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통신
2014년 06월호


후마니타스 책다방은 지금 한창 공사 중입니다.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또 그동안 불편했던 점들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입니다. 지금도 망치 소리, 칼 긋는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문짝이 떼어지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책다방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_-;) 바뀔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이달 통신의 메인은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강연회 전문입니다. 현실주의를 넘어선 ‘초월적 현실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 한편, 어떤 점을 유념하며 『군주론』 을 읽으면 좋을지, 번역본들 중에서도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무엇이 새로운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미 『군주론』을 읽은 분들께도 흥미로울 테고, 특히 읽을 예정인 분들께 좋은 길잡이가 될 테니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신자유주의와 권력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사토 요시유키 저
269쪽 / 2014년 05월 12일
16,000원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
352쪽 / 2014년 04월 28일
15,000원

 

[강연회] 왜 지금 마키아벨리인가




지난 2일 열린 군주론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는 90여 명의 독자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을 쓴 최장집 교수님은 마키아벨리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해 뒤이어 『군주론』을 새롭게 번역한 박상훈 박사님은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강연장을 찾지 못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소 길지만 강연 전문을 싣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장집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군주론 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새로 번역하고 서문을 써서 출간했습니다. 제가 어떤 생각으로 한국어판 서문을 썼는지를 중심으로, 마키아벨리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군주론』을 읽었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이 책을 읽지 않고 강의에 참석하셨다면 나중에 읽으시리라 전제하고 서문에 쓰이지 않는 내용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하는 것으로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어떤 생각으로 서문을 썼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문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수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군주론』의 배경을 설명하고 텍스트를 보는 데 도움을 주는 초보적 단계의 서문입니다. 그다음에는 중간급의 서문으로 내용을 좀 더 깊게 살피고 내용과 문장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수준에서 쓰는 방식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사람들, 적어도 정치사상을 상당 정도 전공해 박사 학위논문을 준비하거나 논문을 쓴 전공자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의 수준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텍스트의 말 하나하나를 가지고 따지는 작업입니다. 이 서문과 번역도 그런 작업을 했고 그 자체를 더 파고드는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중간 정도 수준에서 서문을 썼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마키아벨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으로 책의 장과 절을 설명하고 그냥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 나름대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정치의 발견
이젠 본론으로 들어가서, 『군주론』의 의미를 살펴보며 설명드리겠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얘기하겠습니다. 『군주론』은 읽는 사람을 굉장히 현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비유하자면 마치 사수가 표적이 움직이는 타깃을 조준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색깔을 띠기 때문에 주제를 포착하기가 굉장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서문 자체도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도 기존의 『군주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깊게 읽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읽으면 마키아벨리는 속임수, 교활함, 반역, 쿠데타 등의 아주 부정적인 말을 대표하고 그걸 내세우는 정치철학자처럼 이해됩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그런 식으로만 읽고 그렇게 느끼기만 하는 독자가 있다면 ‘지금 내가 잘못 읽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키아벨리 이론은 ‘정치의 발견’이라는 말로 간단히 집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학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서들은 플라톤의 『공화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이것과 짝이 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이 책들에서 인간이 정치에 관한 상을 두고 정치학을 하나의 실천적 학문으로서 탐구하기 때문에 정치학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기원전 4, 5세기 철학자들은 정치학과 윤리학을 분리하지 않았고 윤리학을 보다 상위의 영역으로 설정하면서 정치학은 그 실천적 하위 분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학을 하나의 실천적 학문의 대상으로써 탐구하기는 했지만 과연 정치라고 하는 인간 행위 현상을 독자적인 영역으로 두고 탐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비교해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독자적으로 추출해서 이것의 성격과 내용을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설명한 최초의 이론가입니다. 독자적인 영역으로서 정치를 상정하고 정치학을 연구했던 이론가라는 측면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발견’한 최초의 철학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의 혁명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자신도 스스로를 혁명적인 철학자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관한 강론』(이하 『강론』)의 서문에서 그는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자기도 정치의 영역에서 콜럼버스라고 스스로 규정했습니다. 『군주론』 1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야만 하는[한다고 상정되는] 것, 상상된 것에 대해 탐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탐구하는 방법론, 자신이 정치학을 보는 관점에 대해 서술합니다. 많이 인용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이상적인 것, 당위적으로 있어야 할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탐구하는 한편, 사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정치학의 근본적인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마키아벨리는 통상적인 관점에서 정치를 규범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선하거나 좋다는 측면에 대한 강조보다는 굉장히 부정적인 측면, 실제로 악이 어떻게 정치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정치라는 인간 행위 속에서 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키아벨리가 고결한 의도를 부정적으로 봤다기보다는 의도와 행위의 실제적 결과 사이의 차이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의 한편에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게 있지만 실제로 정치적인 행위를 했을 때, 이상과 그 결과 사이에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마키아벨리는 이를 드러내 보이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주의, 리얼리즘의 이론가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마키아벨리의 모든 것을 충분히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리얼리즘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리얼리즘이라고만 하면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념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제가 붙여 본 말입니다만, ‘초월적 현실주의’라고 할까, 즉 있는 그대로를 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그 너머에 현실주의가 필요로 하는 무엇이 있음을 말하는 겁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혁신, 쇄신, 구원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쓰거든요. 이 말은 굉장히 종교적인 언어죠.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기독교적인 도덕이나 윤리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이라는 개념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치 현상을 보는 언어들을 만들고 이를 통한 관점에서 정치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사람을 혁명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옛날 언어를 완전히 부정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새로운 혁명가, 철학자라 하더라도 그 언어 속에는 오히려 고대의 로마나 그리스 시기의 언어, 기독교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결합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개했습니다. ‘예언’이라고 하는 말은 정치적인 언어가 아니고 기독교적인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반기독교적인 철학을 기초로 해서 자기 이론을 펼친 혁명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 이 ‘구원’이라는 말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잘 끌어들여서 자기 의견을 주장했다는 거죠. 글을 읽다 보면 해방의 예언자처럼 말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초월적 현실주의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조직을 자신의 언어와 사상을 통해서 제시합니다. 마키아벨리는 홉스나 로크, 루소 같은 철학자들에 앞서서 ‘국가’를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이론적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종교적인 언어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 마치 창세기에 신이 나타나서 말하는 느낌을 주는 언어를 썼습니다. 생각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주의 그 자체로서 마키아벨리가 정지되는 게 아니라 그걸 뛰어넘어 국가라고 하는 새로운 정치적 현상의 출현 속에서 군주라고 하는 하나의 지도자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군주론』이 굉장히 흥미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기만 하더라도 이런 방법론의 책이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기에 나온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군주에 대한 핸드북이라고 할까 군주의 역할에 대한 조언서입니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기에도 이런 책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책들과 형식을 같이하면서, 즉 상당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책을 쓰면서도 그 내용에는 당시 누구도 얘기하지 않은 혁명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군주론』6장을 보시면 제가 언급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지도자 모델을 제시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의 모세, 페르시아의 키루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아테네를 건설했던 테세우스를 열거합니다. 이 사람들은 행운에 의해서, 마키아벨리의 언어로 말하면 ‘포르투나’에 의해서 새로운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도자 마음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비르투’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창출했던 위대한 지도자들입니다. 여기에 유명한 비유가 나옵니다. 궁수가 활을 쏠 때 중력의 힘을 예상해서 타깃을 높이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군주나 지도자가 목표를 높게 잡아야만, 비록 거기에는 못 미치더라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군주를 예언자에 비유합니다. 6장에서 유명한 대목이 무장한 예언자가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를 대비시키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현실주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예언자를 기다리고 그것을 실현할 이상과 목표에까지 미친다는 점입니다.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개념은 종교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이제는 연예인, 축구 스타 등 좀 더 남다른 능력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보통 명사처럼 쓰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종교 지도자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걸 정치 지도자의 것으로 끌어온 게 막스 베버거든요. 막스 베버가 말하는 기본적인 개념과 지도자 상은 마키아벨리의 예언자와 거의 같은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와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를 비교하면서 무장한 예언자는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패배했다고 표현합니다. 지도자는 맨몸으로 나오면 파멸하기 십상이라고 강조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구분인데요, 한 가지 염두에 두실 것은 ‘무장’은 말 그대로 군대와 물리력을 뜻하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6장의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것은 정신적인 힘, 고매한 이상, 예언자가 가질 수 있는 말의 힘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15장에서 18장은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장들입니다. 선과 덕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닌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스러움’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잔인함과 교활함을 서슴지 않고 쓸 것을 대놓고 권장하는 악명 높은 글입니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부도덕성을 권장하고 악을 권장하는 건 아닙니다. 현실에서 통용되던 기독교의 행동 규범, 종교적 덕목들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있기는 하나, 단순히 이를 부정한다고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하기 위해 선과 악을 둘러싼 도덕적 언어를 총체적으로 잘 평가하려 한 그의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이 장들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의 이중적인 측면
특히 18장에는 중요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원래 마키아벨리의 주요 관심사가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종교적 외양을 지닐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군주는 신앙심, 정직함, 인간성 등 모든 종교적 요소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앞서 열거한 덕목 가운데 종교적 외양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거든요. 혼란스러운 거죠. 기독교에 통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윤리나 신학적 체계를 부정하면서도, 군주가 이를 개발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도덕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 통용되던 지배적인 규범을 부정하는 것이죠. 기독교적인 도덕은 유순함의 도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어놓으라든가, 어떤 통념이나 부정에 대해서도 폭력적으로 대항하지 않을 것을 가르치는데, 이를 부정하는 게 마키아벨리의 핵심적인 관점입니다. 대신에 고대 로마의 용맹스러움으로부터 나온 ‘비르투’ 개념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청결함, 유순함, 순수성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 마키아벨리 자신의 새로운 도덕인 비르투가 있는데, 이 둘은 양립 가능하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마키아벨리는 기독교적인 도덕을 장려할 것 또한 강조합니다. 이 같은 점을 잘 새겨 읽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현실적으로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이 개혁적이고 혁명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할 때, 이 목표가 그대로 일반 사람들에게 강조되고 언표가 된다고 하면 기존의 도덕규범과 너무나 상충되기 때문에 수용될 수가 없는 거죠. 현실과 지향하는 가치 사이에서의 비중, 균형, 조정을 지도자가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특정의 변화, 변혁, 개혁을 하고자 하는 지도자나 정치 세력이 있다고 할 때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면밀하게 살피고 존중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사용해서 결과를 만들어 낸 데에 정치인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잔인함이나 속임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혹함을 받아들이는 것의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합니다. 국가 책략이 필요로 하는 데에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지 말라는 충고도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글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따라서 그의 글에 드러나는 이중적인 측면, 즉 그가 (어떤 가치들을) 부정하는 한편 수용하거나 존중하는 조건, 그리고 이들이 불가피하게 부과되는 시점과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주의 깊게 따라가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행위 속에도 이런 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군주론』과 『강론』이 대표적입니다. 군주론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입니다. 처음엔 로렌초가 아니라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는데 그가 예상 밖으로 빨리 죽는 바람에 헌정의 대상을 로렌초로 바꿨습니다. 『강론』의 헌정 대상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대표적인 귀족 자제들입니다. 귀족 가문의 독서 그룹 멤버였습니다. 보통 헌정이라고 하면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 한참 후배들에게 헌정했다는 건 이례적이죠. 메디치 가문과 마키아벨리는 정치적인 신조로 보나 관계로 보나 적대적이었지, 결코 같은 정치적인 범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공화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 자신의 철학이나 정치적인 신념과는 맞지 않았거든요. 또 평민에 가까운 자신과 신분이 다른 귀족 가문의 자제들에게 『강론』을 헌정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정치인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철학자도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적대적인 사람에게도 헌정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권력관에 대한 반대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왜 마키아벨리가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에는 기본적으로 두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민 참여, 즉 시민이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기능한다고 할 수 없어요. 다른 한 측면은 통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입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인 정치인을 뽑고, 이들이 국가와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죠. 민주주의는 이상과 가치로서의 측면과, 실제로 제도를 움직이고 실천해서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복합적으로 얽혀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제를 굴러가게 하는 거죠. 우리는 보통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처럼 이념의 한 형태로 여길 때가 있는데 민주주의의 원래의 개념은 시민의 통치 체제입니다. 시민 스스로가 통치하는 체제인 것이거든요. 민주주의란 여러 통치 체제 가운데 하나, 말하자면 지배 체제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를 운영하는 수준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을 이해한다면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한 신문에서 어느 진보적인 정치학자의 말씀이 소개된 걸 봤습니다.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어용이 되든가 권력에 저항하든가’ 둘 중에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의 정치 문화는 물론, 저를 포함한 교수 지식인들 또한 ‘권력은 악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반(反)권력을 선이라고 이해하는 측면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분법적 권력관이죠. 저는 이런 이분법적 권력관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이것은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실천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현실은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권력에 가까이 가면 타락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풍토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 정치 문화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권력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서 좋은 정치를 만들어 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력은 굉장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한 사회에서 정치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양자 관계로 분리해서 보기보다는, 한편에 권력과 관계하는 한 행위자와 정치권력이 있고, 또 다른 한 편에 목표, 사회적 정의, 진리와 같은 제3의 요소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권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행위자의 권력 행위에 대해서도 여러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거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에 봉사할 수도 있는 거고요. 권력에 대해 ‘어용’ 혹은 ‘저항’으로만 본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의 어떤 측면을 배울 수 있는지는 서문에 더 잘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상훈이라고 합니다. 넓은 범위에서 이 책의 특징은 책의 맨 뒷부분에 간단히 설명돼 있습니다. 보통 정치철학 분야의 고전을 다루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맥락적 접근’입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논의한 맥락 속에서 자신이 생각한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루는 방법입니다. 똑같은 『군주론』을 번역해도 기존의 여러 철학자, 정치사상가, 이론가 들이 『군주론』에 대해 말했던 맥락에 자신이 해석하는 내용과 관점을 대비시키는 것이죠. 이런 맥락적 접근은 최장집 선생님께서 기존의 『군주론』 해석과 달리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고 서술한 1부에 나타나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텍스트 그 자체 속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왜 앞에서는 이렇게 쓰였고 뒤에서는 다르게 쓰였을까’ 등등 표현 속에서 저자의 숨겨진 의도를 밝혀 보는 접근이죠.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일까, 그 단어의 뜻이 과연 다 똑같이 쓰였을까’를 찾아보면서, 위험한 주제를 다루는 사람이 사용하는 레토릭의 특징을 밝혀 보는 겁니다. 그게 이 책의 2부입니다. 이 부분을 제가 맡았습니다.

정치학 고전 중의 고전 『군주론』
보통 『군주론』을 고전이라고 부릅니다. 고전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모두가 다 아는 듯이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군주론』을 읽고 오셨거나, 이미 예전에 읽으신 분들도 있을 텐데, 사실 그 내용을 충분히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해석을 통해서 특정의 정형화된 해석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러다 어떤 기회에 책을 자세히 읽거나 다른 관점의 책을 읽다 보면 ‘아, 내 관점을 수정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자기 관점을 형성해 가곤 하죠. 그런 면에서 다 아는 듯이 말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의미일 텐데, 이를 달리 보면 계속 새롭게 번역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로 고전이란 영원히 식지 않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은 늘 새롭게 번역되는 것, 새롭게 번역될 때마다 색과 모양이 달라지기에 번역자도 하나의 창작을 하는 존재라 할 수 있죠.

출판사 입장에서 고전은 ‘저작권이 없는 책’입니다.(웃음) 저작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요. 대신에 겁은 나죠. 고전은 이미 충분히 많이 해석되어 온 책입니다. 그래서 고전을 잘못 번역하면 빛을 제대로 못보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전이 엄청나게 번역되고 있습니다만, 초판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작권은 없지만 고전 번역은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전문가들이나 전공자들에게 비난만 잔뜩 얻게 됩니다.

정치학 분야에 재미난 상이 있습니다. 벤저민 에반스 리핀콧 상(Benjamin Evans Lippincott award)인데, 살아 있는 사람이 고전에 해당하는 책을 쓸 때 주는 상입니다. 그때의 기준은 책의 초판이 나온 후 1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책에 대한 리뷰가 나오는 책입니다. 15년이 지났는데도 팔리는 것은 기본이고, 늘 새롭게 조명되고 재평가되는 책이어야 하는 거죠. 달리 말해, 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 내면서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새로운 생각과 인식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군주론』은 정치학 분야에서도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여러 가지로 비유할 수 있는데 짧지만 강한 비유가 ‘성경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입니다. 국내에도 『군주론』이 엄청나게 많이 번역됐습니다. 30종이 넘었다면 말 다 했죠. 고전 그 자체로만 번역된 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 권하는 군주론’ 같은 식의 처세 및 실용서도 많습니다. 마키아벨리 이름이 들어간 책들은 잘 팔리기 때문에, 혹자는 ‘마키아벨리 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관련 책이 엄청나게 나옵니다. 『군주론』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얻은 별명 중 하나는 ‘악마’입니다. 영국에는 머리에 뿔 달린 마키아벨리를 형상화한 맥주도 있답니다. 상품명이 ‘올드 닉’인데 ‘닉’은 ‘니콜로’의 약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키아벨리안’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또 여러 사람들이 군주론에 대해 반대를 말하지만, 『군주론』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용에 이견은 가질 수 있으나 무시할 수는 없는 책이죠. 그래서 『군주론』은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잘 다루면 속된 말로 약이 될 수도 있고, 잘못 다루면 그야말로 흉기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의 정치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말하라면 저는 『군주론』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도 정치를 통해 선한 의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면 마키아벨리의 시도는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개념에의 주목, 네체시타와 프루덴차
막스 베버는 정치의 본질을 비유할 때 ‘데몬’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의 수호신은 데몬이다.’ 데몬은 요즘 말로 하면 악마죠. 옛날에는 악마라기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호신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축제의 신, 전쟁의 신, 사랑의 신, 심판의 신 등처럼 말이죠. 제가 볼 때 『군주론』은 기독교 이전 또는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보다 그 이전에 있던 다신론적인 정치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이라고 하면, 인간의 정치가 맨 처음 출발했을 때 가졌던 다양한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번역한 『군주론』을 보면 그림이 많이 나옵니다. 이 그림들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마키아벨리가 이런 정치론을 펼쳤다는 건, 이전에 정치를 이해하는 형상화된 이미지, 즉 신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중요한 정치 개념에는 형상화된 신이 있고, 그 형상화된 신들에 대한 애초의 고전적 해석들이 매우 흥미롭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이 책의 특징에 대해서 묻는다면, 저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 이전의 인간이 처음 정치를 만들었을 때의 정치론, 마치 미술사의 고전주의 그림들처럼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상으로 이미지화했던 다신론적 정치론을 복원해 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러다 보니 형이상학이 갖고 있는 편견 또는 이후 중세 기독교가 정치에 대해 지닌 편견을 걷어 내 그 이전의 가장 원초적인 정치론을 부각시킨 데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 부분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저는 글 중간 중간 정치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개념이 나올 때마다 그 개념에 해당하는 신의 이미지를 복원해 보려고 했습니다. 포르투나가 왜 눈을 가리고 있는 여신인지, 왜 한 손에는 재물을 쥐고 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사람의 운명을 가혹하게 휘두르는 칼을 쥐고 있는지, 왜 네체시타는 운명의 바퀴인 방추를 손에 쥐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개념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할 때 폭력을 쓸 수도 있다는 ‘정당방위’ 개념의 어원과도 관련이 있는지 등의 문제들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는 비르투와 포르투나 등 두 개념이 주목받았다고 하면, 이 책을 통해서는 네체시타와 프루덴차는 물론, 명성과 두려움 등 중요 개념을 부각하려고 했습니다. 네체시타와 프루덴차는 인간의 정치가 갖고 있는 윤리론적 기반과 관련해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여러 정치 개념을 주목하려고 한 게 이 책의 특징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번역은 관점이 중요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어 실력이 좋고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독일어 실력이 좋은 건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보다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의 공화주의적 관점이라는 건 대개의 경우 귀족적 공화주의입니다. 『군주론』을 잘 읽어 보면 시민의 덕성을 강조하거나 선과 덕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의식 개혁을 강조하는 관점과는 달리, 매우 민중적인 공화주의의 길을 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민중적인 공화주의의 길은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에도 깊은 시사점을 줍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던 문장들, 특히 마키아벨리가 민중적인 요소가 왜 중요하고 군주가 민중적인 기반을 중시하지 않거나 반대로 민중을 과신해 민중이 국가를 필요로 하게 만들지 못하면 왜 몰락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그간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날카로운 문장들을 더 날카롭게 벼려서 드러내 보이려 했습니다. 읽다 보면 이게 정말 『군주론』에 있던 문장인가 할 정도의 주요 문장들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번역해 보려 했습니다.

세 번째는 현실주의입니다. 저는 현실주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익과 영향력을 추구하고 권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도 현실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현실주의는 인간의 정치가 갖고 있는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간의 정치 현실이 직면하는 불가피성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일종의 인식론적 현실주의, 인지적 현실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관점을 번역에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유기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비극성 속에서 인간의 정치가 감당해야 하는 도전과 요구는 무엇인지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다룬 빛나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그전에는 잔인하고 사악한 문장들에 사람들이 주목했다면, 저는 그 인상적인 문장들 뒤에 숨어 있는 전제들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인간의 정치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어떤 불가피성과 현실적 제약을 많이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평균적 한계 속에서도 인간 정신의 빛나는 요소들에 주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다’는 마키아벨리의 말만 보면 인간의 미래를 더 개척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현실을 그렇게 이해함에도 어떻게 적극적인 정치론을 펼 수 있었는지 하는 대목 같은 전환점은, 인간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문장들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란 가능성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대면하면 인간의 정치 현실을 개선할 수 있고 시민 공동체를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제시하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윤리론에 있어서 『군주론』이 갖는 새로움
네 번째 특징은, 정치의 윤리론에 있어서 이 책이 갖는 새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도덕률로만 보면 정치의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정치 현실이 이렇게 사악하고 더럽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가혹할 수 있음에도 왜 정치가 종교보다 더 고결한 윤리를 가질 수 있는지를 말했습니다. 그 점이 마키아벨리의 대단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사의 중요한 문제들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그에 따라 욕을 먹거나 상처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선하고 깨끗하고 착한 정치가만 생각한다면 그런 정치관은 현실 속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는 고뇌와 애증 등 뭔가에 들끓었던 순간 등 여러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 ‘사랑’을 정의하라고 하면 아름다운 것만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사랑이란 애증이 교차하고 싸우면서도 왜 함께 가야 되는지를 발견해 가는 긴 과정입니다. 정치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좋게만 그리면 냉소하고 좌절하는 정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현실이 비루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는 길을 가기보다는 험한 현실 속에서 차라리 내 손이 더러워지더라도(막스 베버의 말을 빌리면, 악마의 무기를 손에 쥐더라도) 인간의 정치 현실에서 개선해야 될 것을 피해 가지 않는 도전을 말했습니다. 대개 인간의 현실을 선하게만 그리는 정치론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우월감만 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의 정치를 쉽게 부정하는 사람, 스스로 몹시 도덕적이고 고결한 존재로 묘사하는 사람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들로부터 늘 혼나고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게 인생입니다. 다 그렇게 삽니다. 그런 속에서도 왜 인간 정신이 정치의 영역에서 빛날 수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그저 개탄하는 것밖에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다 병들고 죽기 마련인 인간 운명의 비극 속에서도, 왜 적극적인 정치적 실천론을 말할 수 있는지를 윤리론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신문 보면서 욕을 내뱉듯이 사석에서 술 마시며 정치를 안주로 삼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겁니다. 마키아벨리는 과감하게 그걸 넘어서서 정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결한 인간 활동이 될 수 있음을 보았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문장들에 주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저는 정치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탈리아어를 못합니다.(웃음) 이게 새로운 점입니다. 그럼에도 번역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좋은 번역자는 누구인가?’ 한글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꼭 좋은 번역자인 것은 아닙니다. 좋은 번역자는 한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계속 새로운 번역이 나올 겁니다.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사람, 또는 16세기 이탈리아어 내지 토스카나 어를 전공한 사람 혹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정치사상을 전공한 사람의 번역이 꾸준히 나올 겁니다. 이 방향에서의 번역이 전공자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본다면, 저는 보통의 시민, 관심 있는 독자들도 능히 ‘이해할 수 있는’ 『군주론』으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친구들이 ‘『군주론』을 읽었는데 대단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집에서 저도 몰래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군주론』이란 말만 들으면 제가 얼마나 주눅이 들었던지 모릅니다. 박사 논문을 쓰고 나서야 제대로 읽었고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읽어도 충분치 않아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관련 논문과 책도 읽어야 했고, 영어로 된 글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해할수록, 마키아벨리가 의도한 바를 좀 더 제대로 표현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욕구가 커짐에 따라 번역할 욕심을 냈습니다. 영어로 된 번역본을 중심으로 하되 영어로 된 번역본 가운데서도 이탈리아어의 원본에 가까운 영역본을 찾게 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여러 번역본을 참조하고 대비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그것으로도 좀 부족해서 주요 개념들은 이탈리아어 판본을 찾아보았고 영어와 한글로도 각각의 개념을 대조해 보면서 번역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또는 제가 이해를 못 하면 해결할 때까지 그 문장을 다루고자 했기에, 전공자나 이탈리아어를 잘하는 분들의 번역본이 지닌 장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제 번역에 장점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대중적으로도 오해 없이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제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절대음감이 연주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상대음감도 괜찮다’고요. 절대음감은 음을 들을 때 쪼개서 듣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을 온전히 못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일반인들이 갖는 상대음감은 부분 부분을 나누어서 듣진 못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더 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절대음감의 재능은 지니지 못했지만, 마키아벨리의 글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이해하는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관이 보여주는 가능성
새로운 특징은 이 정도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통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인간 활동 중에서 가장 고결한 것은 공동체를 다스려 보는 것이고, 공동체를 다스리는 기능이 잘됐을 때 구성원들이 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 정치나 통치에 대한 지식은 좀 더 선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지식을 가리켜서 ‘에로스’라 불렀습니다. 작은 조직을 이끌 때에도 모든 사람들이 열의를 갖고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참여가 헛되지 않게 하려면 그걸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잘 하거는 것은 따라서 아주 에로틱한 인간 활동인 셈이죠.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 가치나 이상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상을 지향하되, 자기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지라도, 과감하게 현실에서 그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통치라는 분야를 부정적으로 볼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통치를 선용하는 문제, 권력을 선용하는 문제는 정치의 본질 중의 본질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군주론』은 그 영역을 탐구하는 데 아주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주론』을 읽으면서 두 가지 극단을 조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극단은 ‘이건 악한 정치론이니까 아예 대면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 극단은 ‘이건 제대로 된 정치론이니까 그대로 따르는 일’입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개척해야 할 좋은 정치의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 양극단을 견제해 가며 좋은 토론을 자기 내면에서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둘러싼 꿈과 희망을 풍부하게 해줄 것입니다. 또 저는 이 책을 통해 위로받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하고 좋은 뜻만 생각한다면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현실에 대해서 환상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갖지 않는 사람만이 오늘 실패하더라도, 또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일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인간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모든 가능성이 다 막혀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늘 새로운 가능성이 예비해 놓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애써 힘을 내서 다시 동료들과 대화해 보고 길을 내기 위해 과감하게 나를 내던질 이유가 있다는 것, 죽을 수 없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무릎 꿇지 않고 적극적인 실천론을 견지할 근거가 있다는 것, 이를 보여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도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지식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지, 좋은 정치에 대한 꿈은 왜 견지할만 한 것인지, 현실 속에서 실천 가능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어떻게 이해할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마련인 사악한 생각과 여러 한계가 내 마음속에 있더라도 그 때문에 좌절할 이유는 없다는 것, 오히려 그 때문에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더 협력할 수 있는 넓은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마키아벨리를 가까운 친구로 삼을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말씀을 끝으로 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결산보고-출판사



도서 판매로만 보면 지난달에 비해 2천2백만여 원가량이 줄었습니다. 신간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구간 판매가 전반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구간의 지속적인 판매도 큰 고민 중 하나입니다. 도서 목록집을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어떻게 하면 후마니타스만의 색이 담길 수 있을지가 고민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후마니타스 책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도서 목록 책자를 기대해주세요.

 

결산보고-책다방

 

근간 소개

『코끼리 쉽게 옮기기 : 영국 연금 개혁의 정치』
김영순 지음 | 6월 말 발간 예정


칼 힌리히스는 연금을 코끼리에 비유한 바 있다.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세계의 진통은 꼼짝 않으려는 코끼리 옮겨 놓기를 연상시킨다. 연금 개혁 시도는 총파업을 불러오기도 하고 정권 퇴진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성숙한 공적연금제도를 가진 많은 나라들에서 연금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연금제도가 선진 복지국가들에서 처음 정착했을 때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았고, 일자리와 가족제도는 훨씬 안정적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변했다. 현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한편으론 공적 지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대될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후 빈곤이 만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은 이렇게 다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려운 연금 개혁을 1980년대 이후 끊임없이 계속해 온 나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진 산업국 중 가장 먼저 급진적 연금 삭감을 단행한 나라 중 하나이자, G7국 중 유일하게 공적연금의 민영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즉 영국은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가는 1층의 기초연금만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직업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세계은행의 주장을 일찍이 실행에 옮긴 셈이다. 이런 개혁 방향은 1990년대 말 신노동당 1차 개혁으로까지 연장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 신노동당 2차 개혁에 이르면 일정 정도 수정된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이렇게 연금 개혁, 그 거대한 코끼리 옮기기에 자주 성공할 수 있었는가? 보수당 정부의 연금 민영화 개혁은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가? 즉 민간연금을 주축으로 만드는 연금 개혁을 통해 노년의 소득보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얼마나 유효한 대안이었는가? 왜 당파성이 다른 노동당은 18년 만에 집권한 뒤 이 노선을 계승했으며, 왜 또 2차 개혁에선 방향 선회를 하게 되는가? 이 책에서는 이런 물음들에 답해 보고자 했다.
영국과 한국의 연금제도와 연금의 성숙도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영국의 경험은 한국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한국은 2008년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대신 국민연금 급여율을 삭감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연금제도를 다층화했다. 그러나 이 개혁은 재정적 지속 가능성 문제도, 국민 대다수의 노후보장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개혁 논의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만 진행되었지만 국민연금 개혁 논의도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영국의 경험은 공적연금과 민간연금 간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 또 바람직한 공-사 연금 간의 관계가 정립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지위와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최근 마무리된 신노동당 2차 개혁의 합의적 개혁 방식도 한국 사회가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영국이 집권 정부가 일방주의적 정책 결정을 하기 쉬운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고, 대결의 정치 문화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이런 합의적 개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금은, 아마도 외교 안보 정책과 더불어, 저출산・고령화의 위험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초당적・합의적 정책 결정이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합리적 의례』
마이클 최 지음 | 허석재 옮김 | 6월 30일 발간


곧 발간될 『합리적 의례』의 저자인 UCLA의 마이클 최 교수가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조직과 축제 : 의례와 공유 지식의 생성”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 영상과 전문을 소개합니다.


강연 전문 보러 가기




미디어 서평

“구조주의 이후 현대 정치 철학에 대한 뛰어난 안내서이자 해설서”


이번 세월호 참사는 효율성과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가 불러온 참사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회체제를 경쟁원리로 채우고, 낙오된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하는 신자유주의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기능 하고 있다.

신간 '신자유주의와 권력'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다룬다. 저자는 미셸 푸코의 강의록 '생명 정치의 탄생'을 참조해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국가의 개입주의에 기초하고, 그 개입은 법적·제도적 틀에 기반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원리의 내면화를 통해 자기 경영 주체를 형성하고, 이 같은 주체 형성 모델에 적응할 수 없는 개인은 바로 사회 밖으로 추방한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도입으로 양극화 등 사회적 불안정성은 증대하고, 주권 권력이 불안정성을 힘으로 메운다. 책은 신자유주의적 통치 아래 사회가 어떤 논리에 따라 변화하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신간> 신자유주의와 권력 (연합/04-28)

신자유주의는 흔히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원리 중시 등 경제정책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로 회귀하거나 그것을 현대적으로 응용한 제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달리 본다. 신자유주의 원리는 시장 논리를 사회 전체에 철저하게 관철하기 위해 국가가 법적 개입을 통해 제도적 틀을 형성하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의 개입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통치, 즉 모든 것을 시장 논리로 환원하고 치열한 경쟁을 모든 사회적 관계 곳곳에 자리잡도록 만드는 현실을 비판한다. 또 신자유주의 통치가 생산하는 주체는 자기에 투자하고 리스크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자기-경영’ 또 ‘자기 자신의 기업가’라고 말한다. 책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전면화 속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 전략도 논의한다.
[주목 이 책]신자유주의와 권력 外 (경향신문/05-16)

[독자 리뷰] 사토 요시유키. <신자유주의와 권력> (읽은 후)



“이 책은 밤의 이야기꾼이 그러하듯 모닥불 주변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그 삶들이 다른 삶들과 어울리며 만들어가는 희미한 다른 세계의 형상을 보여준다.” (시인 심보선)


“저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조명이 꺼지지 않아서예요. 그 빛이 밖에서 오는지 안에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빛이 안 꺼져서 해요. 빛이 꺼지면 저도 어딘가 도망가겠지만 빛이 안 꺼져서 도망 못가요.”(281쪽)

나는 그가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고 조명이라고 말한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빛이 밖에서 오는지 안에서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말대로 그 빛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 희미한 빛 아래서 펼쳐진 무대를 지켜야 한다. 그 무대가 아니라면 우리는 암흑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쓰러져도 그 무대 위에서, 일어나도 그 무대 위에서, 받쳐주는 손이 있고 일으켜 주는 손이 있는 그 무대 위에서, 오로지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우리가 끝내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쌍차’의 그들은 ‘투사’였을까? 그녀가 26명의 아저씨를 만난 이유 (프레시안/05-16)

인터뷰를 통해 참된 삶이 무엇인지, 참된 사람이 무엇인지 들려주신 26명(김대용, 이현준, 최기민, 서맹섭, 고동민, 김상구, 한상균, 박주헌, 김성진, 윤충렬, 박정만, 김득중, 이갑호, 이창근, 문기주, 김남오, 염진영, 양형근, 박호민, 김정욱, 한윤수, 정형구, 김정운, 복기성, 유제선, 오석천)의 노동자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3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쁨과 희망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_아픔 많은 2014년 5월 여러분에게 위로받은 한 독자 올림
배신 당하고, 감옥 가고... 그래도 기쁨은 있었다 (오마이뉴스/05-28)


알림

글과 사진으로 말하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나다
| 대담 : 정혜윤(CBS 피디), 최형락(프레시안 기자)
| 일시 : 6월 27일 금요일 저녁 7시
| 장소 : 에이트리 갤러리 (서울 서초구 양재동 123, 4층)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신자유주의와 권력』의 저자 사토 요시유키 방한 안내
| 일정 :
7월 8일(화) 강연 및 대담(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7월 9일(수) 독자와의 만남(후마니타스 책다방)
| 공동후원 : 도서출판 난장,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 문의 : 02-722-9960
*자세한 내용은 추후 재공지할 예정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서평 모집
| 모집 기간 : 6월 15일(일)까지
| 접수 방법 : ymjang@naver.com로 보내주세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위 메일로 문의주세요.
*서평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께 6월 23일 발간될 마이클 최의 『합리적 의례』를 보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출판사는 지금...

책다방 공사가 오는 18일까지 진행됩니다. 정확한 오픈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으니... 같이 기대해요!^_^ 일단 출판사 편집부가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제 더는 유리벽 너머로 편집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습니다.ㅠ 대신 카페 공간이 넓어지면서 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을 거고요, 무엇보다 여자 화장실이 두 칸으로 늘어날 거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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