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통신
2015년 04월호


은행나무

가장 오래된 나무다. 공룡시대부터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 잎은 천식을 막아 주고 두통을 가라앉히며 노환을 줄여 준다고 한다.
또 은행나무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에게 최고의 치료약이라고 한다.
이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핵폭탄이 히로시마 시를 암흑의 사막으로 바꿔 놓았을 때,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폭발 지점 근처에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나무는 그가 지켜주던 불교 사원처럼 재로 변하고 말았다.
3년 뒤에 누군가가 숯덩이에서
희미한 초록빛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죽은 나무 몸통이 싹을 틔웠던 것이다.
나무는 다시 살아나 가지를 펼치고 꽃을 피웠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그 나무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우리 인간이 보고 느끼도록.

『시간의 목소리』 p111,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김현균 옮김



이 글을 읽으며 『판문점 체제의 기원』을 통해 만난 한국전쟁이, 『관저의 100시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다시금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책들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습니다.
봄 기운을 계속 느끼다 보니 작년 4월 16일 이후 내내 절망스럽던 그 시절 기분이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수많은 다짐에는 그 절망스럽던 기분에 더해, “숯덩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희미한 초록빛의 싹”을 틔우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거겠지요. 새삼 그런 의지를 되새겨보며, 이달의 후마니타스 통신을 시작합니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


김학재 저
708쪽 / 2015년 03월 26일
27,000원

 

“얼어붙은 냉전의 평화: 우리는 어떤 평화를 갈망하는가?”


“제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판문점 체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전 체제라는 것이, 만들어진 시점에서 정지된 상태로 전혀 발전이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제가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수많은 중국군 포로가 서울 등 큰 도시에 남아 있다가 탈출하지 못하면서 거제도에 수용됩니다. 이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제가 이전에 알던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대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유는 폭력뿐만 아니라 의료 시설과 식량의 부족까지 다양합니다. 해방 이후 현대사, 즉 전쟁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수많은 정치 폭력과 갈등이 거의 그대로 벌어진 곳이 바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의 냉전 초기의 역사를 그대로 집약하고 있는 곳이죠.”




“이 수용소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향후 정책, 미국의 정책, 국제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1949년에 만들어진 포로 보호에 대한 제네바 협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고,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들이 수많은 국제법과 국제기구들과 관련돼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1949년 제네바 협약이 최초로 적용된 것이 한국전쟁입니다. 이런 문제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결국 이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는 것이 정전 체제이고 정전 협약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전 협약이 1953년 7월 27일에 만들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포로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화는 1953년 7월 27일에 만들어진 평화입니다. ‘cease fire’, 말 그대로 총 쏘는 걸 멈추는 것, 전투와 공격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화는 전투가 중지된 것으로서의 평화, 가장 낮고 가장 부정적인 수준, 총 쏘는 것이 멈춘 체제라는 것이죠. 전쟁과 평화 사이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훨씬 긍정적인 내용의 연대와 협업과 평화들이 있는데, 우리는 가장 부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평화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를 문제 삼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걸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아시아에는 유럽연합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공동의 지역 안보 기구가 없는가. 있다 해도 경제 협력 정도에 불과하고, 엄청나게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민족주의가 갈등하고 경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산업화에 성공하고 국가 건설에 성공한 국가들이 왜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처럼 갈등하고 있는가.’ 유럽과 아시아의 극명한 차이로 인해 이런 개념들과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저는 판문점 체제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전 체제가 아시아 패러독스의 가장 현저한 상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시아 패러독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한국전쟁이 있었다, 한국전쟁의 경험이 세계적으로 그리고 아시아라는 지역에 남긴 후유증이라는 거죠.”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느냐’와 ‘한국전쟁이 왜 지금과 같은 정전 협상 체제로 마무리됐느냐’는 답이 다릅니다.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고민이 달라집니다.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이미 연구가 굉장히 많이 돼있고 논쟁도 정리가 돼있지만, 왜 우리가 지금 정전 체제를 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누구도 체계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의 기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이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획과 아이디어와 정책을 내놓았는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전 체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안으로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건, 평화에 대해 기존의 국가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적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그 영역을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바람직하고 평화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서로 끊임없이 만나야 하고, 그러면서 신뢰가 형성되고, 같이 일을 나눠 하면서 상호 의존해야 하고, 의존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상호 연대를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호 의존과 분업으로서의 평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기본적으로 판문점 체제는 그것 자체가 금지된 상태라는 거죠. 어떤 형태의 만남과 교류이든 모두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판문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요. 어떤 형태의 접촉이나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닫혀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분업 관계가 없이는 결코 큰 사회가 만들어질 수 없어서입니다. 같이 일하는 관계 속에서 ‘사회’라는 개념이 생기는데, 그게 아니라면 ‘국가’라는 좁은 틀로만 사고하게 됩니다. 통일을 통한 평화 혹은 각 국가의 정권 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이러한 평화를 궁극적 지향으로 설정하게 되면 항상 정치적 기획과 국가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사고하게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만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그런 상호 의존적 관계,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카소가 1950년에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52년에 〈LA Paix la et Guerre〉(전쟁과 평화)를 그리는데요, 한국전쟁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쪽에는 전쟁을 그렸고, 다른 한쪽에는 평화를 그렸습니다. 상황이 가장 부정적으로 치닫던 상황에서도 평화를 생각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피카소의 그림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비둘기라는 평화의 상징을 만들었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상도 더욱 구체적이어야 그런 요구들이 반영될 것입니다.”


 

결산보고(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후마니타스에서는 총 5권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정치사상을 다루거나(『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깊이 있게 살핀 학술 도서(『판문점 체제의 기원』,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개정판)』), 현실을 들여다보는 르포(『관저의 100시간』) 및 중요한 주제를 진솔하게 적은 에세이(『우리 균도』) 등 각각의 특성이 있는 책들로 고르게 구성되었습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한 판매를 보이는 책은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압도적이고요(손에 꼭 쥐어야 할 책!), 뒷심을 보이는 ‘아직은 신간’인 책들 중에 『허위 자백과 오판』이 눈에 띕니다. 남은 상반기에 나올 신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미디어 서평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희망한다. 장애인 가족, 발달장애, 자폐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는다면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단어들은 고정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독서에 실패하기 쉽다.” (정희진)


이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왜 ‘내 아들·딸’보다 ‘우리 아들·딸’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이유도 알 수 있다. 걷고 또 걷는 이유 사람들이 알아줄까 (시사저널/03-26)

생명이 탄생하는 묘하디묘한 과정을 보면, 일단 보고도 못 믿겠고, 다수가 정상인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듯하다. 목숨이 붙어가는 단계마다 얼마나 복잡하고 세밀한지 조금의 오류쯤은 수긍될 정도이고, 그 신비로운 경과를 똑같이 거쳤다는 점에선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도 흐려진다. 장애를 비정상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진다. 자폐아들과 아버지의 ‘세상 밖으로’ (한겨레/ 03-12)

발달장애아 아들과 함께한 위대한 아버지의 기록 (한겨레/ 03-18)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의 인생이 달라졌다 (시사IN/ 03-21)
5세 때 영어사전 줄줄 외운 아이, 왜 바보라 부르죠? (오마이뉴스/ 03-26)
원전도 차별도 없는 세상을 향한 느리게 걷기 (컬처투데이/03-29)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길, 균도(均道) (한겨레/ 04-10)
방사선 발암 소송 이진섭 씨 '우리 균도' 출간 (부산일보/ 03-08)

“평자가 놀랍게 느끼는 것은, 자료의 새로운 발굴과 그에 대한 해석보다 한국 사회의 척박한 지적 풍토에서 어떻게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이론을 구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최장집, 정치학자)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가장 큰 쟁점으로, 한국전쟁이 국가간 전쟁이냐, 아니면 내전이냐 하는 한국전쟁 성격 논쟁을 들 수 있다. 이른바 전통주의, 수정주의, 후기 수정주의 등 미국 학계와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연구들은 수십년간 이 단일 쟁점을 둘러싸고 일종의 비학문적인 정치 논쟁을 벌여왔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와 고통, 상흔을 전쟁 발발의 기원에 있다고 여기고, 전쟁의 가공할 결과들을 모두 전쟁을 시작한 ‘적들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고 ‘단죄’하고 ‘처벌’하려는 형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한국전쟁 연구들은 이 형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패한 자유주의 평화기획 ‘판문점 체제’ (한겨레/ 03-26)

이 책은 자유주의라는 이념에서 출발하는, 애초에는 철학·국제법에서 출발한 평화 프로젝트가 어떻게 한국전쟁이라는 세계사적 사건과 유엔이라는 인류 초유의 기구가 만났을 때 형상화 됐는지 조목 조목 밝히고 있다. 자유주의적 평화주의라는 이념, 유엔이라는 어쩌면 세계정부의 첫 발걸음일 수도 있는 기구가 과연 ‘상대적인 자율성’이 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 저자 김학재 박사는 ‘있다’는 것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기술했다. 도돌이표 한국전쟁 책임 공방 … 틀 바꿔 들여다보기 (중앙일보/ 03-28)

내전-국제전 논쟁을 넘어 바라본 판문점 체제와 평화 (연합/ 03-26)
한반도는 왜 냉전의 박물관이 될 수밖에 없었나 (한국일보/ 03-27)
판문점 체제, 한국전쟁이 남긴 실패한 평화 기획 (국민일보/ 03-27)
6·25 포로송환 관심에서 출발… 평화협정 못이룬 ‘현체제’ 분석 (동아일보/ 03-28)

[저자 인터뷰] 아시아에서 ‘정치 부재’는 냉전의 유산 (경향신문/04-12)
[저자 기고] 한반도 평화의 궁극적 지향은 ‘連帶(연대)의 사회’다 (경향신문/04-12)


『코끼리 쉽게 옮기기』
연금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사회계약이며, 여러 사회 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연금은 복지국가의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관련돼 있는, 성숙한 복지국가의 최대 지출 프로그램이다. 연금의 이해당사자는 105만 명의 현직공무원이다. 35만 명의 퇴직자에 수십만 명의 공무원 취업준비생까지 합하면 이해당사자가 수백만 명이다. 하지만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좌우할 수 있는 연금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영국은 1980년대 이후 끊임없이 연금개혁을 계속해 온 나라다. 선진 산업국 중 가장 먼저 급진적 연금 삭감을 단행했다. G7국 중 유일하게 공적연금의 민영화에 성공했다. 영국은 어떻게 연금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해법을 알아보자. [추천 도서] 『코끼리 쉽게 옮기기』 外 (중앙일보/ 04-07)



『스웨덴을 가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오해였나 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불쑥 선언했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에게 밥을 주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은, 도의회는 도정을 의논하러 가는 곳이지 영화 예고편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상식을 지키는 사람 입에서 나와야 그나마 간신히 들어줄 만한 소리인데…. 그즈음 <스웨덴을 가다>를 읽었다. 한국에서는 무상급식도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는데, 스웨덴은 어떻게 복지국가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우리는 급식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시사IN/ 03-26)



『관저의 100시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책은 믿기 어려운 사실들로 빼곡하다. 이를테면 사고가 발생한 지 7시간이 지나도록 도면이 없어서 현장에 몇번 가본 원자력안전위원장의 오래전 기억에 기대어 상황을 추측하는 대목은 평범하다. 원전의 수소폭발 가능성을 총리가 물으니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처음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수소는 없다’고 하다가, 좀 있으니 ‘수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하다가, 결국 텔레비전 뉴스로 폭발을 알게 된다. 관저의 100시간, 청와대의 7시간 / 이계삼 (한겨레/ 04-13)
운명의 그날, 일본은 왜 그리 허무하게 무너졌나 (프레시안/ 04-10)

근간: 『민중 만들기: 재현과 대변의 정치학』 (이남희 지음/ 유리, 이경희 옮김)

 

이 책은 이른바 ‘민중운동’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과 대학생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이들을 ‘민중운동가’, ‘ 민중운동 활동가’ 또는 ‘운동권’이라 명명한다. 이 책은 이들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민중’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이에 대해 어떤 논쟁을 벌였으며, 이를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민중운동은 당시 한국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한국 사회를 군사정권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동력이었다. 민중운동은 한국에서 20년 넘게 진행되었던 운동이며, 사회변혁의 범위나 권위주의 정권을 타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동유럽 여러 국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와 같이 국제적으로 좀 더 널리 알려진 민주화운동에 필적한다.

이 책에서 필자는 민중 프로젝트를 구조적 선제 조건, 억압적인 군사정권 및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민중운동이 스스로 배태한 ‘정치 문화’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 낸 산물로 이해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 문화’란 린 헌트가 프랑스혁명에 대한 연구에서 다룬 바 있는 “집단적 목적과 행동으로 표출되고, 또 그것을 형성한 가치관, 기대 심리, 암묵적 규칙”을 지칭한다. 따라서 정치 문화란 비전, 언어, 코드, 이미지 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 행위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이 형성된다. 민중 프로젝트를 정치・문화・상징 권력의 장(場)에서 이루어진 힘겨루기의 산물로 이해할 때, 민중 프로젝트는 억압과 저항, 권력과 해방 사이의 경계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국가가 주도한 민족주의・근대화 담론과, 이와 대립 관계에 있는 민중 담론 사이에 교차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1~3장)에서는 민중운동에서 운동권이 가지고 있던 중심적인 문제의식을 “역사 주체성의 위기”로 파악하고 이를 짚어 본다. 당시 지식인과 대학생 사이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는 실패한 역사이며, 민중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역사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제2부(4~6장) “대항 공론장의 형성”에서는 민중운동을 ‘대항 공론장’으로 개념화한다. 민중운동가들이 전개한 대항 담론은 국가가 정한 공공 의제에 이의를 제기하며 1980년대 한국의 사회・정치 담론의 틀을 새롭게 짰다. 민중운동은 이들이 대항 담론을 전개시키는 공론장이었다. 제3부(7~8장) “재현의 정치”는 지식인이 민중을 재현/대변할 때 발생하는 여러 이론적・실천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1980년대 노동운동에서의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또한 1980년대 후반 출판된 장・단편 소설에서 문학적으로 재현된 민중과 지식인의 모습도 살펴본다. 그리고 서론은 위의 주제를 각각 간단히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운동권 지식인과 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 준 1980년대 운동권 정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논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사회과학 세미나 시즌1> 후기


현재 <사회과학 세미나 시즌1>에서는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과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고 있습니다. :-)




“사회과학에 관심 있는 20대”
지원 대상에 명시된 ‘20대’라는 단어는 사회과학 세미나를 지원할 때 나를 뜨끔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올해로 29살이 되었다. 이제 곧 있으면 어디 가서 20대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양한 전공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했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전공에 대한 이해는커녕 걸음을 놓을 방향마저 모르고 있다. 전공에 대한 물음에 습관적으로 사회과학을 말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시간에 회의를 느끼던 20대의 끝자락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세미나가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고전이라는 주제부터 막막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세미나는 시작했고, 우습게도 혼자 한 고민들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고리타분하게만 보이던 막스 베버의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한 내용이었고, 세미나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는 나의 모자란 생각을 보충하고 지지해 주었다. 시작 전의 두려움은 20대와 관심사라는 두 가지를 매듭짓고 싶었던 나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을 깨달았고, 이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는 이 자리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이제 겨우 책 한 권 함께 읽었을 뿐이지만 마주할 시간들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세미나에 적합한 참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책, 공간, 그리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사회과학에 관심 있는 20대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작은 바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일요반 전영화 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자주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선택’이다. 더 나은 것들을 향해 진보해 나가는 것이 정치의 사명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속도로 나아갈 것이냐?’ 혹은 ‘어디까지를 가능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크게 엇갈릴 수 있다. 그러한 차이가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물론 이 둘 사이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이번 세미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마키아벨리 이전의 고전 정치철학자들은 정치를 ‘올바른 것을 실현하는 도덕적 행위의 실현’으로 보았다. 이러한 정치철학하에서는 모든 정치적 행위들이 절대적인 도덕적 규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그 기준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모든 시기에 적용되는 비역사적인 도덕률을 지향함으로써 정치의 역사성을 배제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기존의 정치철학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정치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사적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때로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그러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러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정치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고려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지금의 한국 정치와는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번 세미나에서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전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현실정치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다. 한국 정치판에는 마키아벨리적 정치철학을 가진 ‘현실주의’ 정치인들만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세미나원들 역시 정치인들이 초창기에 자신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실현해 내고자 했던 신념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숱한 권력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현실주의’에 매몰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도덕적 규범으로 여겼던 고대 정치철학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정치의 현실적 측면을 강조한 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정치를 단순히 선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현실정치에서는 마키아벨리적 정치철학을 가진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나친 ‘정치적 현실주의’가 오히려 한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토요반 최윤용 님)

알림

1. 중동을 둘러싼 국제 관계: 국제 정치, 국제 역학 속에서 현대 중동을 읽는다

| 강연 : 구정은(『나는 라말라를 보았다』의 역자)
| 일시 : 4월 21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웅진씽크빅 단행복 사옥 2층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차별과 편견을 넘어 우리, 함께 걷자

『우리 균도』라는 책을 매개로 장애 문제와 관련한 당사자분들이, 특히 그 가족들이 모여서 고민을 나누고 자리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ㆍ 본 뉴스레터의 수신을 원하지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눌러주세요.
ㆍ 본 메일은 발신전용 메일입니다. 문의는 webmaster@humanitasbook.co.kr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