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통신
2016년 04월호



“안녕하세요. 구례에 사는 멍뭉이입니다. 후마니타스 책 많이 사랑해 주세요. 헤헤”

지난 3월 말에 후마니타스는 구례로 엠티를 다녀왔습니다. 벚꽃이 절정이던 때였습니다. 지리산 자락이 주위를 두르고 눈앞에 흐르는 섬진강을 한참 보고 있으니, 도시에서는 푹 쉰다 해도 자꾸 남는 피로가 여기서는 깨끗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출판사 사람들이 보았던 풍경을 몇 장면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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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후마니타스 통신에서는

‣ [1+1 책 읽기] 『미국 헌법의 탄생』 VS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 이달의 책 이야기
‣ [근간] 현대 조선 잔혹사
‣ 미디어 서평
‣ [칼럼] 아직 투표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정치 참여와 시민의 삶
‣ 강연 소식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개정판) 인권의 지평


로버트 달 지음
344쪽 / 2016년 03월 31일
17,000원


조효제 지음
480쪽 / 2016년 03월 15일
20,000원

 

1+1 책 읽기: 『미국 헌법의 탄생』 VS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미국 헌법’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는 ‘나무 아래’ 님의 서평을 소개합니다.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으로 알려진 미국의 헌법을 소개하는 『미국 헌법의 탄생』과 ‘그 미국 헌법은 과연 민주적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연이어 읽으며, 두 연구자의 위치와 접근 방법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나아가 한국 헌법에 대해서도 살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원문에 실린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표지는 최근 발간된 개정3판으로 교체했습니다. ‣ 원문 보기)

한 권은 미국의 헌법사를 전공한 한국의 역사학자 조지형이 쓴 책이다. 다른 한 권은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달이 쓴 책이다. 로버트 달은 재작년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조지형의 책은 제목 그대로 미국 헌법이 제정된 철학적, 역사적 배경과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역사책이다. 반면에 2001년 미국에서 출판된 달의 책은 현재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의 비민주적 요소를 비판하고 그것이 어떻게 이후의 미국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이 두 권의 책을 어쩌다 연속해서 읽으면서 예기치 못한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지형의 책은 전공자답게 풍부하고 꼼꼼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한국 학자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달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이 새롭게 보인다. 이 책은 후진국의 학자가 선진국의 헌법과 그것의 탄생 과정을 경의와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과 본문 곳곳에 그러한 찬탄의 평가를 드러낸다.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미국 헌법은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이며, 그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은 높은 지성을 갖춘 이들이었으며, 무엇보다 그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기적 같은 타협을 이끌어 내는 위대한 정치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달 역시 이 점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달은 당대의 정치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제약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양립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후진국의 학자가 찬양해 마지않는 자국 헌법의 비민주성과 그로 인해 그 헌법이 현재의 정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끈질기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유보 없는 비판을 가한다. 이것은 역사학과 정치학이라는 사회과학의 차이이며, 동시에 선진국의 질서를 거의 맹목적으로 우러러보는 후진국의 지식인과 자국의 현재를 냉정하게 검토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어 하는 비판적인 선진국 지식인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역사적 지식과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며, 그에 더해 사회과학의 이론적 분석이 필수적으로 더해져야 보다 입체적인 시각을 획득할 수 있다. 반대로 풍부하고 세밀한 역사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분석 역시 부실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권의 책은 상호보완적이다. 더불어 달의 책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중 한 명인 최장집의 해제가 실려 있어, 다시 한 걸음 떨어져 로버트 달이라는 정치학자의 관점을 평가하면서 그의 주장의 진의를 보충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저술이 현재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 두 권의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은 먼저 조지형의 책을 읽고, 그다음에 달의 책을 읽은 뒤에, 마지막으로 앞부분에 실려 있는 최장집의 해제를 읽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헌법에 대한 기초 지식과,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결함의 근본 원인, 그리고 한국 헌법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 안목 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참 신기한 게,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막상 정치학자들의 저술은 잘 읽지 않는다. 경제나 역사 혹은 과학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해당 분야 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다. 아마도 그들은 매일 뉴스와 언론을 통해 정치 소식과 분석을 접하면서 자기 나름의 분명한 정치관을 형성했다고 믿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의 현안에 대한 명쾌한 설명에 갈급한 나머지 정치학이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치학자랍시고 뉴스나 토론 시간에 나오는 이들의 말을 들어 봤을 때 별다른 전문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크게 틀린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학은 어떤 면에서 보면 오늘날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고군분투하는 학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정치학자들처럼 방대하고 치밀한 통계분석을 통해 자기 주장의 명확한 경험적 근거를 확보하는 방법론에 익숙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그런 방법론을 구사할 환경도 마땅치 않은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한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더욱 그러하기에 정치학은 의미 있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익숙한 것과 안다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너무 흔해서 혹은 너무 자주 접해서 우리는 그것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만 식상함에 넌더리를 치곤 한다. 자기 가족과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도 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또 다른 저명한 정치학자 S. M. 립셋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오직 한 나라만을 아는 사람은 그 어떤 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Those who only know one country know no country.)” 다른 나라의 정치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그리고 그 이해의 지평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자국의 정치 현상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유사한 방식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를 보다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 역시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한 이해가 당장의 현안에 대한 명쾌한 대안 제시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언론에서 등장하는 외국 사례에 대한 피상적인 인용은 종종 피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좀 더 폭넓은 독서를 통해 더 다각적이고 더 깊이 타국과 자국의 정치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당면한 사건들에 대해 좀더 차분한 태도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내 생각에 한국의 시민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마음으로 정치를 대한다. 이러한 반응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역설적으로게도 극단적인 정치 혐오와 무관심을 부지불식간에 생산해 낸다는 점이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의사당 내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것에 비하면 매우 진보적이고 품위 있는 정치 투쟁의 한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로버트 달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비민주적인 정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제안된 법안들 중 다수가 비민주적 대표성을 갖는 몇몇 소수 상원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그게 언제일지는 사실 지금으로서는 암담하긴 한데, 그래도 언젠가는 정권이 교체될 것인데, 지금의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 통과 저지에 실패하고 훗날에 야당이 된 지금의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진보적인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는 그런 날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경험이자 기회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국민의당을 새누리당보다 더 저주하는데, 정의당이 의미 있는 제 3당이 되기까지는 현재로서는 요원한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국민의당의 존재가 점점 더 양극화되어가는 한국 정치에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로 나는 지켜보고 있다. 이 책에서 달은 미국 헌법에 의해 주조된 미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를 양당 체제의 확립이라고 보고 있다. 이 극한의 대결 구도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사회 전반에 정치에 대한 불신을 팽배하게 하여 결국엔 기득권층의 이익을 공고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흑백논리 혹은 이분법적 사고만큼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미국식의 아주 질이 나쁜 양당 체제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 한국 정치의 추세를 대단히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런 면에서도 로버트 달의 이 책은 매우 의미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배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과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못지않게 감동적인 책이었다.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개정판 출간!



정치학 책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흔치 않은 책. 이른바 최초의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은 헌법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의 장이었고, 그 주인공들이 곧 역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론과 실제가 결합된 일종의 실험실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헌법은 애국주의의 나라 미국이 가장 신성시하는 것. 로버트 달은 ‘그런 헌법이 현재의 관점에서도 과연 민주적인지, 시민이 헌법을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가’와 같은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미국 헌법은 타의 모범이 되기 어렵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를 모델로 삼았으니만큼 이 책은 곧 우리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겠다. 8장이 추가된 개정판 출간! (편집자 정미뇽)

 

책 이야기

올해 일사분기 매출액은 전년도 대비 4% 증가해 총액 면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신간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다섯 종이 발간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관심을 못 주다가 어느 날 주문이 늘어나면 갑자기 그 책을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마음에 훅 들어오는 거지요. 하하 마케터의 알량한 마음... 3월에는 『소수자와 한국사회』가 그랬습니다. 작년에 비해 3배 이상 판매가 늘었습니다. 이 책은 일단 소수자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짚는 것에서 시작해,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어떤 소수자군이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소수자 차별의 특수성은 무엇인지를 학문적으로 다룹니다. 평소 인권침해의 사례로 소수자 문제를 접하면서 연민과 분노의 감정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소수자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차분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소수자 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소수자 한국사회: 이주노동자, 화교, 혼혈인
민주주의총서07
박경태 지음
2008년 2월 출간







『인권의 지평』 발간을 계기로 <책방 이음>에서 ‘조효제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책방이음엘 들를 때마다 손으로 쓴 피오피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후마니타스 저자의 이름이 쓰여 있어 기쁩니다. 그리고 사회과학 서적을 이렇게 서점 한가운데 전시할 수 있는 서점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합니다. :)

 

 

근간: 현대 조선 잔혹사


ⓒ정기훈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있다. 한 해 2천여 명. 부상까지 합하면 9만 명이 넘는다. 공장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이 15세였다던 산업혁명 때 이야기도 아니고, 전태일 옆에서 죽어 가던 시다의 이야기도 아니며, 어느 제3세계 아동노동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여기, 바로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대체 왜 죽음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죽어 가는 이들은 누구이고, 누가 왜 이들의 죽음을 숨기려 하는 걸까? 저자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제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산재율을 보이는 조선소에 취업했다. 이 책은 2012년, 저자가 배 만드는 하청업체에 위장 취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과 2015년,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를 취재한 연재글 등 6년여 간 조선소를 쫓아다니며 쓴 글들을 모아 엮었다. 저자는 몰락해 가는 조선 산업에서 일어난 구조 조정과 그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파고들면서 “OECD 가입국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 주범들을 하나하나 추적해 간다. 노동자의 목숨보다 배를 빨리 만드는 게 중요한 작업 현장, 원청 기업의 하청 착취, 그 속에서 죽어 간 노동자들과 하청 사장들, 위험의 외주화에 공모한 정규직 노조, 그리고 이를 조장하고 방기한 정부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조선소를 통해 본 현대 헬조선의 잔혹사이기도 하다.


지은이 허환주
20대 초반, 운동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모두가 '운동'(movement)이 아니라 '운동'(sports)을 뜻하는 질문이었다. 한때 진지하게 그쪽으로 진로를 고민했으나 저질 체력임을 깨닫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학보사 기자가 됐다.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후 잠깐의 외도(정치팀)를 제외하고는 사회팀에 몸 담았다.
2011년, 1년 가까이 이어진 한진중공업 사태를 지켜보며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내 싸울 기회조차 없는 하청노동자에 관심을 두게 됐다. 조선소에서 일해 보지 않고선 실상을 알 수 없다는 취재원의 말에 적당히 패기를 보인다는 게 그만 취업 선언이 돼 버렸다. 그렇게 들어간 하청업체에서 '노가다'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의 위협 속에 간신히 열흘을 버텼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사가 제1회 한국온라인저널리즘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5년엔 연속해서 죽어나가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사고를 파고든 기획 '조선소 잔혹사'로 300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그밖에도 이랜드 파업, 쌍용차 사태, 용산참사, 두리반 투쟁,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 등을 취재했다. 한 번 붙든 이슈는 끝장을 보는 편이다.
고유명사엔 약해도 사소한 걸 잘 기억한다. 서울 홍대 토박이로 최근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곱슬머리 아빠를 빼다 박은 첫째 딸에 대한 연민과 곧 태어날 둘째 딸마저 자신을 닮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차례
1부 지옥선에 오르다
2부 어려운 시절
3부 무사고 365일, 13명의 기록되지 않은 죽음
4부 강철 노동자는 없다
5부 안전하지 못한 사회
에필로그 

[칼럼] 아직 투표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정치 혐오는 비열한 이데올로기
아베 피에르(Abbé Pierre) 신부라고 있다. 프랑스 사람이다. 1912년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세속적 미래를 버리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빈민의 아버지’로 불렸다. 빈민 공동체를 창설하면서 “교회를 짓는 것보다 가난한 이들의 집을 먼저 지어 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국회의원으로 빈민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죽을 때까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말년에 그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1위로 꼽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사후에는 성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정치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 누구에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라고 정의하면서, “사람들은 나더러 좌파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나옵니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모르거든요. 다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 할 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독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썩어빠진 인간의 정치를 비난하며 투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다. 그는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투표할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자들은 그 권리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던 자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 권리에 매우 익숙해서, 그것을 별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무언가 중요성을 깨달으려면 그것을 빼앗겨 봐야 한다. ‘정치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더럽기 때문에 난 차라리 투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화가 난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공익의 수호를 말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공익을 수호하는 것]은 정치에 속하는 일이니까.) 그런 사람은 비열한 사람이다.” (293쪽)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공식 담론의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거의 사회적 합의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정치를 야유하고 정치인을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권능을 무력화시킬 수는 있다. 말로는 늘 정치와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말하고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정치적이고 투표도 열심히 하고 정부 정책이나 예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부자 시민들이다. 서울의 부자 동네 10곳과 가난한 동네 10곳의 지난 투표율을 비교해 보면, 부자 동네 투표율이 20%가량 더 높다. 정치를 가난한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주적 수단이자 무기로 이해하는 생각이 자리 잡지 않으면 달라질 것은 많지 않다. 그럴 경우 민주주의라는 말은 무색해진다. 여전히 정치는 기성 질서를 운영해 온 사람들만의 놀이터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
오래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청소년 정치교육 교재를 둘러보면서 얇은 자료집 하나를 발견했다. 1장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브라질 커피 농장 노동자에게 얼마가 돌아갈까?” 정말 무릎을 탁 쳤다. 잘 알다시피 독일은 일국 단위의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한계에 직면한 지 오래다. 독일 내 이주 노동자들도 통합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전망을 개척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해졌다. 이런 전망이 없다면 이민 노동자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극우파 정당들의 발호도 커질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아이들에게 글로벌화된 노동시장 문제를 생각해 보라며 던진 질문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위해서도 수많은 국적의 노동자들이 협력을 한다. 멀리 브라질 커피 농장에서 노동자들이 커피를 재배-수확하는 것은 물론 커피 자루를 배에 선적하는 파키스탄 국적의 선원도 있어야 하고 배를 움직이는 영국 국적의 노동자도 있어야 하고, 독일 안에서도 커피를 볶고 배달하는 터키 출신 노동자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독일 내부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편협한 관점을 고수할 것인가? 게다가 이민 노동자들은 대개 자국에서 고학력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독일 입장에서는 교육 비용을 안 들이고도 독일 경제가 필요로 하는 양질의 노동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차별하고 적대하는 극우 정당들이 위세를 키우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좋은 토론을 가능케 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 조직을 만들 권리는 민주적 기본권
그 교재의 3장은 “정당을 만들어 보자”였다. 예시로 나온 것은 “숙제하기 싫은 당”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런 무책임한 상상을 하게 해도 되나 생각했는데, 내용은 달랐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획일화된 숙제를 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성과 자율성이 허용되는 방식의 숙제를 요구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강령도 써보란다. 당 대표 선거도 하고 연설문도 작성해 보란다. 흥미로웠다.
사회에 나가서도 가사 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다고 생각하면 주부당을 만들라 한다. 퇴직 이후 사회적 보호가 약해지면 노인당을 만들어 보란다. 정당을 만들면 단순히 항의로 끝날 수 없고 자신들의 요구가 공익에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남편을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운영과 공공 정책의 차원에서 가사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 기준을 수정하는 것이 공익에 기여함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단순히 노인들이 수당을 얼마 더 받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연금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전체 사회복지가 좋아질 수 있는지를 말해야 정당이 되기 때문이란다.
요컨대 소극적으로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적극적 문제 해결자가 되라는 것, 민주주의에서라면 최고의 시민권은 정치 조직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시민권의 두 축 : 노동과 정당
우리는 어떤가? 아이들에게 노동이 인간 공동체의 기본 문제라는 것을 가르치는가? 정당이라는 것이, 시민이면 누구든 가깝게 다가가고 필요하면 새로 만들 수도 있는 민주주의의 중심 조직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가? 오히려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나쁜 일에 물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속된 말로 더 정치적이고 더 권력적이 될까?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더 투쟁적이 되고 저항적이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 나아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 스스로 문제 해결자가 되어 보고자 하는 열정을 가져 보는 것이야말로, 아이들로 하여금 더 풍부한 삶을 살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공익과 사회정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시민적 책임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을 경원시하다 보니, 우리의 미래 시민들은 몸이 커지고 성장하는 것에 비례해 공익적 열정을 갖기보다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을 억압당하고 있다. 체격은 이미 어른인데 그에 맞는 사회적 인식을 갖게 해주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구조 때문에, 그들의 열정이 다른 아이를 때리고 소외시키는 삐뚤어진 심성을 키우는 데 사용되도록 무한 방치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졸업식 때만 되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사회에 나가거든 다른 건 몰라도 정치는 하지 마라!”는 훈시를 들어야 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어떤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는 ‘시민의 것’이어야 한다. 당연히 미래 시민인 청소년들에게도 자신들이 변화시키고 가꿔 가야 할 ‘시민적 과업’임을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개인 삶과 정치
가끔 “정치가 밥 먹여 주느냐”를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밥 먹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분배 효과가 계층별로 달라질 때, 민주주의는 안정된다. 그래야 어느 사회집단이든 정치 참여의 욕구가 자신들의 필요로부터 발생하며, 결과적으로 개인과 민주주의 사이의 결합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동 정당이 없는 미국조차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와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계층별 소득분배는 뚜렷하게 다르다. 1947년에서 2005년 사이 미국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가난한 빈곤 계층의 소득 증가율은 공화당 집권기에 비해 민주당 집권기에 6배나 더 높았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직까지 이런 함수관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기대했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하에서 비정규직은 크게 늘었고 소득분배는 악화되었으며 사회 하층의 빈곤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진보 정당의 실험도 여러 번의 분열과 해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실망을 낳았다. 이번 4월 총선에서도 만족스러운 최선의 정당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변화를 바란다면 냉소보다는 참여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정치 현실이 불만이라 하더라도 또 최선의 선택이 없다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 선진 민주주의국가들의 질 높은 노동 정치 역시 과거 불만스러운 조건 속에서의 긴 노력의 결과였다. 그때 그들이 냉소와 불참여로 일관했다면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참여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와 열정을 표출하고 대변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길을, 쉬지 말고 꾸준히 조금씩 계속해서 개척하고 넓혀 가는 것, 그 속에서 미래의 변화 가능성은 커갈 수 있다. 그러면 헛된 기대나 환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내일 또 노력하고 헌신할 수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성과를 누적해 가면서 결국 길을 낼 수 있다. 그간 우리 모두 조급해서 문제였는데, 민주주의에서라면 꾸준함을 당해 낼 자가 없음을 믿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이 글의 초고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기관지 『두드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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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인권학 관련서는 조효제 교수가 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저자.”
(로쟈 이현우, 서평가)


지은이가 내세우는 새로운 인권 담론의 핵심은 ‘근본 원인’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법·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고문, 인신매매, 테러리즘, 젠더 불평등, 난민, 제노사이드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여전한 이유는 그에 대한 ‘근본 원인’을 탐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인권은 권리의 집합이 아니다” (한겨레)

“인권 문제에 빠르고, 깨끗하고, 명쾌한 쾌도난마식의 해결책은 없다.” 이라크 전쟁과 최근의 시리아 난민 문제까지 겪으며 이는 더욱 명백해졌다. 인권문제에 대한 고민은 근본으로 향해야 한다. 시리아 난민 문제를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후변화와 맞닥뜨리게 된다. 2006년부터 시리아 내전 발발 직전인 2010년까지 기록적인 가뭄으로 농지가 황폐해졌다.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각종 사회문제가 폭발했다. 이런 토양에서 반정부군이 조직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확대됐다. 근본적 처방으로 탐색한 인권의 새 지평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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