들과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했으며,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사망한 사촌 동생 박병규 씨의 시신을 망월동에서 수습해야 했다. 또 다른 사촌이 시위에 가담했다가 구속되어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난 가족사도 안고 있다. 이 경험 때문에 한동안 분노감을 안고 살았다. 지금도 양동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동심_____내 자식 같고, 이녁 동생 같고
강진의 가우도라는 섬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했다. 스물셋에 결혼해 10년 넘게 강진에서 살다 “이중인격을 쓰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피해 광주로 옮겨 대인시장에서 고추 방앗간을 열었다. 5ㆍ18 당시 시장 상인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했다. 김동심 씨에게 5ㆍ18은 ‘징그럽게 무서운 전쟁’이자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현재도 여전히 대인시장에서 방앗간을 지키고 있으며, 어렸을 때 못했던 공부가 한이 되어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곽근례_____아무라도 배고프믄 살려야 돼
함평에서 태어난 그녀는 20세에 결혼해 시골에서 살다가 1980년에 광주로 이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에 닭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가 바로 5ㆍ18을 만났다. 당시 시장 상인들과 함께 시민군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지금도 대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하문순_____아야, 학생들이 굶고 있단다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22세에 결혼해 서울로 갔다가,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자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 다시 광주로 왔다. 대인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한 지 3년이 됐을 때 5ㆍ18을 맞은 그녀는 “학생들이 굶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시장 상인들로부터 조금씩 돈을 걷고 재료를 얻어와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보냈다. 비록 “먹고살기 바뻐” 시위 현장은 보지도 못했지만 뒤에서 하루에도 세 가마니씩 밥을 쪄서 보냈던 그녀는 그 와중에 “허리가 너무 아퍼서 펴다가” 우연히 찍힌 사진 때문에 지금도 기자들이 찾곤 한다. 평생 동안 아픈 남편을 돌보며 지금까지 리어카 행상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5ㆍ18 행사는 리어카 놓을 데가 없어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세상을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삶의 확신을 지니고 있다.


주먹밥을 만들다 찍힌 사진의 주인공 하문순 씨. 지금도 그녀는 리어카를 몰며 과일 장사를 하고 있다(ⓒ김태일ㆍ주로미)

윤청자_____이 애리디애린 것들이 우리 여자를 보호한다고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1978년, 호남전기에 여공으로 들어가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호남전기는 방위산업체로 노조를 결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나, “화장실에 오래 있지 말라고 똥도 안 퍼주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JOC 활동을 하면서 만난 김성애, 이정희, 추선숙 등과 함께 노조를 결성해 임금 인상 투쟁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노동운동에 몰두하던 와중 5ㆍ18을 만난 그녀는 도청에서 시신 수습을 위한 ‘국민장례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했으며, “피 냄새, 땀 냄새, 시체 냄새가 펄펄” 나는 와중에도 밥을 해 날랐다. 5월 27일 마지막 밤까지 밥을 해주던 그녀는 “그 애리디애린 것들이 여자를 보호한다고” 가라는 말에 그곳을 떠나왔던 것을 지금도 괴로워하며 살고 있다. 이후 ‘가톨릭노동상담소’, ‘성요셉의집’ 등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현재는 지역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있다 떠나온 윤청자 씨 (ⓒ김태일ㆍ주로미)

이정희_____왜 때리는지, 이유나 알고 맞자
여수에서 태어난 그녀는 1976년, 호남전기에 입사해 김성애를 만나 JOC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후 전남 최초로 여성 노조 위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남자가 어용으로 노조위원장을 할 때와 달리 여성 조합원에 대한 노동조합의 문턱을 낮췄다”고 이야기한다. 1979년 임금 인상 투쟁을 성공시키고 이듬해 5ㆍ18을 만나지만, 형사들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쟁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5ㆍ18 직후 기무사로 끌려가 고문을 받으면서 ‘김대중 내란 음모’에 가담했다고 시인하든지, 회사에 사표를 쓰든지 결정하라는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 사표를 쓰기로 하고 풀려난다. 이런 이력 때문에 더 이상 취업하지 못한 그녀는 지금까지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취직을 못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당당했던 과거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전옥주_____모든 시민들은 도청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 무용을 했던 그녀는 “운동가 하나 알고 있는 게 없었”지만, 친구를 만나기 위해 광주에 왔다가 5ㆍ18 현장을 만나 항쟁 상황을 알리고 시민의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방송을 주도했다. 항쟁 중간에 계엄군에게 잡혀가 간첩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한 그녀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방송을 안했으면 피해가 줄었을까”를 생각하다가도 그 일은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한 일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현재 수도권의 장애인 관련 신문사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방송차를 타고 다니며 당시 잔혹한 거리의 실상을 알렸던 전옥주 씨(본명 전춘심)

박정자_____그때 그런 일 안 한 사람은 없겠죠, 다 내 일이었으니까
광주에서 태어난 박정자 씨는 속칭 ‘무등산 타잔 사건’으로 알려진 박흥숙 씨의 동생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이 사건을 이해해야만 읽어 나갈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무허가 빈민촌이 조성되어 있던 무등산 자락에 1977년 4월 20일 새벽, 철거반이 갑자기 들이닥쳐 집을 불태우며 철거를 시작하자 박흥숙이 이에 저항하면서 철거반 네 명을 숨지게 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광주 각계각층에서 구명 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1980년 사형이 집행된다. 5ㆍ18 당시 박정자 씨는 어머니와 함께 대인시장 골목에서 만화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물건을 떼러 가던 도중에 금남로 일대에 전경들이 시민들을 쫓아다니며 “때려죽이는” 처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시위 현장을 매일 찾았고, 밥을 해서 도청 시민군에게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지금도 오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빈민촌 노인들을 돌보던 오빠의 성품을 이야기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는, 용산 참사를 보면서도 그때를 떠올렸다고 한다. 현재는 완도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정순자_____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게 후회가 돼요
순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5ㆍ18 당시 기독병원 간호과장이었다. 당시 기독병원은 광주 시내 어느 병원보다도 부상자가 많이 몰렸던 곳이어서 부상자 치료와 시신 수습의 강도가 아주 높았고, 그녀의 구술 역시 “총에 맞아 발이 덜렁덜렁 해도 웃고 있는 전대생”이나 “헌혈한 여고생이 한 시간도 안 돼 총에 맞아 시체로 돌아온 이야기” 등을 통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참상을 생생히 전해 주고 있다. 당시 부상자들뿐만 아니라 “걸레가 된 시신”을 모아 수습하는 일까지 해야 했던 그녀는 충격 때문에 상당 기간 우울증과 분노감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걸”하고 후회가 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현재 은퇴하고도 독거노인을 돕는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방귀례_____저놈들 다 죽겄다 싶응께 그걸 했제
남원에서 태어나 15세에 결혼해 농사를 짓고 살다가 자식들 교육 때문에 광주로 왔다. 5ㆍ18 이전에도 성당에서 시신을 염해 주는 봉사활동을 하던 그녀는 전남대 뒤에서 일어난 데모 광경을 목격한다. “저짝서 온 사람들은 총을 갖고 있는디, 우리 광주 사람들은 연장도 없이 손으로만 가던” 모습에 그녀는 자갈을 치마에다가 싸서 대학생들에게 전해주었다. 신부님으로부터 데모하던 학생들이 총에 맞아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전남대학교병원과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가 시신 수습 활동에 참여했다. “가마니때기에 싸인” 시신들의 처참한 모습에 “어찌케 울면서 했는지, 기가 막혀 죽겄어”라고 말하는 그녀의 구술은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잘 전해준다. 이후로도 그녀는 15년째 빈민이나 독거노인의 시신을 염해 주는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송희성_____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
해남에서 태어난 그녀는 진보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 때는 최초로 대학생 계몽대(농활대)를 조직하는 등 학생운동에 열심이었으며, 대학 졸업 이후에도 “비서보다는 사회운동을 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YWCA 활동, 유신 반대 운동 등을 했다. 5ㆍ18 당시에는 이웃 주민들을 모아 시신 수습을 위해 필요한 마스크와 장갑 등을 만들어 공급하고 도청에 밥과 간식을 날마다 배달했다는 이유로, 505 보안대 지하실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났다. 지금도 당시 넝마주이들이 “우리는 죽어도 된다”며 자신을 숨겨준 일화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5ㆍ18 이후에는 ““돈 벌어서 남 주자, 배워서 남 주자”는 신조로 여성유권자연맹을 만들고 여성운동을 펼쳤으며, 법학 박사 학위를 따고 강단에 서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은 글 쓰는 것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글 쓰는 것이 울화통이 터져서 활동을 한다는 그녀는 현재 ‘한국여성지도자연합’ 광주ㆍ전남 회장, ‘오월민주여성회’ 회장, ‘우리겨레하나되기’ 광주ㆍ전남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오경자_____간호사 나와라, 우리는 국군이다
화순에서 태어난 그녀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와 오빠를 잃고 자신을 힘들게 키운 어머니의 권유로 간호사가 되었다. 1980년 당시 조선대학교병원 간호부장으로 있었던 그녀는 항쟁 초기에 조선대학교 체육관을 임시 주둔지로 쓰던 계엄군과 시민 부상자를 모두 치료한 경험을 갖고 있다. 병원에 들어온 학생들을 쫓아온 군인들과 젊은 의대생들 사이의 긴장감이나 환자와 보호자를 굶기지 않기 위해 밥 반 그릇 먹기 운동을 하고 의사나 간호사 모두 환자를 위해 자기 피를 내어 주던 당시 “야전병원” 같은 상황을 그녀의 증언은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다. 또 시체 검안을 위해 도청에 갔다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파리약 위의 파리처럼 죽어 있는 광경을 이성을 가지고 볼 수가 없었던”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는 지금도 “환자들 방에 한 번 더 가볼 걸”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모성이 간호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도청에 들어가 시민군을 도왔던 정숙경 씨. 그녀는 지금도 총소리 후유증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김태일ㆍ주로미)

정숙경_____5ㆍ18이 내 청춘을 다 가져갔어
남평에서 태어난 그녀는 1980년 당시 JOC 활동을 하면서 요한병원 상담사로 일하던 중 5ㆍ18을 만나 도청에 들어가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고 시체를 염하는 등의 일을 도왔다. 당시 들었던 총소리 후유증으로 지금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남편과 시골에서 버섯을 기르면서 살고 있다.

노영숙_____우리는 광주 가족이다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1978년 전남대학교 ‘교육 지표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후 5ㆍ18 때 다시 구속되었던 노준현 씨의 누나이다. 당시 노영숙 씨는 YWCA 청년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구속된 이후 ‘5ㆍ18 구속자 가족협의회’ 결성에 참여해 구속자 석방 운동을 벌였다. 현재는 오월어머니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현옥_____총알은 그냥 갖고 살아요
장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5ㆍ18 때 부상을 당했던 남편과 결혼했다. 지금까지 그 후유증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던 이현옥 씨는 신춘문예로 등단해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순덕_____군인들한테 애원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진보적 분위기의 중앙여고를 다니면서 박정희 시절부터 데모에 익숙했던 여고생이었다. 교직에 있는 남편과 결혼해 첫 아들의 돌이 막 지났을 때 5ㆍ18을 겪었다. 친구가 5ㆍ18 때 사망했으며, 이후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때도 친구를 잃어 유독 삶과 죽음의 문제에 고민이 많던 시간을 보냈다. 현재는 국악 관련 일을 하며 5ㆍ18 행사에도 참여하고 전라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

이귀님_____남편 뒷바라지가 아니라 빈자리를 채운 거야
광주 금남로 5가에서 태어났다. 1~3대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고 윤영규 선생과 결혼했다. 5ㆍ18 당시 수습대책위 활동을 한 남편과 함께 다양한 일에 관여했으며, 항쟁 이후에는 교육 운동과 민가협 활동에 헌신했다. 지금은 오월어머니집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미례_____아줌마들이 움직여야 변화가 생겨요
광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1980년 당시 광주중앙여고 학생이었다. 당시 중앙여고는 상당히 진보적인 분위기여서 항쟁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5ㆍ18이라는 충격적 경험으로 인해 한동안 무력감에 시달리다, 대학 진학 후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생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을 하는 남편과 결혼해 생활하면서 지역운동과 여성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현재는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근간소개

『고진로 사회권 』 ◆ 이주희 지음 ◆ 2012년 11월 출간 예정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완전고용과 두 자릿수 경제성장, 복지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두었던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변화된 환경에 걸맞은 적절한 사회권 모델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지 못했다. 그 사이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넘어 사회 통합마저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연구가 노동 및 노동권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어 온 데 반해, 이 책은 새롭게 사회권을 조명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을 조건으로 한 복지 수혜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비정규직에게도 적절한 사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필자는 그런 사회권이야말로 고진로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권, 즉 고진로 사회권이라고 명명한다. 그 바탕에는 사회권에 대한 세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한, 고임금 일자리를 늘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놓여 있다. 이 책에서는 1,020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지와 답변 및 8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조사지를 분석해 고진로 사회권 모델의 미시적 기초를 확인한다. 성별, 계층, 혼인 여부, 직업, 업종, 사업장 규모, 근로소득, 고용 형태, 노조 가입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미치는 영향력을 살핌으로써, 정규직과 비정규직 일자리의 차이 및 이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의 상관관계,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노동권을 확보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지 여부,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진보적 의식을 지녔다는 것이 곧바로 진일보한 사회권 의식으로 이어지는지 등의 의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권을 발전시키고 복지국가 제도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ㆍ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이다.

『한국 경제론의 충돌 :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경제 민주화 』 ◆ 이병천 지음 ◆ 2012년 11월말 출간 예정 강원대 이병천 교수가 올해 <프레시안>에서 장하준과 벌인 논쟁을 정리한 책이 출간됩니다. 저자는, 그간 다양한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장하준의 한국 경제론이 갖고 있는 맹점을 비판하면서 국제 금융자본과 국내 재벌 세력들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장하준식의 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허울뿐인 공약이 되어 버린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와, 장하준의 ‘재벌 옹호론’에 대한 찜찜한 감정을 이 책을 통해 속 시원히 해결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잠시 이병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지난 시기 한국 경제의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면에서나, 새로운 미래 대안의 구상에 있어서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한국의 제도 정치판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데 주요 요인이 있다. 집권 보수 여당이 여전히 낡은 ‘줄푸세’ 정책에 집착함으로써 오랫동안 죽어 있다 겨우 살아난 경제민주화를 정체불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의 형편이 크게 낫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는 한국의 민주당과 이를 지지하는 지식인의 경우, 지난 집권 시기 실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보여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줄푸세’는 단지 이명박 정부-박근혜 후보의 전매특허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몸통도 크게 관통했던 정책 흐름이었다. … 어떤 정치 세력, 어떤 시대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해서 사회경제적 민주화도 잘 해 낸다는 보장은 주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적 억압으로 악명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경제 실적도 정치적 억압에 비례해 형편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다. 87년 민주화 25주년이기도 한 올해의 대선 국면에서 민주개혁 세력이 과거에 갇힌 불통 집권 여당 후보와도 힘겨운 게임을 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장하준 교수와 그의 동료들의 작업에 주목한다. 그들은 민주화와 금융 세계화 시대는 물론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로까지 소급해 근대화 50년 한국 경제의 궤적과 대안에 대해 주목할 만한 굵직한 발언들을 해 왔다. 나는 그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발언이 특히 이분법적 편가르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발상의 전환을 요청하는, 파격적 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와 그 그룹의 논지는 한쪽으로 굽혀진 막대기를 바로 잡으려다 정반대 방향으로 너무 굽힌 꼴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한 발짝은 미래로 내디뎠으나 또 다른 한 발짝은 여전히 과거에, 특히 개발독재의 추억에 붙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인 인터뷰 』 ◆ 김경미 지음 ◆ 2012년 11월 출간 예정 22명의 자유인을 인터뷰하다. 김근태, 김선현, 박선숙, 심상정, 엘리자베스 샤바놀, 강산에, 권해효, 김성식, 김종인, 김창남, 남경필, 노회찬, 원희룡, 윤여준, 이계안, 이근식, 이종걸, 임종인, 정동영, 천정배, 최장집, 홍세화. 한국, 2012년 겨울.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고, 삼성ㆍ현대ㆍ쌍용과 같은 ‘세계적 기업’을 자랑하면서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 현대에서 일하는 노동자, 쌍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이 낳은 뒤틀림이 도처에 넘쳐 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통합과 연대의 가치를 진전시키는 데 무기력할까? 필자로 하여금 ‘자유인’을 찾아 나서게 한 의문점이었다. 필자는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자유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을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들과의 대화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2011년 봄부터 2012년 2월까지 우리 사회의 자유인들을 만났다. “양극화된 자유와 부자유의 분단선을 넘어 만인이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속히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그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해 담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예술이란, 영화란, 인생이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놓인 거대한 벽을 조그만 끌을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긁어내는 것이다.” (<프레시안>에 실린 변영주와의 인터뷰 중에서) 이 책에 실린 자유인들은 하나같이, 원래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 제아무리 제약과 한계가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며 자신만의 벽 긁기를 포기하지 않는 삶을 보여 준다. 정치인으로는 새누리당부터 진보정의당까지, 분야로는 학자부터 문화ㆍ예술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 함께한 인터뷰는, 어쩌면 자유에 대해 22명이 내린 22개의 정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그들의 상황은 인터뷰할 당시와 많이 바뀌어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이는 2012년 대선 캠프에서 뛰고 있으며, 어떤 이는 대선 후보로 나섰다. 어떤 이는 새롭게 당을 일구고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재야의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예상한 경로를 따라 움직인 이도 있지만 뜻밖의 행보를 보인 이도 있다. 2012년 11월 현재, 우리는 그들이 남긴 과거의 말과 현재의 행동을 비교할 수 있다. 이는 지진이 일어난 진앙지를 미리 들여다보는 듯한 흥미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 ◆ 하수정 지음 ◆ 2012년 12월 출간 예정 1986년 2월 28일, 두 발의 총성.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하지만 죽음보다 삶이 더 빛났던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말하다. 스웨덴은 공공 분야의 청렴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투표율은 세계 최고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눈치를 본다. 국민은 정당이 내건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못이 있을 경우 임기 중에 끌어내리는 일도 다반사다. 스웨덴에서 정치가는 밤낮없이 일하지만 월급은 적게 받는 불쌍한 직업으로 여겨진다. 정치인이 정치 활동에 종사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존경을 얻는다. 어쩌면 스웨덴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란 그 원형적 의미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런 스웨덴의 한 기관에서 가장 존경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자국민에게 물었다. 정치인이 상위 10위 안에 가장 많이 포함됐는데, 그중에서도 1위와 3위가 정치인이었다. 1위는 넬슨 만델라였고, 3위가 팔메였다.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정치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이름인 셈이다. 스웨덴처럼 평화로운 나라의 총리가 시내 한복판에서 총에 맞아 죽었고, 그 범인이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올로프 팔메라는 인물을 접하며 가장 먼저 궁금한 점이다. 이 책은 그 비극적 죽음의 전모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외적 격동기에 한 나라를 이끈 지도자인 팔메가 어떻게 정계에 입문했고, 그 영향력을 스웨덴에서 전 세계로 넓혀 갔는지를 살피며 그의 생을 복원한다. 필자는 팔메를 연구하면서 스웨덴이 더 깊고 넓게 보였다고 말한다. 산업화와 근대화시기에 정치 입문해, 그의 인생 마지막 10여 년을 스웨덴의 총리로 살았던 팔메를 말하지 않고 오늘날 스웨덴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의 삶은 정치와 정치가의 모델을 보여 주는 설명서이자, 지금의 스웨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서문 1장 1986년 2월 28일. 영화보고 가는 길 두 발의 총성 2장 부르주아 출신 사회주의자 3장 그를 사회주의자로 만든 것은 미국이다 4장 1951년, 스웨덴 총학생 연합 회장 5장 보헤미안 정치인, 총리가 되다 6장 1976년, 졌다. 사회민주당, 44년 만의 패배 7장 세계 외교사에 스웨덴을 새기다 : 열강을 위협한 제3의 외교 노선 8장 팔메가 남긴 유산

저자와의 만남 (최장집:『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10월의 마지막 날 저녁,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라는 책의 저자 최장집 교수가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이 대화는 무려 세 시간 동안 이어졌는데요, 대화 내용이 좋아서 좀 길지만 정리해 봤습니다. 책으로는 읽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현장의 경험이 가르쳐 준 것, 그리고 이 책이 갖는 새로운 의미

『경향신문』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보통 칼럼이 원고지 10매 정도인 데 비해 20매를 써야 했다. 고민하던 차에 고려대학교 노동연구소 실사팀이 장위동 봉제공장을 방문한다기에 따라갔고 그 뒤로도 그런 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1980년 한국의 노동문제로 박사 논문을 쓸 당시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인터뷰했었는데, 그로부터 30년 만이다. 인터뷰 주제를 잡아야 하고, 인터뷰 대상을 소개 받아야 하고, 각 주제에 대한 현황을 미리 공부해야 했는데, 섬유공업, 자동차 공장, 일용직 노동, 청년 시급 노동에 이르기까지 주제가 넓다 보니 쉽지 않았다.
서문에도 썼지만, 일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인생 공부 많이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우울했다. 내가 알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나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내 자신이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러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내가 엉뚱한 이야기나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것이 괴로웠다.
또 하나 이 경험이 의미 있었던 것은, 내가 처음 노동문제를 공부할 때, 즉 1960~70년대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뒤 노동자들의 구성이나 생활양식,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다. 내가 젊었으면 이런 걸 소재로 큰 논문이나 책을 썼을 텐데.(웃음)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사회적 삶이라는 것이 보통의 안정적인 중산층이 볼 때는 노동이든 주거 양식이든 여러 기준에서 상당히 다른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삶은 언론에도 특집으로 조명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이들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어서 보통의 중하층,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의 생활은 마치 지층이 갈라져 있듯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이 민주주의하에서 정치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느냐, 정치적으로 대표되느냐, 민주주의를 통해 어떤 혜택을 받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진보의 의미랄까, 과연 진보의 역할은 뭘까, 진보는 이들 중하층 사람들의 생활 조건의 향상을 위해 무엇을 기여했을까를 생각했다. 현장을 보면서 진보가 별로 한 게 없다는 것, 민주주의는 됐다고 하지만 정당이나 정치도 이들을 위해 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랄까 그들의 관점이랄까, 그런 것들을 (책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내가 이런 느낌을 통해 문제를 말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나로서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크기가 작아서 전철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글도 쉽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이 책은 그간 내가 쓴 다른 책에 비해 내게는 훨씬 의미가 크고 배운 것이 많았고 애착이 많이 간다. 나는 한 번 쓴 책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습성이 있다. 그래서 다시 고칠 기회가 있으면 아주 괴롭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 그 책이 너무 맘에 안 들기 때문이다. 이것밖에 못썼나 하는 생각 때문에……. 내 약점이나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싫어서도 그렇고, 관심이 벌써 새로운 데 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다시 보고 싶다. 그때의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고 여기에 담지 못한 것도 있고……. 내겐 새로운 의미가 있는 책이다.


50~60대 일용직 남성 노동자들의 삶, 1960~70년대 청계천 피복 여성 노동자들과의 재회

피복 노조 노동자들의 경우 한 세대가 지난 이후 노동자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여 주는 매우 좋은 사례다. 전체적으로 볼 땐 한국의 경제는 성장했고 소득수준도 향상됐다. 당시 1960~70년대에 20대 전후였던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같은 직종의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계를 위해 재취업을 한 경우가 많다. 봉제 공장은 소규모 가내 공장이 많아 남편인 노동자 사장이 있고, 그를 도와 재봉틀을 돌리는 부인, 외국인 미싱사들이 있었다. 주로 임대료가 싼 장위동 변두리에 밀집되어 있다. 생활수준은 옛날 청계 피복 시절에 비해서는 향상되었으나 이 산업은 더 이상 발전할 곳이 없는 종착 지점과 비슷했다. 소멸되어 가는 사양산업의 단면이랄까. 30년 동안 전반적인 생활은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중산층에서도 아래층의 중산층, 한계적 지위에 있는 계층을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경우 새벽 노동시장이 4시에 열리고 5시 반쯤이 되기 전에 일터가 결정되어 어디론가 떠난다. 우리나라의 건설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지만 이들의 생활은 섬유 봉제 공장 노동자들보다도 훨씬 나빴다. 이들은 1970~80년대 중동 건설 현장에서 모래 섞인 도시락을 먹으면서 외화를 벌어들였고, 한국 경제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들인데, 개인으로나 가족으로나 여전히 형편이 좋지 않았다. 대체로 성남 일대 반지하방이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자식들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제대로 뒷바라지 하지 못해 대체로 좋은 대학을 보내지 못했고 취직도 잘 안 된 것 같았다.




현대 자동차, 노동 없는 생산 체제

현대 자동차 노조야 말로 민주노총의 산실이고 본산지인데, 가서 보니 완전히 정규직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조였다.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은 심지어 공장 밖에 있었다. 생산라인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일을 하는데, 옷 색깔로 구별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훨씬 많았으며, 나쁜 시간대와 어려운 일을 맡아서 했다. 내부적으로 확실히 층위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정규직은 옛날 정규직이 그대로 나이가 들어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 되며, 신규 채용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므로 이들은 주로 20~30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곧 세대 간의 격차가 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 1980년 8월, 영등포에 있던 노조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러 갔었는데, 수위실에 경찰인지 정보부 요원인지가 출입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감시?감독하는 등 분위기가 살벌했었다. 이번 현대자동차 갔더니 그때처럼 차가 앞에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입을 감시?감독하고 있었다. 1980년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민주주의하에서의 권위주의적 통제랄까. 그것도 현대자동차에서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비정규직의 수입은 평균적으로 정규직의 그것에 비해 딱 절반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2년마다 법이 어떻게 악용되는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하기를 10년 동안 일곱 번인가 고용 계약서를 썼는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느 공장에 취직되어 있는지 갑자기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또한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몇 시 몇 분에 생산라인을 나온 자동차는 자기라면 안 사겠다고 했다. 현대 자동차 생산 라인과 기술의 조직이라는 것이 완전히 노동을 배제한 구조로 기획된 것이다. 여러 하청 기업들과 계열사들에 (각 부품을 표준화해 생산하는) 모듈 공장을 만들어서 대학생들도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숙련이나 정성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현대차는 해외에 28개 공장을 두고 있다. 주력 생산은 다 외국에서 이루어진다. 한국 생산라인에서 생산되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예전에는 외국차를 타면 마치 애국심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꼭 현대차를 사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기업의 성장이 고용을 증대하는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자활 센터 방문과 복지에 대한 생각

전주 덕진에 있는 대표적인 자활 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꽃꽂이, 자전거 수리 등 자영업을 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가르쳤는데, 실제로 사업을 시작할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복지 대상은 스티그마라 할까, 열등해서 취직도 못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겨우 먹고 사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그것이 사람을 기죽게 만들고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게다가 수급자들, 차상위, 차차상위를 구분하는 것이 기계적이고 관료적이고 모순이 많았다.
지방 예산을 들여 노인 복지 센터를 상당히 화려하게 지어 놓았는데, 교육의 도시답게 퇴직한 교육 공무원들이 옷도 멋있게 차려 입고, 그곳에서 바둑도 두고 서예도 배우고, 쉼터로 사용하고 있더라. 그건 좋은데, 문제는 정작 못사는 사람들은 그곳에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퇴직한 공무원이나 교사 정도는 돼서, 자식들도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서 친구도 사귀고 그러지, 그렇지도 못한 사람들은 우선 들어가기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집을 근사하게 지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럴 돈이 있으면 더 못사는 사람들을 지원해 줘야 한다. 그러면서 통계 낼 때는 복지 예산으로 잡히겠지만 내용적으로는 그게 허점인 것이다.
한 교회의 안내를 받아 어느 독거노인의 집에 갔다. 겨울이었는데 썰렁한 작은 방에서, 고장 난 텔레비전과 밥상에 놓인 성경책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그 할머니가 몸이 너무 아파서 거의 돌아가시게 될 정도도 아니고 다리만 불편할 뿐인데 멀쩡한 할머니가 생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에 갇혀 있는 걸 보니 감옥이 따로 없다 싶었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자격 심사에서 배제됐다는데, 행정적으로 복지가 시행될 때 상당히 섬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을 맞아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이야기하는 것 다 좋은데, 너무 붕 뜬 이야기만 한다. 이미 있는 사회 복지 제도의 하부 기반을 어떻게 개선하고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야 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있을 텐데 말이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면서 우리가 마치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될 것으로 기대만 잔뜩 부풀린다. 복지 예산이 늘어난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노인 복지 센터 화려하게 짓는 데 들어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섬세한 복지 정책과 시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공덕동 재래시장을 다녀와서

이곳에 가기 전까지 난 이마트와 하이마트도 구분하지 못했다. 불과 2백 미터도 안 된 곳에 이마트가 들어섰는데, 재래시장과 대형 마트가 마주보면서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대립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재벌 기업이 소매업에 진출하면 그 일대 재래시장은 존립할 수가 없다.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데, 그런 기제가 한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사례 하나만 보더라도 정부의 성장 정책이 대기업 중심이고 이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지,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이나 폐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설사 이를 규제할 수 있는 형식적인 법이 있다 해도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구청장이 있을 때나 민주당 구청장이 있을 때나 달라진 것이 없다.
서울 도시의 생태랄까 모두가 그런 식이다. 도시 개발 계획이 서면 금을 그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방해가 되는 것은 폭력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형 마트 규제 법안이 이미 1930년대에 만들어졌고 1970년대 전후에 개정이 되어서, 대형 마트가 골목이나 주거지역에 진입할 수 없으며 주로 멀찍이 교외에 있다. 그래서 주거지역의 생태가 보존되는 것이다. 일본의 특징은 뒷골목이 살아 있고, 재래시장과 조그만 가게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일본에 연구년으로 가있을 때 모 매체에서 글을 써달라 해서, 일본에는 자영업자들이 살아 있고 뒷골목이 살아 있는데 그것이 부럽고 한국이 배워야 할 일이라고 썼더니, 나를 초청한 사람이 왈, 당신은 진보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왜 보수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들은 자민당 세력의 핵심 지지 기반인데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진보고 보수고 그런 걸 떠나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도쿄의 뒷골목에는 도쿠가와 말기 때의 모습이 상당 정도 유지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건물들도 많다. 서울의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서울의 생태 구조를 완전히 폭력적으로 재편성하는 것이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소매업까지 재벌 대기업으로 하여금 맘 놓고 팽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노동이라는 기준으로서만이 민주화 이후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박사 논문을 쓸 당시만 해도, 1960~70년대 한국은 성공적인 경제 발전 모델로 높이 평가됐다. 경제 발전은 밝은 측면, 겉으로 보이는 표면이며 그 이면의 그림자에 대한 평가는 없었는데, 그걸 노동문제를 통해 밝혀 보겠다는 것이 당시 내 문제의식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고, 기관차 달리듯 성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한국의 경제는 세계 최상위권에 진입하는 문턱에 있다. 그러나 그것의 어두운 측면이랄까, 성장에 기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매우 적다. 그래서 충분한 연구는 아니지만,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어느 나라든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냥 순조롭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나 대가를 치르고 자본주의 성장을 했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비용 없이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는 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이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비용의 문제, 성장이 가져온 부정적 효과라는 부분에 한국의 엘리트 정책 결정자, 지식인, 정치인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무관심도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간적 상처라는 건 리처드 세넷이라는 사회학자의 책 제목(The Hidden Injuries of Class)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굉장히 깊은 인간적 상처를 만들어 내면서 성장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젠 성장을 다른 방법으로 해야지, 이런 방식은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의미 없는 성장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이런 식의 성장은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파트 같은 것도 그만 짓고 개발도 그만하고…….
내가 노동문제를 보는 관점은 간단하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보는 것이다. 노동문제는 민주주의가 잘하는 것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정치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나의 모토다. 한국 사회에서는 뭐라 좋은 말을 떠들어도 노동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모두 의미 없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본다는 점에서 나는 진보는 아니다. 노동 해방, 사회주의처럼 이상적이고 낭만적이고 노동 계급적 발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문제는 민주주의를 잘 운영하는 것에 비례해서 좋아지고 나빠진다는 것이 나의 분명한 명제다. 노동이라는 기준으로서만이 민주화 이후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신빙성 있는 잣대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그것이 노동문제를 보는 나의 관점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의 의미, 역할, 성과라는 것은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처칠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동안 경험한 정치체제들을 제외하면 최악의 정치형태이다. 지금까지 한 것 중에는 제일 낫지만 결코 좋은 정치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잘 보여 주며, 민주주의를 현실주의적으로 본 것이다.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에 대입해서 보면, 민주주의는 헤게모닉한 체제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서 생산 체제를 이상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좋은 체제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편이다. 민주주의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현실주의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내가 노동문제를 민주주의적인 틀에서 본다는 건, 노동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저절로, 잘 해결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프레그마틱한 철학의 범위 안에서 우리가 정치를 최대한 노력해서 잘하는 방향, 즉 노력의 함수로서 노동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라는 건 한 정치사회 안의 세력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는 위에서, 타협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을 부정하거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는 공존할 수 없다. 절묘한 접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은 고도의 정치력, 지적 수준과 이론을 필요로 한다. 그런 틀에서 민주주의를 보기 때문에, 나는 민주주의에 대해 최소주의적으로 접근하는데, 즉 큰 기대를 해서 민주주의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자본주의 위기를 보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선거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20세기 초와 뉴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국가 중심의 케인스주의적 방법, 소득 재분재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 그것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 국가가 더 개입해 복지 정책을 실행하고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빈부 격차, 실업 등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일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실업과 소득 불평등을 민주주의가 감당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을까?
오바마와 롬니가 대결하는 구도라고 하는 것이, 오바마가 승리하면 무슨 뉴딜의 현대판처럼 되고 국가가 복지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위기, 빈부 격차, 실업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미국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다. 롬니 같은 래디컬한 시장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문제를 보면 미국 사회가 지탱될까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실제로 전체적인 흐름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선택이라는 것도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 자신의 방향으로 해결책을 끌고 가지 못하고 있다. 롬니의 약점을 말하지만, 캠페인에서 레토릭이나 정책 대안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롬니의 텃밭에서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보편적 복지다, 경제 민주화다 하면서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시대정신이 복지라면 문제 해결은 너무나 쉽고,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어려운 것이다. 시대정신은 희망 사항일지는 몰라도 현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와, 그 일부로서 한국의 위기라는 이 험난한 난관을 어떻게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야당이 집권하면 시대정신이 순풍을 달고 관철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오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폐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그냥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후 케인스주의적 사회 복지 체제가 1970년대에 이르면서 나타낸 여러 가지 형태의 부수적인 부작용, 성장과 복지가 가져온 부정적 결과들에 대응하는 하나의 틀이랄까, 독트린으로 발전되기 시작했고, 보다 앞의 사상가들인 하이에크라든가 시장자유주의 이론가들을 불러오면서 신자유주의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만들어진 거다. 먼저 이론적인 구상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여러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이 현실 문제를 타결하는 과정 속에서 결과적으로 개념화?이론화되었던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이다. 특정 자본주의의 이념이 신자유주의적 형태로 정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케인스주의적 복지 체제가 그래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노동자와 자본가들이 그 안에서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이론이고 정책 틀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것 나름대로 문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게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정도의 생산 체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해결하는 문제 역시 이론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각 나라가 부딪친 현실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해결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대안, 가치관, 이론적인 틀을 만들어야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역량이 필요하다.


한국의 반노동 의식

냉전의 직접적인 결과의 하나는 반공 의식과 반노동 의식인 것 같다. 하나는 남북한 관계,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적 문제인데, 노동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에도 노동문제의 중요성과 의미, 노동이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 노동과 인간이라는 것이 한 몸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인간적인 문제, 실존적인 문제…… 이런 것들을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일반적인 나머지, 거의 문화처럼 되었다. 일례로, 한 현대 자동차 노조원이 해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아버지 직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여럿이서 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오더니 애들이 막 울더란다. 자기 아버지가 근사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장에 다니는 줄 알고 긍지를 가졌는데, 우리 아버지가 노동자였다, 생산라인에서 파란 옷 입고 일하더라며 충격을 받고 울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라는 게 노동자, 기름때 묻은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에 대해 한 단계 낮은 걸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 노동이라는 건 굳이 칼 마르크스의 노동자 계급 혁명의 관점에서만 말하는 게 아니다. class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먼저 사용했고, 부르주아 학자인 토크빌 같은 사람들도 계급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냉전 시대를 살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교화되고 내면화되어서 우리의 문화가 된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인식이다. 헌법이나 공식 정부 문건에 노동자라는 말도 못쓴다. 노동자라는 말도 못 쓰는 나라에서 노동자가 제대로 평가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개헌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그런 것부터 고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우리 현실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독자가 질문했는데, 노동자들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서 이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노동자를 이상하게 보는 이상한 나라다, 이렇게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한다. 중요한 대선 이슈가 되어야 할 문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시장 이원화 문제, 청년 문제인데…….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부가 법을 만들어서 비정규직을 못 쓰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과연 해결될까. 현장에서 법이 안 지켜지면 어떻게 할까?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이 말이다. 울산에서 발견한 것은 현대차 본부의 정규직 말고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청 기업,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가 없다. 조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전부 내쫓고 해고한다. 이건 헌법에도 맞지 않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도 행사되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다. 다시 말하지만, 비정규직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작업 현장, 노동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집단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법만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가 주도하는 노동운동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일본의 축구협회 사람들은 협회장부터, IOC에 로비하는 대표들은 대체로 축구 선수 출신이더라. 한국은 정몽준 씨가 회장이었다. 정몽준 씨는 영어도 잘하고 발도 넓고 세계적 명사이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운동선수가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보다는 선진국이라고 본다. 영어도 좀 떨어지고 국제적인 발은 좁을지 몰라도 당사자들이 직접 뛰는 것이 선진국이다. 한국은 이사장들이 전부 능력 있고 돈 있는 정치인이고 재벌들이다. 운동선수들을 관리하는 지위인 것이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룰라를 보라. 금속노조 위원장이었고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브라질이 한국보다 선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당을 강조하는 이유

민주주의 이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정당 없이 출발했다. 유럽의 경우에는 의회주의 시기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은 헌법이 만들어져서 민주주의가 처음 굴러가기 시작했을 때, 매디슨의 『연방주의자 논설』(Federalist Papers) 10번에도 정당, 파벌의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매디슨이 실제로 정치를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직면했던 문제는, 주류 정당이 되어 있던 해밀턴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함께 헌법을 만들었지만 매디슨이나 제퍼슨이 소수가 되고, 해밀턴의 정당이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자 이들의 권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해서 만든 것이 민주공화당(현재 민주당의 전신)이다. 당시 대표되지 않았던 남부의 농민 이익을 동원해서 만든 것이다. 이론을 만들었던 사람이 직접 정치를 해보면서 제일 먼저 부딪친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당의 최초 태생, 정당의 존재 이유나 역할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다시 말해 정당은 처음 민주주의가 만들어졌을 때는 없었다. 전통적 토지 귀족과 엘리트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정부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투표권이 돌아가고 참여하게 되고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조직되면서부터 대중정당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단계의 민주주의에 들어선 것은 정당이 출현하면서부터다.
정당의 기본적인 역할은 대표되지 않았던 사회 세력들을 대규모로 조직해 표를 통해 선거에서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정당의 역할은 사회적 약자, 그동안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았던 표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은 태생적으로 진보적이고 대중적이다. 밑으로부터 권력이 조직되는 것이 정당이다. 나는 민주주의란 꼭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당 없이도, 예컨대 전자 투표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약자들의 힘이 조직될 수 없기 때문에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정당을 약자들을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약자들을 절대로 대변할 수 없다. 모바일 투표라든가 인터넷 소셜 미디어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것이 대중 참여를 불러 온다는 이야기도 좋고, 폭발적이고 파워풀하다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는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는 구분력이 없다는 것이다. 약자들이 구분되어서 자기의 힘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려면 그 사람들의 이익이 보다 더 집중적으로 대표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전자 매체를 통한 일반적 투표’로는 가능하지 않다. 시민, 대중, 인민 등 여러 형태로 표현될 수 있지만, 그것은 특정 사회집단,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란 선거가 반복되기 때문에 교차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자들이 정당을 조직했을 때는 다음에 집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되지 않았을 때는 만년 약자로서 재생산될 확률이 크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추첨해도 되고 전자 투표를 해도 되고 직접 민주주의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될 때에는 소외된 사회 세력이 정치적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에서 정당의 역할은 그런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정당, 정당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민주주의 하자고 말하면 된다. 내가 정당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그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출판사이야기

1. 홍대 뒷골목 책문화장터

2012년 마지막 <홍대 뒷골목 책문화장터>가 10월 20일(토)에 열렸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관계로 <홍대 뒷골목 책문화장터>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열리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더 알찬 장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3년 <홍대 뒷골목 책문화장터> 잊지말고 기다려주세요.





2. 제55회 역사학대회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카이스트에서 열린 제55회 역사학대회에 후마니타스가 다녀왔습니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40여개의 출판사가 도서전에 참여하였습니다.
궃은 날씨에 도서전을 찾는 독자들이 적어 많이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